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융감독원의 물레방아 인사

머니투데이 정혜윤 기자 2023.04.18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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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융감독원의 물레방아 인사


금융감독원 인사순환이 너무 빨리 이뤄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이복현 금감원장은 연공서열에서 벗어난 성과주의 인사원칙을 강조했다. 이 결과 지난해 8월에는 40명, 12월에는 56명의 인사를 통해 금감원 부서장 대부분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4개월도 안 돼 보직이 바뀐 부서장이 수두룩했다.

인사를 통해 금감원 조직에 긴장감과 속도감이 더해졌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잦은 인사로 조직의 피로감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인사태풍 후에도 수시인사가 틈틈이 진행되니 인사 대상자들 입장에선 초초할 수 밖에 없다. 금융투자 부문, 특히 자본시장·회계를 맡는 공시조사 쪽 상황은 혼란스럽다.



공시조사 총괄 부서 격인 기업공시국장은 지난해 8월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벌써 3번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김정태 부원장보가 금융투자보로 보직을 변경한 뒤 사실상 공시조사를 총괄하는 공시조사보도 4개월째 공석인데, 기업공시국장도 수시로 교체되고 있다.

"나도 언젠가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등에 따라 각 부서는 너나없이 이슈마다 TF(태스크포스)를 쏟아낸다.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지원을 위한 TF, 증권사 이자율수수료 지급 부과 TF,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개정 TF,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 공시기준 마련 TF, XBRL(재무보고전용언어) 선진화 추진 TF 등등. 이슈마다 업계 등을 불러 TF를 꾸리고 회의하면서 업계 부담도 커졌다.



인사방식·조직의 틀을 깬 건 긍정적이다. 일 처리가 빨라졌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힘센 수장이 중심을 잡아준 금감원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잦은 인사·TF 구성은 안팎의 피로감을 증폭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자본시장 조사·감독 등 업무처리에 연속성이 흔들리는 문제도 들여다 볼 대목이다.

현안을 빨리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긴 호흡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도 많다. 최근 금감원이 구축한 TF들만 해도 당장 하루아침에 결론이 나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3~4개월도 안 돼 기회를 박탈하기보다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예측 가능한 인사 틀을 갖춰나가는 게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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