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당사자들의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 정도는 약과다. 다른 재판에 밀려 재판 자체가 열리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판 지연은 법원이 발행하는 사법연감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 기준으로 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한 뒤 첫 재판을 받는 데 평균 137일이 걸렸다. 민사 항소심의 경우는 항소 제기 이후 첫 재판까지 190일이 걸려 1심보다 더 길었다. 2017년과 견주면 1심은 20일, 항소심은 63일 늘었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겪는 고통은 오롯이 소송 당사자들 몫이다.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몇 년 동안 소송을 하다 보면 감정은 상할대로 상하고 피해 회복은 어려워진다. 민사소송에서는 채무 원금보다 지연 손해금이 더 나오는 경우도 있다. 여유가 없는 저소득 서민들이 피해를 당하고도 지레 법원행을 포기해버리는 이유다.
법원 울타리 밖에서는 판사들의 '의지 부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판사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재판이 갖가지 이유로 열리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지적이다. 젊은 판사들의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재판 지연의 이유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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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는 판사 부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공판주의 기조가 강해지면서 검토할 기록은 늘었는데 판사 숫자는 제자리걸음이다. 2021년 기준으로 지방법원 판사 한 명이 처리한 사건이 555건에 달한다. 독일의 5배, 일본의 3배 수준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재판부에 따르면 사건당 평균 자료 분량은 2014년 A4 용지 176장에서 2019년 377장으로 늘었다. 법원 한구석에선 기록이 방대하고 내용 파악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깡치사건'이 기본이 됐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을 떠나 예전에는 판사들이 밤을 새워 기록을 읽고 재판을 진행했지만 이젠 그런 판사도 많지 않고 그런 판사가 있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건이 많다"고 말했다.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려면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를 갈아넣는 재판으로는 상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