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럼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입법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인베스팅 인 아메리카' 투어에 나서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반도체 제조업체 울프스피드사를 방문해 장비를 살펴 보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래픽=The Economist, PADO
미국 정책가들이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최근 제재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냉전 시대 소련에 가했던 과거의 조치와는 다르다. 이번 제재는 중국이 첨단 무기나 한정된 범위의 기술에 손대는 걸 막을 뿐 아니라 중국의 산업 전반을 약화시키려 한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작년 9월 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는 인공지능, 바이오, 청정 에너지와 같은 '기반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역량을 약화시켜 미국이 이 분야에서 최대한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계획을 '설리번 독트린'이라 부른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한국과 광범위하게 IRA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도체칩 밀수에 박차를 가하고 YMTC를 뒤흔든 FDPR은 10월에 발표된 것이다. 설리번 독트린에 따라 모든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는 머신러닝과 관련된 최첨단 칩을 중국으로부터 차단하려는 시도다. 또한 미국 국적의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심지어 미국 영주권을 가진 중국인의 중국 반도체 회사 취업을 금지한다. 베이징 유럽 상공회의소의 요르그 뷔트케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조치에 대해 "사실상 IT기술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은 2019년부터 중국 IT기업인 화웨이를 겨냥, FDPR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로 압박하고 있다. 전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또 다른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를 압박해 전 세계 10대들이 사랑하는 SNS 앱 틱톡의 강제 매각을 꾀하기도 했다. 이제 미국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 의회는 틱톡 금지에 대해 시끄럽게 논의하고 있다. 상무부와 재무부의 고위 관료들은 필요할 때 얼마든지 꺼내쓸 수 있는 다양한 제재 수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국도 자국 산업이 얻어터지는 걸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분쟁에서 그렇듯이 다른 나라들도 싸움에 휘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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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이며 피해는 얼마나 심각할까? 적어도 이번 싸움으로 인해 5700억 달러 규모의 컴퓨터 칩 시장의 공급망이 급격히 재편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청정 기술, 바이오, 심지어 농업 같은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수 있다. 세계는 사실상 상호배타적인 두 개의 블록으로 쪼개져 두 블록 사이의 자유로운 재화의 이동이 어려워질 것이고, 세계화가 가져온 혜택의 많은 부분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두 라이벌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기업과 국가는 피해를 입을 것이다.
다음 타깃은 '처리능력'미국의 다음 수는 이번에 도입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확대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칩에 대한 FDPR은 1) 처리 능력 2) 다른 칩과의 통신속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중국 기업이 집적도가 떨어지는 칩을 더 많은 물량으로 확보해 규제를 피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는 대규모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그러나 칩의 성능은 늘 개선되고 있으며 AI 훈련에 사용되는 알고리즘의 효율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재는 점점 그 효력을 잃게 될 것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빌 드렉셀은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미국이 칩에 대한 제재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칩의 연산능력에만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드렉셀에 따르면 "연산 능력과 통신 속도 사이의 최적점"을 찾는 것보다 더 간단한 접근방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수출 제한 조치를 보다 연산 능력이 낮은 칩에까지 확대하는 게 다음 수순이 될 것이다. 작년에 시장 규모가 4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하는 시장인 비디오게임 산업에서 사용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규제 확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미국 칩 제조업체와 중국 고객 모두 고통받을 것이다.
상무부가 다른 산업 분야에도 FDPR을 사용할 수도 있다. 중국 바이오의약품 산업은 2025년까지 10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는 산업인데 미국의 지적 재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신약과 치료제를 생산하는 중국 시설에 많은 생물학 원료, 기술 정보, 실험실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는 게 로펌 호건로벨스의 에이제이 쿤타묵칼라의 지적이다. 이런 거래 중 일부가 금지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다음 제재 조치가 겨냥할 가능성이 높은 타깃 하나는 중국 기업이 미국 수출용 의약품 생산에 사용하는 미국산 소프트웨어다. 서구의 많은 기업들도 새로운 의약품 개발을 위해 중국으로 데이터를 수출한다. 또 다른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에밀리 벤슨은 앞으로 이러한 데이터 전송도 제한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또 다른 조치는 기업에 대한 FDPR의 확대다. 이에 대한 시범 사례는 미국의 여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화웨이다. 화웨이의 자회사 쿤펑은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서버를 생산하고 중앙처리장치(CPU) 설계를 여러 중국 IT기업들에 라이센싱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 기업인 인텔과 AMD로부터 키트를, 대만 칩 제조업체인 TSMC로부터 칩셋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화웨이 납품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하여 화웨이의 데이터센터 확장을 방해할 수 있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15일 미국 상무부가 지난달 발표한 미국 기술과 장비를 사용한 외국산 반도체 기업의 화웨이 공급을 금지하는 내용의 추가 제재가 발효됐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제재 발효 이후 화웨이에 반도체를 수출할 수 없다.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 환경에서 미국산 반도체 설계 지원 도구(EDA)나 미국 기술을 활용한 반도체 제조 장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화웨이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서부터 통신용 모뎀칩, D램과 낸드 같은 메모리에 이르기까지 화웨이의 모든 주요 제품에는 꼭 반도체 부품이 들어간다. 사진은 15일 서울 중구 화웨이 한국지사. 2020.9.15/뉴스1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눈여겨보고 있는 산업 중 몇몇은 FDPR로는 타격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양자 컴퓨팅 산업은 초기 단계로, 미국산 장비나 지적 재산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분야의 중국 연구자들은 미국 연구자들과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과학자 에드워드 파커는 미국 양자 컴퓨팅 전문가들이 다른 어떤 외국 연구자보다 중국 연구자들과 더 많은 논문을 공동 집필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상무부의 또 다른 무기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바로 '간주(看做) 수출(deemed export)' 통제로, 미국 영토 안에서도 특정 유형의 기술 정보를 외국인에게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는 모두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양자 컴퓨팅 연구에서 외국인과의 협력을 금지하면 유능한 외국인을 채용할 수 없게 돼 중국 산업은 물론 미국 산업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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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국 기업도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중국 항공사는 수입 항공기와 부품에 의존하는데 그 상당수가 미국산이다. 따라서 미국이 전면적인 FDPR을 통해 중국 항공산업을 마비시키는 것도 가능하며 중국 관료들은 이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미국의 거대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에도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회피의 달인게다가 미국이 어떤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더라도 중국은 결국 이를 우회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가짜 임산부 배는 조잡한 형태의 회피 방법이지만 훨씬 정교한 방법도 많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이 금수 조치를 내린 모든 걸 대체할 수 있는 국내 역량 개발로 이어질 것이다. 화웨이는 좋은 사례다. 화웨이의 통신 장비 및 스마트폰 사업부는 규제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는 최근 연설에서 자사 시스템에서 외국 지적 재산을 배제하려는 노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부품 1만3000종의 공급을 국내에서 확보했고 회로기판 4000종을 재설계했다고 주장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회사 전체의 운영을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인 ERP(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을 자체개발해 4월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라클에서 개발한 시스템을 사용해왔다.)
(선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왕청루 화웨이 소프트웨어 담당 사장이 1일(현지시간) 광둥성 선전에서 독자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훙멍 하모니 OS를 설명하고 있다. (C) AFP=뉴스1
한편 미국의 제재가 강화될수록 전 세계 기업들은 움츠러든다. 많은 기업인과 일부 외국 정부는 미국이 들이는 비용은 크지만 그 소득은 거의 없는 방식으로 세계화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다고 불평한다. 서방 기업들은 중국 사업을 기업 내의 '중국 사업부'라기보단 울타리로 둘러싸인 별개의 조직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중국 외부에 있는 연구 부서와는 점차 연결이 끊어지고 있다. 추가 제재의 위협이 아른거리자 경영진은 중대한 투자 및 채용 결정을 미루고 있다. 중국 IT기업들 역시 틱톡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방 국가에 대한 투자와 확장을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동맹국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하도록 설득하는 데 항상 성공하지는 못했다. 일례로 10월에 발표된 일련의 FDPR은 네덜란드, 한국, 일본의 지지를 확보하기 전에 발표되었다. 이들 국가는 첨단 칩과 칩 제조장비를 많이 생산한다. 이들이 미국의 새로운 규제를 따르지 않는다면 중국 봉쇄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발표 후 미국 정부 관계자는 네덜란드와 일본 정부로부터 내키지 않는 듯한 동의를 얻어냈지만 네덜란드 칩 제조장비 생산업체인 ASML과 몇몇 일본 대기업에게는 고통스러운 조치가 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1년의 유예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규제를 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은 메모리칩의 절반 가량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CNAS의 샘 하웰은 지적한다. 한국의 반도체 대기업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제조 시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들은 제재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엔 미국으로부터, 그리고 준수할 경우엔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위험이 있다. 하웰은 미국의 방대한 제재 프로그램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지금까지는 대대적인 보복을 자제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애플과 같은 미국 대기업이 자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반기고 있다. 3년만에 중국을 방문한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은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적 '디커플링'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3월 25일 베이징에서 지난 30년 동안 양국의 "공생" 관계가 양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상무부는 태양광 패널에 쓰이는 일부 첨단 실리콘 웨이퍼의 수출금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많은 미국 기업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다. (물론 중국 수출업체에도 치명적일 것이다.) 그보다 중국의 보복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바이오 산업이다. 많은 미국 기업이 의약품과 의료 기기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리서치 기업 로디움의 레바 구존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탄저균 항체에 사용되는 일부 성분은 오직 중국에서만 생산된다. 미국이 더 많은 제재를 발표할수록 보복에 보복이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미국의 접근방식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러한 접근방식이 자국 기업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될 기술 개발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제재의 영향을 받은 산업 내 기업들의 비용도 확실히 상승할 것이다. 제재 드라이브는 또한 미국을 깡패처럼 보이게 만들 위험도 있다. 파커는 중국인이 고급 양자 과학 연구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 것은 중국의 양자 컴퓨팅 발전을 늦출 수 있겠지만 미국의 개방성에 대한 관념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말 충격 받았죠." 작년 10월 시행된 일련의 FDPR을 두고 한 중국 경제학자가 한 말이다. "자유무역, 규칙에 기반한 질서, 열린 경쟁처럼 지금껏 제가 들어온 것들과 정반대였으니까요."
이 글은 국제시사·문예 버티컬 PADO의 '미국이 만지작거리는 美中경제전쟁의 또다른 무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