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이야" 9분간 '174발' 총기 난사...범인은 한국인[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홍효진 기자 2023.04.1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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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 기숙사와 강의실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범인 조승희가 NBC에 보낸 사진. 조씨는 해당 사진을 포함해 범행 동기가 담긴 영상 등을 NBC 방송국에 소포로 보냈다. /사진=머니투데이DB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 기숙사와 강의실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범인 조승희가 NBC에 보낸 사진. 조씨는 해당 사진을 포함해 범행 동기가 담긴 영상 등을 NBC 방송국에 소포로 보냈다. /사진=머니투데이DB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질렀다."(You caused me to do this.)

2007년 4월16일 아침.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 기숙사에서 두 번의 총성이 울렸다. 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승희(당시 23세)는 자신의 기숙사 하퍼홀을 나와 존스턴홀 기숙사에 있던 에밀리 제인 힐셔와 라이언 클라크에게 연이어 총을 쏜 뒤 현장을 떠났다.

순식간에 두 명을 살해한 조씨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총탄을 장전한 뒤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겼다. 그로부터 약 2시간이 흐른 오전 9시40분. 교내 강의실에선 쉴 틈없이 총성이 쏟아졌다.



공포의 강의실…조승희, 9분간 '174발' 쐈다
총기사건이 벌어진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에 2007년 4월17일 폴리스 라인이 설치된 모습. /사진=로이터총기사건이 벌어진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에 2007년 4월17일 폴리스 라인이 설치된 모습. /사진=로이터
이른바 '조승희 사건'으로 불리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이 발생한지 16년이 흘렀다. 미국 버지니아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교내 기숙사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홀과 공학관 노리스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다. 범인은 한국 국적의 유학생 조승희로 조씨는 사건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첫 번째 총격은 4월16일 오전 7시15분이었다. 당시 조씨는 기숙사에 있던 에밀리 제인 힐셔의 방에 들어가 총으로 저격했다. 총소리를 듣고 나온 기숙사 사감 대학원생 라이언 클라크마저 총으로 쏴 살해한 조씨는 현장을 벗어났다. 에밀리는 총에 맞은 뒤 생존 상태였으나, 병원으로 이송된 뒤 3시간 만에 과다 출혈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 당초 에밀리는 조씨의 여자친구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었고 조씨의 스토킹 대상도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약 2시간이 흐른 9시40분. 조씨는 노리스 홀에 도착해 밖으로 통하는 문 3개를 사슬로 감아 자물쇠로 잠갔다. 출구를 봉쇄한 뒤 2층으로 올라간 조씨는 빈 강의실에 들어가 주머니에 총탄을 채워 2층 복도를 돌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곧 206호 강의실로 들어간 그는 총으로 학생 7명을 살해, 3명에 부상을 입혔고 자신을 막아선 교수도 살해했다. 이후 조씨는 복도를 다니며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는 207호에서 강의 중이던 강사 제임스 비숍을 살해한 뒤 그곳에 있던 학생 4명도 살해했다.

조씨는 총 4곳의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총격을 가했고 30명을 살해, 29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당시 조씨는 오전 9시51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9분간 총 174발의 총탄을 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건은 기숙사에서 살해된 이들까지 합하면 총 32명이 숨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치밀했던 조승희…'이민 1.5세대'와 '집단 자책감'의 그림자
조씨의 범행은 치밀한 계획 범죄였다. 그는 범행 두 달 전 총포사에서 총기를 구입했고, 한 달 동안 대학 캠퍼스에서 60㎞가량 떨어진 사격장에서 사격까지 연습했다. 조씨는 첫 번째 범행 후 우체국으로 향해, 자신의 범행과 관련된 편지와 사진이 담긴 소포를 NBC 방송국으로 보낸 뒤 학교 노리스홀로 돌아와 범행을 이어갔다.


해당 소포에는 비디오파일 27개로 된 10분 분량의 DVD 녹화물과 29장에 달하는 자신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영상에서 조씨는 "희생당한 나와 내 아이들, 형제자매들을 위해 거사를 치를 것"이라며 "너희는 그저 나를 괴롭히기 좋아했고 내 머릿속에 암을 주입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내 가슴 속에는 공포를, 지금껏 내 영혼을 찢어놓는 것을 좋아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이어 조씨는 "네 덕분에 나는 예수처럼 죽는다. 약하고 힘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예수처럼 죽는다"고 말했다.

분노에 가득찬 조승희는 학교 관계자들에게는 낯선 존재였다. 학교에서는 조씨를 말 없고 조용한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루신다 로이 버지니아 공대 전 영문학과 학과장은 "(조씨가) 너무 외로워 보여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외롭다. 친구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고 밝힌 바 있다. 래리 행커 버지니아 공과대학 대변인도 "조승희는 평소 주변사람과 교류가 없는 외톨이였다. 그에 관련된 정보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조씨는 2005년 학교 여학생 2명을 스토킹하거나 과제로 제출한 희곡에서 증오 감정을 표출하는 등 비정상적인 심리상태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이후 조씨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타국으로 넘어온 '이민 1.5세대'가 겪는 정체성 혼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1.5세대는 같은 한인 사회에도 잘 섞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더 쉽게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아울러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 사이에서는 보복 살인과 한국 이미지 실추 등의 우려가 나오기도 했으나, 정작 현지 언론은 "한국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오히려 한국인들이 느끼는 '집단적 자책감'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한편, 2013년 10월 버지니아주 대법원은 총기 사건 유족이 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관련 학교 측이 제때 경고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는 "주 정부가 학생들에게 범죄행위 가능성을 경고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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