국회·정부 '양손잡이' 추경호의 1년 "민생이 최우선"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3.05.0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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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1년, 추경호 부총리의 365일]①'사투' '소통' 그리고 '설득과 압박'

편집자주 윤석열정부가 오는 5월10일 출범 1년을 맞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공급망 재편 등으로 대한민국이 복합위기로 휩싸인 1년이었다. 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은 이 위기를 돌파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1년이었다고 자평한다. 머니투데이가 쉼없이 달려온 장관들의 365일을 되돌아보며 윤석열 정부 1년을 정리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임종철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임종철


"거센 도전 과제들을 안고 출범한 새 정부의 경제팀은 전열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없습니다. 비상한 각오로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합니다."

2022년 5월 11일. 8년 만에 기획재정부로 복귀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취임 일성. 화려한 수식어는 없었다. 대신 '위중한 경제 상황', '불확실성 확대' 등 무거운 단어들로 채워졌다.



그만큼 상황이 안 좋았다. 4%대로 뛴 물가 상승률, 1000조원에 육박한 나랏빚, 코로나19(COVID-19)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경기 둔화 조짐…

추 부총리가 지난 정부로부터 물려 받은 장부와 성적표는 암울했다.



국민이 거는 기대는 컸다. 30여년 경력의 경제관료 출신의 경험과 지혜, 재선 국회의원의 추진력과 노련함에 거는 기대였다. 새 정부 초대 부총리의 어깨는 무거웠다.

추 부총리는 '현실 직시'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5월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정확하고 냉철한 분석은 고품질 정책 마련의 첫 단계"라고 강조했다. 추 부총리 소신대로 이후 기재부가 발표한 각종 정책에는 장밋빛 전망 대신 현실 그대로의 숫자가 담겼다.

추 부총리의 1년은 거품을 없애는, 숫자를 개선하는 시간이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수출은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다. 그러나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3%대로 내려오고 생산·소비가 3월까지 두 달째 증가하는 등 일부 긍정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추경호 스토리 1 '사투' : 추경·물가·수출…"끝나지 않는 전쟁"
[인천=뉴시스] 최진석 기자 = 추경호 부총리가 2일 오전 인천 송도 오크우드 프리미어 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5.02.[인천=뉴시스] 최진석 기자 = 추경호 부총리가 2일 오전 인천 송도 오크우드 프리미어 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5.02.
추 부총리 임기는 지난해 5월 10일부터지만 새 정부 '정책 컨트롤타워'로서 활동은 사실상 이보다 두 달 앞서 시작됐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출범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획조정분과위원회 간사를 맡아 △국정 비전과 철학 정립 △인수위 운영 기획 및 총괄 조정 △국정과제 설정 및 로드맵 작성 등을 주도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이 추경호 경제팀의 정책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던 이유다.

인수위 출범 초기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었다. 새 정부는 "재정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기조를 분명히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영업에 큰 차질을 빚었던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추 부총리는 새 정부 출범 이틀 만인 지난해 5월 12일 59조원 규모 추경안을 발표했다. 인수위 시절 모든 계획을 구체화해 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추경안은 △소상공인에 대한 온전한 손실보상 26조3000억원 △방역 보강 및 향후 일반 의료체계 전환 지원 6조1000억원 등으로 구성됐다.

추경안 제출 후에는 '정치인 추경호'의 역할이 빛났다. 정부의 설득을 바탕으로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며 추경안은 국회에 제출된 지 약 2주 만인 지난해 5월 29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안보다 3조원 가까이 불어난 62조원 규모였다.

추경 편성 이후에는 '물가와 사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추 부총리는 연일 "물가와 민생안정에 정책 최우선 순위를 둔다"고 강조하며 물가 대책 마련에 동분서주했다. 수시로 비상경제민생회의, 비상경제장관회의 등을 주재하며 대책을 쏟아냈다. 지난해 8월에는 강원도 강릉 소재 고랭지 배추밭을 방문해 작황을 점검하는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수출 부진이 심해지며 추 부총리 발걸음은 한층 분주해졌다. 추 부총리는 올해 2월 장관급 수출투자대책회의를 신설하고 수출 활성화에 전 부처 역량을 모으겠다고 했다. 소관 부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부처별 1급 간부를 수출·투자 책임관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추경호 스토리2 '소통' : 보고 들어온 직원과 "찰칵"...매주 'F4' 회의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추경호 부총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2023.03.23.[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추경호 부총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2023.03.23.
올해 초 발표된 기재부 '닮고 싶은 상사' 투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기재부는 매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과장급 이상 간부 중 귀감이 되는 상사를 조사해 발표하는데 최다 득표자가 추 부총리였다. 닮고 싶은 상사로 부총리가 뽑힌 것은 2015년 최경환 부총리 이후 7년 만이다.

'적극적 소통'이 비결로 평가된다. 추 부총리는 과장급 이상이 전담했던 부총리 보고에 사무관 등 실무진이 참석하도록 하는 등 직원과 접점을 넓혔다. 보고를 마친 직원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셀카를 찍는 모습은 기재부 내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추 부총리의 소통은 내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금융 분야 수장이 매주 일요일 모여 거시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F4'(Finance 4) 모임이 결성된 것도 추 부총리의 소통 중시 기조가 반영된 결과다.

F4에는 추 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여한다. F4 멤버들은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 등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이슈에 적극 대응하며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추 부총리는 언론과의 적극적 소통으로도 유명하다. 바쁜 일정을 쪼개 언론과 만나 주요 정책 의미를 설명하고 현장 의견을 듣는다.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재부 간부들에게도 "언론과 소통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리기도 했다.

추경호 스토리 3 '설득과 압박' : 세제·예산, 반도체 세액공제도
국회 여소야대 정국은 윤석열 정부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예산안 처리부터 각종 법안 통과까지 주요 정책 추진은 대부분 야당의 협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부를 모두 경험한 '양손잡이' 추 부총리의 강점은 이런 상황에서 더욱 빛났다.

윤석열 정부가 건전재정으로 재정정책 기조를 전환한 후 처음 편성한 '2023년도 예산안'은 기재부 내에서조차 "연내 국회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왔다. 법인세·소득세·종합부동산세 인하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을 두고도 야당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추 부총리의 끈질긴 설득과 협의로 여야는 합의점을 찾아갔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9일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부가 설명하고 제안할 수 있는 모든 양보·타협안을 제시했다. 이제 국회의 몫이고 야당도 전향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며 야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23일 세제개편안을 처리한데 이어 이튿날인 24일 새벽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를 피했다.

반도체 업계 어려움을 고려해 정부가 입법화를 추진한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율 확대 법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당초 국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했다. 세제개편안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한 직후 재차 야당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추 부총리는 끈질기게 국회에 조특법 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결국 개정안은 지난 3월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재정준칙 도입,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 등 정부 입법 과제는 여전히 산적했지만 정부 내에서 "불가능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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