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나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은 현재까지도 세계 최대 해난사고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일각에서는 711명이나 살아남지 않았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는 전체 탑승객 2224명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후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한 결과, 차가운 공기와 밤이라는 시간적 요소 때문에 쌍안경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거기다 타이타닉호에는 탐조등도 설치되지 않았다.
안전불감증도 침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출항 오전부터 '빙산이 돌아다닌다'는 경고가 있었고, 심지어 타이타닉호는 4월 14일 통신을 통해 총 6통의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직원들은 '북대서양 항해에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경고를 넘겼다.
피할 수 없던 빙산…멈춰 선 타이타닉호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정면으로 부딪치지는 않았으나 우현 측면이 충돌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선원과 승객은 빙산 충돌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의 누수 현상은 예상보다 심각했고, 최하 갑판을 시작으로 물이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타이타닉 침몰까지 최대 2시간밖에 남지 않았던 것.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선원들에게 구조 요청을 보낼 것을 지시했으나 같은 날 오후 11시 59분, 배는 완전히 멈춰 섰다.
세계 최대 여객선, 바다에 가라앉다

하지만 배는 확실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위험을 감지한 승객들은 하나둘 구명정에 탔고, 4월 15일 오전 1시 30분에는 해수면이 상갑판의 선수까지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선원들은 우선순위를 고려해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구명정에 태웠고, 탑승이 거부된 승객들은 구명정에 타기 위해 구명정을 내리고 방치된 줄을 타거나 물에 뛰어들어 구명정까지 헤엄쳐 갔다.
그러나 구명정은 승객 수와 비교했을 때 터무니 없이 적었다. 결국 스미스 선장은 남은 인원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다.
2시가 넘어서면서 바닷물은 본격적으로 갑판을 뒤덮었다. 배 위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타이타닉호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고, 폭음과 함께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그렇게 세계 최대 여객선으로 불렸던 타이타닉호는 2시 20분쯤 수면 아래로 완전히 사라졌다.
심지어 당시 바닷물의 온도는 영하 2℃였다. 이에 구명정에 타지 못한 채 바다에 있던 사람들은 저체온증과 심장마비로 숨졌다.
카르파티아호의 구조…영화로 재조명

카르파티아호 선원들은 타이타닉호 생존자들을 위해 따뜻한 음료와 담요,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고 승객들 역시 생존자들 구조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침몰 며칠 후 시신이 수습됐고 장례가 치러졌다. 그러나 모든 시신이 수습되지 않았기에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른 경우도 있었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은 1997년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대중들에게 재조명됐다. 2012년에는 타이타닉호 침몰 100주기를 맞아 세계 곳곳에서 타이타닉호를 기념하고 침몰자를 애도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타이타닉호는 인기 관광상품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민간 해저탐사업체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은 '타이타닉 탐험'이라는 이름의 관광 프로그램을 지난해 진행했다.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에서 680km 떨어진 지점에서 잠수정을 타고 내려가 타이타닉 잔해를 돌아보는 이 관광 프로그램은 8시간동안 진행됐다. 전체 프로그램에 드는 비용은 25만달러(약 3억4000만원)로, 탐험객들이 나눠서 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는 올해에도 관광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