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난리"…총선 1년 앞두고 또 방송법 갈등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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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정청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방송문화진흥회법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을 상정하고 있다. 2023.03.21.

'방송법 개정안'(이하 방송법)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면서 방송법 처리 여부가 3월 '쌀 의무매입법'(양곡관리법 개정안), 4월 '간호법 제정안'에 이어 5월 여야 대치 정국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내용의 이 법안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총선을 1년 앞두고 방송이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방송법 본회의 부의 건이 재석 177인 중 찬성 174표, 반대 1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의 반대 토론 직후 표결에 반발해 퇴장했지만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주도해 통과시켰다.

방송법은 현행 9~11명인 KBS·MBC·EBS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 방식도 국회 영향력을 축소하는 게 골자다. 기존 이사 추천은 KBS의 경우 11명의 이사를 여야가 7대4로 추천하는 구성되는데 개정안은 국회 추천 몫을 5명으로 줄이고 학계(6명)와 방송직능단체(6명), 시청자위원회(4명)에 분산해 정치권의 영향력을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

방송법은 민주당이 지난해 4월 정필모 의원을 필두로 당시 소속 의원 171명 전원 명의로 개정안을 발의하며 논의의 불을 붙였다. 이후 9건의 관련 법안을 통합·조정해 지난달 21일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이 본회의 직회부 안건을 단독으로 상정해 의결했다. 민주당은 오는 5월 임시국회에서 강행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야 바뀔 때마다 '데자뷰' 해묵은 방송법 논쟁

2017년 2월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방송법은 국회의 해묵은 입법과제 중 하나다. 대선 등 각종 선거로 여야가 바뀌고 균형이 무너질 때마다 추진됐다가 잠잠해지길 반복해 왔다. 여론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여야가 바뀔 때마다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한을 여당이 더 많이 가져간다는 점에서 주로 야당이 된 쪽에서 공세를 펼치고 여당이 방어논리를 펼치는 구도였다.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방송법을 두고 여야가 대립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KBS 이사 수를 13명(여7야6)으로 구성하고 이 중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사장을 선임하자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정하고 범야권의 도움을 받아 대표발의자인 박홍근 민주당 의원을 포함해 162명(민주당 116명·국민의당 37명·정의당 6명·무소속 3명)이 발의해 추진했다. 이때 당시 민주당은 '방송장악 금지법'으로 명명하고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2018년 4월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앞에서 김동철 원내대표 등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릴레이 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 추진은 이듬해인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여당이 된 입장에서 굳이 방송법을 개정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2018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제출된 박홍근안(방송법)은 차악의 방안을 선택한 것이고 문재인 정권에서 공영방송이 진정 독립성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자"며 방송법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야당이었던 바른미래당이 국회에서 릴레이 농성을 벌이는 등 방송법 처리를 촉구했지만 결국 20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여야가 바뀌자 민주당이 또 다시 방송법 개정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과방위원장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전날 본회의에서 "이번 개정안은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한마디로 '정치권이 방송에서 손떼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與 "시든 나무에 꽃 피길 바라나"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국민의힘 의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제12차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이 방송법 개정안 찬반토론을 종료하자 항의하고 있다. 2022.12.02.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방송 관련 학계와 직능·시민단체가 대체로 야권에 기울어진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영향력을 축소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이 사실상 정치적 후견주의를 강화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단 시도로 보고 있다. 과방위 소속 여당 A의원은 "여야가 바뀌니까 이제 와서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자신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이사로 앉혀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과방위 소속 여당 B의원은 "방송법은 1980년대 언론통폐합 당시 만들어진 골격이 그대로 유지 중인게 문제인데 (민주당은) 그걸 놔두고 자신들 입맛에 맞게 거버넌스를 바꾸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방송정책) 골격을 바꿔야 하는건데 죽은 나무에 꽃 피길 기대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방송법 통과 저지에 총력을 기울인단 입장이다. 지난 14일에는 국민의힘 소속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들이 민주당이 지난달 과방위에서 단독으로 처리한 방송법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이 국회법을 위반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서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여당 과방위원들은 방송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단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