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피네이션
"전작까지는 앨범을 굉장히 친절하게 접근했던 것 같아요. 곡에 대한 설명도 많이 하고 부수적인 것도 담으면서 제 의도를 더 편하게 알 수 있게끔 접근했어요. 식당으로 치면 파인다이닝에서 먹는 법도 알려주고 음미하는 방식도 알려주는 것처럼요. 친절하지만 먹는 사람에게는 자유도가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문득 제가 울타리를 처 놓은 것 같아서 이번 앨범을 작업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은 조금 불친절할 것 같아요. 들을 때 사고를 만들 만한 정보는 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이 곡 하나하나가 로르샤흐 테스트의 카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조금은 불친절할 수 있지만 듣는 사람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피드백을 듣고 저만의 주관적인 해석을 더해 다음 행보를 정하려고 만든 앨범이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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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만'은 학창시절 즐겨보던 '크로우즈'의 린다만을 모티브로 했어요. 극 중 린다만이 경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모두가 최강자인 것을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를 린다만에 비유했어요. '피융!'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을 모티브로 삼았어요. 단순히 총알이 지나가는 소리를 넘어 성장하는 속도 등을 의미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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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 곡 모두 지코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92년생 동갑내기 페노메코와 지코는 크루 팬시차일드를 통해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평소에도 자주 왕래하는 두 사람의 작업은 늘 그렇듯 가벼운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지코와의 작업은 생각보다 쿨하게 진행됐어요. 제 앨범에 지코 목소리가 들어간 게 이번이 처음이더라고요. 너무 편해서 '언제는 하겠지'라고 생각하다 늦어진 것 같아요. 요즘 작업하는 곡이라며 '피융!'을 들려줬는데 작업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하자고 했어요. 후에 '린다만'도 똑같이 들려줬는데 반응이 똑같았어요. 저는 두 곡을 타이를 곡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했거든요. 지코에게 둘 중 하고 싶은 거 골라보라고 했는데 못 골라서 그냥 둘 다 하게 됐어요."
앨범에 참여한 다른 피처링진도 인상적이다. 'Margiela'에는 폴 블랑코, 'Around'에는 욘코가 참여했다. 폴 블랑코는 이미 많은 힙합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아티스트이며 욘코 역시 인상적인 보이스로 수면 위로 점차 떠오르고 있는 아티스트다.
"다른 아티스트와의 작업도 쿨했어요. 폴 (블랑코)는 이제 장르 팬들에게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작업을 통해 사적으로는 처음 알게 됐어요. 생각보다 음악적 취향도 같고 서로의 가치관도 비슷하더라고요. 오히려 작업 덕분에 좋은 동생을 얻은 느낌이에요. 욘코는 생소하신 분들도 많을 텐데 요즘 신 안에서 필요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디깅을 하면서 라이브 영상을 보고 작업을 하게 됐는데 굉장히 좋은 영향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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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PABLO'는 앨범에서 가장 먼저 작업한 곡이고 의미가 있어서 작업을 시작한 연도를 넣었어요. 그때가 'DRY FLOWER' 앨범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플로우블로우라는 팀이 저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면서 트랙을 보내주더라고요. 'DRY FLOWER'와는 결이 달라서 수록하진 못하지만 도전의식이 생기더라고요. 잠깐 환기하는 느낌으로 작업을 했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게 나왔어요. 당시 앨범을 함께 하던 친구들에게도 환기가 된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이런 리액션들이 리스너들에게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에게서 나오는 이런 어둡고 무게감 있고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주는 랩이 들어간 곡을 기다리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이 앨범을 시작하게 됐어요."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하게 흘러간 것만은 아니다. 음악적 고민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개인적인 고민이 겹쳐지며 작업은 한동안 침체기에 빠지기도 했다. 게다가 관객과 만나는 공연의 비중이 높은 힙합 아티스트의 특성 상 코로나19 팬데믹은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감정적인 마모가 있었어요.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여유가 없었어요.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자아의 충돌, 정서적인 마모가 있었어요. 또 그때가 팬데믹 시기여서 앨범으로 할 수 있는 게 제한됐더라고요. 그냥 팬데믹 시기를 위한 앨범을 만들었는데 만들고 나서도 팬데믹이 끝나지 않으니 불안감이 엄습하더라고요. 밖에 나가는 것도 자제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일과도 연결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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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앨범을 소개할 때마다 아이러니한 앨범이라고 이야기해요. 제가 보여주는 태도는 불친절하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기다려 주셨던 분들이 원했던 음악을 하는 친절함이 있으니까요. 그전에는 반대였던 것 같아요. 제가 전개했던 곡들이 어떻게 보면 불친절했는데 태도만 친절했던 거죠.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에만 포커싱이 되고 그게 고집일수도 있고 이기적일수도 있는데 그래서 더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비록 태도는 불친절하지만 많은 분들이 기다려 주셨고 기대해 주신 색감을 보여드리는데 이 아이러니함이 잘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로르샤흐'는 파트1과 파트2로 나뉘어 발매된다. 파트2에 수록된 곡들 역시 작업이 완료됐지만 아직 발매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페노메코의 설명에 따르면 '아기들을 열심히 키웠지만 학교에 보내기 위해 꼬까옷을 입혀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다. 특히 페노메코는 '파트2에는 페노메코의 정수를 담은 곡이 들어가 있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높은 퀄리티와 많은 트랙 수는 정규 앨범 수준의 작업물이지만 페노메코는 이러한 인식을 피하고자 일부러 앨범을 나뉘어 발매했다. 또 편의상 EP라는 분류를 붙였지만 페노메코는 이마저도 거부하며 '로르샤흐'가 '앨범'이라는 타이틀로 불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 앨범 '로르샤흐'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앞으로의 방향성이었다.
"이 앨범을 통해 제가 앞으로 나아갈 다음 방향을 정하고 싶어요. 어느새 공식적으로 음악을 한 지가 10년이 됐더라고요. 제 커리어를 돌아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고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을 텐데 물리적인 피로감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경력이 많으신 분들도 있지만 10년이라는 기간이 적지는 않잖아요. 이번 앨범의 반응을 통해 이 물리적인 피로감을 어떻게 해소할지 또 앞으로 음악적인 방향성과 나아가 사람으로서의 방향성을 잡아나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