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도망친 女…"사랑해서 죽였다" 소름돋는 스토킹의 끝[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김미루 기자 2023.04.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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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뉴스1/사진=뉴스1


7년 전인 2016년 4월19일 낮 12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한효준씨(당시 31세)가 피해 여성인 고(故) 김정은씨(당시 31세)를 스토킹하다가 살해했다. 한씨가 위협적으로 나오자 김씨는 맨발로 집 밖으로 도망쳤다. 뒤쫓아간 한씨는 대낮 아파트 주차장에서 흉기로 김씨의 몸을 마구 찌른 뒤 도주했다. 이날 한씨 가방에는 칼 세자루와 염산이 든 박카스병 등이 있었다.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은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과 신당역 지하철 역무원 살인사건에 앞서 벌어진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씨는 스토킹 혐의가 입증되어도 범칙금 8만원짜리 경범죄가 되는 제도 탓에 되레 보복당할까 신고하지 못했다. 이 사건 이후 스토킹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별 요구하자…"자살하겠다" "죽이겠다" 끝없는 협박
경찰은 수사에 나선 지 하루 만에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한 범인 한씨를 체포했다. 가해자 한씨의 정체는 피해자 김씨의 전 남자친구였다.

한씨와 김씨는 2015년 5월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약 한달 후 교제를 시작했다. 2016년 3월 김씨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한씨는 스토킹을 시작했다. 평소 한씨는 유명 증권회사에 다닌다고 했으나 거짓말이었고 김씨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감시했다. 김씨는 한씨 눈치를 보며 어렵사리 이별을 요구했지만 집착은 더 심해졌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한씨는 김씨와 그의 부모가 함께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 차를 대놓고 감시했다. 자살하겠다는 한씨의 협박은 김씨를 살해하겠다는 위협으로도 이어졌다. 한씨는 "전에 만나던 여자도 너처럼 나를 버렸다. 그 여자랑 가족들까지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아쉽게 실패하고 그냥 다리만 부러뜨렸다"며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거다. 나하고 헤어지면 너하고 네 가족 다 죽여버릴 거야"라고 했다.

정체모를 동영상을 USB에 담아 미국에 사는 동생에 우편으로 보냈고 자기 신상에 문제가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유포할 수 있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이별 직전 빌렸던 돈 수백만원을 갚겠다며 갖은 수를 써서 김씨를 괴롭혔다.

김씨 가족들은 한씨가 집 앞에 찾아와 차를 대고 감시하는 것을 알면서도 보복당할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못 했다. 아버지는 딸을 차에 태워 출퇴근시켰지만 그것마저 불가능해 집 밖을 나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김씨는 공포와 불안으로 급격하게 5㎏ 이상 살이 빠졌고 실어증 증상을 보였다.


며칠 보이지 않던 한씨가 다시 나타난 때는 4월19일이었다. 김씨는 한씨의 스토킹이 끝났다고 생각해 운동을 끊은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운동을 권했다. 그 틈을 타 한씨가 집에 찾아갔다. 칼 세자루와 등산용 로프, 염산이 든 박카스병, 마스크, 장갑 등을 가방에 넣고 번호판 없는 도주용 오토바이 등을 미리 준비했다.

당일 오전 11시 출근하려고 집을 나선 김씨 앞에 한씨가 서있었다. 한씨는 힘으로 밀쳐 김씨를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50분 뒤 김씨가 맨발로 집에서 뛰쳐나왔다. 곧이어 흉기를 든 한씨가 따라붙었다. 아파트 복도 폐쇄회로(CC)TV에 잡힌 장면을 마지막으로 주차장에 나가 따라오는 경비원도 위협한 한씨는 백주대낮에 김씨를 살해했다.

"사랑했는데 배신당했다"…3심까지 간 살인범
한씨는 로펌 소속 변호사를 4명이나 기용했다. 서울동부지법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한씨 측 변호사는 한씨가 미국에서 보낸 학창 시절 때 자해를 한 적도 있다며 정신 병력에 의한 우발적 살인을 주장했다. 감형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정진술에서는 스토킹과 살인에 대해서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죽였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김씨에게 먼저 이별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김씨가 교제를 지속하길 원했다고 거짓말도 했다. 또한 한씨는 "제가 김씨를 사랑했는데 김씨는 저의 사랑을 배신했다. 그래서 죽인 것"이라며 "나는 순수하고 여린 성격인데다 김씨가 먼저 흉기를 들었다"라고 모든 원인을 김씨 탓으로 떠넘겼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렸던 김씨의 부모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씨에 대한 심판을 호소하며 탄원서를 모았다. 국민적 공분에 휩싸인 사람들이 3만8000통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내렸다. 피고인이 계획적인 살인과 잔혹한 범행수법 등 양형의 가중요소가 두가지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한씨는 항소하며 우울증 및 정신이상을 감정할 것을 요구하며 재판을 지연시켰다. 법무부는 한씨의 상태를 검사한 결과 '이상 없음'으로 판명했다.

당시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며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이 사건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봤다"며 "국민 70%가 사형제도 부활에 공감하고 있어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인 우리나라에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은 발령하지 않으며 원심에 비해 감형됐다.

한씨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2심 재판부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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