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색한 결과 27조각으로 토막난 시체의 부분 중 7개를 발견했고 시체 대부분은 이중으로 봉투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공원을 샅샅이 뒤져도 피해자의 머리나 몸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시체 부검 결과 범인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그 원인으로 뼈나 신경, 장기들을 제외하고는 일괄적으로 절단돼 있었고 절단된 시체에서 혈액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시체에 혈액이 전혀 남지 않게 하려면 의학지식이 필요해 일반인이 하기에는 상당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손발의 지문은 거의 모두 지워져 있었다. 또 시체의 훼손이 심각해 피해자의 사인과 사망 추정 시각을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경찰의 수사에서 발표된 피해자의 마지막 모습은 4월 21일 오후 11시 신주쿠 역이었다고 한다. 이 때 부터 세이치의 34시간이 불명이다.
다만 이후 3명의 목격자가 나타난다. 첫 번째 목격자는 22일 자정에 피해자와 닮은 모습의 남자가 JR 기치조지역 근처에 있는 백화점 샛길에서 두 남성에 의해 폭행을 당하고 있는 걸 봤다고 증언했다.
두 번째 목격자는 23일 새벽 4시 30분. 공원에서 쓰레기 봉투를 들고 서성이던 수상한 남성 2인조를 목격했고 2인조 남성은 39세로 추정된다고 했다.
세 번째 목격자는 22일 새벽에 사람과 차가 충돌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사체를 숨기기 위해 토막낸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나왔었다.
이노카시라공원 살인 사건, 결국 미제 사건으로

게다가 11개월 후에는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나 경시청에 설치된 수사본부가 해체됐다. 수사는 관할 경찰서인 미타카 경찰서로 이첩돼 별다른 성과 없이 유야무야되다가 2009년 4월 23일 공소시효 만료로 이노카시라 공원 토막살인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이후 피해자가 종교단체에 다녔다는 보도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반론 보도도 있어서 진실은 불분명하다. '오인살해'였단 보도도 있었지만 이노카시라공원 사건의 진실은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