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직원과 초기 소방대원 등 수십명이 사고 이후 숨졌다. 현장에 투입된 인력 포함, 22만여명이 방호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피폭 당한 걸로 추정된다. 체르노빌 사고 파장은 37년이 지난 현재도 진행형이다.
운명의 날, 제4호 원자로는 터빈 발전기 관성운전 시험 중이었다.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더라도 터빈이 당분간 관성으로 돌아갈텐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전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 알고자 했다.
그러다 내부의 열이 지나치게 올라가며 핵연료봉이 파손됐고, 과열된 핵연료와 접촉한 물이 순간적으로 끓어올랐다. 이내 수증기 폭발(1차 폭발)이 일어났다. 이 폭발로 원자로 시설이 파손되자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원자로의 천장이 파손되면서 이곳을 통해 방사성 물질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 보고는 정확하지 않았고 사고대비 메뉴얼도 부실했다. 방호복도 모자랐다. 수많은 소방대원들은 방사능을 막을 최소한의 장비도 없이 진화작업을 벌였다.
헬기로 납과 진흙 등을 뿌리려 했지만 원자로 상공에 방사성 수치가 워낙 높아 헬기를 상공에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이에 헬기가 원자로 위를 지나가면서 흙을 뿌릴 수밖에 없었다.
대원들과 같이 현장에 들어간 사진기자 이고르 코스틴은 카메라 필름이 타 버린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실제 그가 남긴 사진을 보면 얼룩같은 것이 관찰되는데,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강한 방사선 때문에 필름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목숨을 건 작업 덕에 4호기 바로 옆의 3호기는 무사할 수 있었다. 3호기에 있던 액체 질소를 4호기 쪽으로 보내면서 마침내 5월 9일, 4호기 화재는 거의 2주만에 진압됐다.
이 발전소는 체르노빌 북서쪽 18㎞ 지점이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국경으로부터 불과 16㎞ 거리다. 재앙이 발생하자 방사능물질은 러시아를 포함, 이들 나라에 심각한 오염을 초래했다.

소련은 원자로를 완전히 덮어버리는 구조물을 4호기 위에 세웠다. 체르노빌 원전은 2000년 12월 15일 영구 폐쇄됐다. 현재 사고 반경으로부터 30㎞ 이내에는 인간의 거주가 금지됐다.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분석이 엇갈린다. 피폭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고 그 평가도 다를 수 있어서다.
데이터통계기관 아우어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사고 당시 2명이 즉사, 소방대원 28명이 급성방사선증후군(ARS)으로 현장투입 직후 사망했다. 이후 ARS에 따른 추가 사망자, 방사성물질이 들어간 우유로 인한 어린이 사망 등 다양한 가설이 제기됐다.
UNSCEAR(유엔원자력방사선효과과학위원회)는 2008년, 피폭이 집중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3국의 갑상선암 환자 4800여명이 체르노빌 사고와 연관될 수 있다고 봤다.
체르노빌 인근 프리퍄트는 근무자들의 주거지 등이 밀집해 있었다. 프리퍄트 주민들은 사건 초기 영문도 모른 채 피폭 당했다. 이후 주민소개령이 내려져 수 만명이 도시를 떠났다. 한때 원전 배후도시로 성장해 가던 프리퍄트 일대는 사람이 살 수 없고 잡초가 무성한 유령도시로 남았다.
이처럼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원자력 이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키예프 북쪽 100㎞ 거리에 있는 체르노빌이 새삼 관심을 받았다. 체르노빌 지역에 들어선 러시아군이 여전히 오염된 토양에 진지를 구축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