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에서 구원을 낳는 김윤아의 음악 세계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3.04.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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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김윤아,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영화나 음악에 계속 관심을 갖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같은 작품을 반복 감상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는 단순히 그 작품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 작품이 담지한 세계를 한 번 더 살아보고 싶은 욕망의 결과일 수도 있다. 수시로 변하는 상황과 감정. 예술 작품들은 그때마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나 울고 싶은 사람에게 조용히 손을 내민다. 어차피 인간은 시공간 상 유한한 존재여서 예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선 도무지 지루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없는 경우가 꽤 많다. 한 번 감상한 작품을 다시 감상하는 일은 그래서 내가 살아있다는 걸 재확인하는 순간에 가깝다. 작품만이 아니다. 감상자의 수색은 아티스트 자체를 향할 때도 있다. 특정 작품처럼 특정 예술가에게도 그만의 냄새가 있고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를 보거나 듣고 싶은가. 이처럼 예술 감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 범위를 김윤아라는 사람에 한정해 보고자 하는 시도다. 더 정확히는 김윤아의 첫 솔로 라이브 앨범 '행복한 사랑은 없네'를 풀기 위한 실마리로서 리뷰다. 사람들은 김윤아라는 세계에 왜 가려 하는가.

'슬픈 아름다움'을 기조로 2001년부터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를 선보여 온 김윤아의 음악은 일관되게 어둡고 질척인다. 보라. 응당 밝아야 할 것 같은 봄맞이 멜로디('봄이 오면')를 김윤아처럼 칠흑 속에서 캐내는 가수는 드물다. 자기 음악의 뿌리가 자신의 불행에 있다는 그의 선언은 그렇게 김윤아의 예술 세계를 은밀히 추동했다. 불안과 염세로 흥건한 고독의 심연에서 피어오르는 뜻 모를 온기. 그것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비극을 수렴해 희극을 발산하는 그의 음악 속 이타적 아이러니는 그래서 자신을 위로하려 만든 음악이 공공의 영역에서 해내는 아름다운 반전에 가까웠다.



이 라이브 앨범은 그런 김윤아가 지난 2019년 봄(8회), 겨울(4회)에 걸쳐 했던 공연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그중 봄 공연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은 김윤아의 숙원이었던 소극장에서 열었다. 소극장 공연은 드럼과 베이스를 뺀 어쿠스틱 반주로 꾸몄는데, 쉽게 '가만히 두세요'나 '유리' 같은 곡의 느낌을 무대로 옮긴 것이라 보면 된다. 반면 겨울 공연 '사랑의 형태'는 베이스와 드럼이 가세한 풀밴드 무대였다. 이곳에선 'City of Soul' 같은 곡 분위기를 떠올리면 되겠다. 김윤아는 이 겨울 공연을 여태껏 해온 것들 중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든 공연이었다고 자평했다. 음악과 책과 영화, 인생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노래하며 "붉게 타오르던 무대"는 김윤아 음악의 강점이자 장점인 공감과 소통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김윤아는 이 공연들을 거치며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음악가로서 자신이 어디쯤 와있는지 자각과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의 가늠 사이에서 그는 남몰래 노심초사한 셈이다. 만성으로 접어든 발성장애, "악기로서 몸"을 다루는 방법. 소극장 공연은 자우림을 벗어난 솔로 가수 김윤아에겐 "매섭게 와닿은 음악적 현주소"였다.

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사진제공=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노래를 부른 사람이 직접 믹싱까지 한 만큼(2001년 자우림의 'True Live'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김윤아의 진심, 김윤아라는 사람 그 자체를 전제로 콘서트 현장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콘서트 현장으로 데려간다. 분위기뿐 아니라 기분까지 어두웠던 당시 김윤아를 가수 김윤아는 천의 얼굴을 가진 목소리로 가감 없이 전하고 있다. 가끔 나는 김윤아라는 뮤지션을 보며 일제강점기 슬픈 경쾌함으로 대중 감성을 파고든 짜스(Jass)와 슬픈 낭만을 머금은 샹송 사이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쯤으로 느낄 때가 있다. 실제 그는 나중에 '내공'이 더 쌓이면 트로트와 샹송을 엮어보고 싶다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바람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탱고 넘버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는 어쩌면 그 예고편 같은 것일지 모른다.

사실 김윤아는 이 두 장 짜리 라이브 앨범을 3년 전에 내놓으려 했다. 그런데 팬데믹이 닥쳤다. 세상이 공포와 절망으로 치닫던 시기, 김윤아는 인류의 삶(life)이 위협받던 때 자신의 실황(live) 앨범 대신 자우림의 마이크를 잡고 언제나처럼 희망을 가장한 절망의 틈새로 투신했다. 그리고 팬데믹이 잦아들기 시작한 지금 그는 겨우 자신만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타락의 노랫말로 구원을 이끌어내는 김윤아의 노래에 사람들은 다시금 세상 대신 '나'와 마주했다. 내가 이러저러하게 살아왔고 그때 내 감정은 이랬고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은 이렇다고 김윤아가 노래하면 들은 사람은 이제 그 음악이 남긴 여백과 여운 속에서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실컷 돌이켜보게 되는 것이다. 고독으로 고독을 밀어내고 괴로움으로 괴로움을 떨쳐내는 음악. 채우는 대신 비워서 곁을 내주는 김윤아의 음악은 그처럼 무심한 듯, 하지만 귀 기울여 들어주고 끄덕여주는 음악적 심리상담으로서 팬들 곁을 지킨다.

김윤아가 "봄 공연과 가장 결을 같이 하는 곡"이라고 밝힌 'Cat Song'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는 것이 누구에게도 슬프지 않고 / 아프지 않고 평화롭고 고요하기를 / 세상 그 누구에게도" 김윤아는 첫 라이브 앨범에 담은 자신의 음악 세계로 그 뜻을 관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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