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울산의 한 열악한 집에서 죽어가던 백구 45마리가, 이리 건강해졌다. 거기 두었어도, 울산시 보호소로 갔어도, 아마 다 별이 됐을 녀석들이 벚꽃을 볼 수 있는 봄을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사진=남형도 기자
73세이고 유기견을 살린 지 20년이 됐단다. 부산 '똘이네 쉼터'에선 유기견 100마리와 살면서, 지난해 울산 한 쓰레기 집에서 죽을뻔한 백구 45마리를 또 구조해 돌보고 있다고. 부산-울산, 1시간 반 거리를 홀로 맨날 왔다 갔다 하면서. 왼팔은 오랜 노고로 들 수도 없는 지경이 됐으나, 개들 때문에 수술도 못 하고 있다고. 그리 버텼는데 최근 울산 백구들에 파보 바이러스가 퍼졌고, 세 아이는 안타깝게 별이 되었고, 남은 녀석들 살리느라 몸이 바스라 지고 있다며.
오승미 소장님이 백구를 부르고 있다. 어렸을 때 경험 때문에, 사람을 여전히 많이 두려워한다./사진=남형도 기자
피 흘리던 백구 45마리 살렸다, "행복할 기회, 한 번이라도 주고 싶어서"
지난해 여름, 오승미 소장님이 처음 마주한 피흘리던 '백구 45마리'의 모습. 식중독과 피부병 때문에 상태가 많이 안 좋았을 때였다./사진=우채연 봉사자님
새벽 5시에 일어났단 그는, 이미 부산 '똘이네쉼터'서 아이들 밥 챙기고 배변을 다 치운 뒤, 이곳 울산에 넘어와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삭발한 머리, '개·고양이 도살 금지'라 쓰인 흰 반소매 티, 왼팔엔 '팔 보호대'. 오 소장은 "팔이 아파서 요즘 핸드폰도 못 든다"고 했다. 통증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었단다.
지난해 여름, 처음 발견 당시 백구들 모습. 지붕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비도 피할 수 없었단다./사진=우채연 봉사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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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백구들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여름, 경매로 나온 집을 보러 갔을 때였다. 강아지가 입구에 나오는데 온몸에 피가 줄줄 흘렀단다. 좋지 않은 예감에 오 소장이 문을 열어달라 했다. 주인은 거부하다 설득 끝에 문을 열었다. 집안 광경은 충격이었다. 청소도 안 된 집은 쓰레기장 같았다. 백구들 밥그릇엔 음식물 쓰레기가 있었고, 식중독에 피부병으로 피 흘리는 녀석들이 천지였다. 많은 개가 죽어 나갔단다. 그 뒤 주인은 불가피하게 떠났다. 백구 45마리만 집에 남겨지게 됐다.
비를 피할 수 있게 집을 만들고, 창문을 내고, 아픈 애들은 치료해주고, 제대로 된 밥과 물을 넉넉히 먹였다. 그러니 이리 건강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맛있는 걸 먹겠다며 기다리는 백구들. 약을 먹이기 위해 고기와 밥으로 만든 주먹밥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만개한 벚꽃에, 눈길 줄 틈도 없이
그리 상태가 안 좋았던 백구들이 이리 포동포동해지고 예뻐졌다. 위 사진과 다른 모습이다./사진=눈에서 꿀 떨어지느라 본분을 잊어버린 남형도 기자
2층에 올라가 다섯 백구부터 처음 만났다. 일억이·이억이·삼억이·사억이·오억이라고, 견사에 이름이 쓰여 있었다. 1년 전 피 흘렸다던 녀석이 맞는지 의심될 만큼 상태가 좋았다. 하얀 털은 보들보들 윤기가 흘렀고, 움직임도 좋았다. 녀석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들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이 있었는지를. 배변을 담아 치우고 물로 시원스레 씻어냈다. 오 소장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그날 해야 할 일을 꼼꼼하게 당부했다.
유기견을 돌보는 일만 20년. 이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사진=남형도 기자
완연한 봄이었다. 만개한 벚꽃이 잘 보여 금세 시선을 뺏기곤 했다. 하지만 오 소장은 벚꽃은 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백구들만 바라보았다. 필요한 걸 더해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다가오지 못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음을 가여워했다. 이 소장과 최 소장도 마찬가지였다. 나누는 대화가 봄과는 멀어 보였다.
오승미 소장님 곁을 지키며 물심양면 돕는 두사람. 이미서 소장님(왼쪽)과 최금숙 소장님. 두 사람이 아이들에게 먹일 밥을 나누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벚꽃이 펴도, 폈는갑다 하고 그라지."(최 소장)
"나 언양 간다니까, 아들이 전부 다 벚꽃 구경하러 가냐고. 그래서 나 개똥 치우러 댕기는데 그랬지(웃음). 근데 진짜 오면서도 그랬어. 힘들어도 되니까 애들 안 죽었으면 좋겠다고. 죽으면 마음이 미칠 것 같으니까, 그 생각만 들더라."(이 소장)
파보 바이러스로 떠난…'구름이'와 새끼 두 마리
파보 바이러스에 처음 감염돼, 지난달 무지개다리를 건넌 구름이. 아픔 없는 곳에서 평온히 봄볕 쬐고 있기를./사진=우채연 봉사자님
그리 사람을 무서워하며 도망 다니던 녀석들이, 아파서 잡아도 가만히 있었다. 물려고도 하지 않았다. 혈변이 나왔다. 보호소에 올 때마다, 백구가 죽었을까 싶어 노심초사였다.
그러니 2주 동안은 초비상이었다. 너무 많은 애들이 걸려서, 밤낮으로 울산을 오갔다. 이 소장은 "집에 가서 자니까 새벽 4시 30분, 이랬다"며 "약 먹이고 주사 맞히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하루 한 끼, 콩나물국밥만 겨우 먹을 때도 있었다. 배고파서 저혈당까지 온 날도 있었다고.
파보 바이러스 치료에 모두가 집중하던 때. 정말 고생이 많았단다./사진=우채연 봉사자님
약을 먹고, 또 밥을 든든히 먹이고. 귀를 젖히고 꼬릴 흔드는 백구들을 보며 "잘 먹는 게 이리 흐뭇한 줄 몰랐다"고 했다. 그 평범한 광경이 좋은 거였다. 다만 집에 콕 박혀서 나오지 않는 백구도 있었다. 파보 바이러스로 새끼 두 마리를 잃은 어미라고 했다. 어두운 구석에 잔뜩 웅크리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밥을 이리 맛있게 먹는 모습도 얼마나 좋은 것일지./사진=남형도 기자
"아들이 웃는다, 웃어, 웃어"…소장님도 웃었다
사람을 그렇게 무서워하던 백구들도, 이리 다가오고 반길 줄 알게 되었다. 절대적인 돌봄과 사랑 덕분에./사진=남형도 기자
"병원에서 수술받아도 6개월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대요. 그래서 '지금은 수술받을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의사 말 안 들을 거면 오지 말고, 참고 살라고 하더라고요. 언젠가 축 처져 못 쓸 때가 온다고요."
킁킁, 나랑 친하게 지내자 얘들아. 간식 없으면 글쎄요./사진=간식이 하나도 없는 남형도 기자
그래도, 또 살린다. 모른척하지 못한다. 울산에 가는 길이었다. 차도에서 반려견이 왔다 갔다 했다. 결국, 2시간을 추격해서 구조해 데려왔다. 이름을 철수라 지어주었다. 그동안 살리고 입양 보낸 유기견만 300마리가 넘는다. 한겨울 몹시 추운 날 만난 복길이는, 발견한 이가 시 보호소에 보내려던 걸 데려왔다. 입안에 피가 줄줄 흐르고 다리에 혹까지 있었다. 알고 보니, 복길이가 아프다고 주인이 버린 거였다.
차도에서 구조한 철수./사진=오승미 소장님
안주 만드는 음식점 철창에 묶여 있기에 구조한 왕자, 산속에 묶여 방치돼 있던 초코, 가둬진 채 학대당했던 폴이, 모두 지금은 오 소장 덕분에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 가서 잘살고 있다. 고된 가운데 그게 유일한 보람이란다. 그날도 오 소장이 가장 기뻐하던 순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봄볕을 쐬며, 해맑게 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였다. 그때 행복해하며 이리 말했다.
"아들이 웃는다, 웃어, 웃어, 웃어."
매달 고정 후원 25만원, 잔고 35만원…병원비는 300만원씩 나가
백구들 집을 물로 청소하고 있는 우채연 봉사자님. 그는 보호소를 지탱하는 운영진이기도 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수입은 턱없이 적다. 오 소장은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후원이 매달 25만원 있다"고 했다. 여기에 기초생활 수급자라 받는 생계비 70만원을 더해 충당한다. 부족한 병원비 등은 그때마다 후원으로 겨우 메운다. 사룟값은 세 달에 120만원 정도 나가고, 월세 20만원, 전기 요금 등도 올라 살림살이가 빠듯하다. 현재 잔고가 35만원 남았다.
나와 동갑내기 봉사자이자, 오승미 소장님이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정승준 봉사자님./사진=남형도 기자
오 소장은 "울산 백구 보호소 때문에 너무 힘들다. 포기하고 싶단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포기할 수가 없다"고 했다. 금전적인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울산은 봉사자도 하루 한 명 정도밖에 안 와서, 일손이 부족하다. 특히 힘쓰는 일이 많아 남자 봉사자도 많이 필요하단다. 울산뿐 아니라 부산도 여전히 고민이다. 안정된 터전 하나 없어, 5년 동안 3번이나 이사 다녔다. 지금 집도 주인이 "이사 비용 줄 테니 나가라"고 하고 있다. 갈 곳이 없다.
"마지막으로 애들 그림처럼 잘 키우고 마무리하는 게 꿈이지요. 내가 나이 60살만 됐어도 걱정을 안 할 텐데, 내가 문제지요. 너무 진짜, 가슴이 아픕니다."
모두가 외면하는 존재를 모른척하지 못하는 죄(罪)로, 오로지 가능한 자기 스스로만을 깎아나가며 버티고 있는, 오 소장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벚꽃이 핀줄도 모르고 백구들만 바라보는 이를 위해, 봄이 왔다고, 또 봄이 올 거라고 홀로 사진을 남겨주고 싶었다./사진=남형도 기자
2003년이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오 소장이 죽음을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잘못 만나 사기를 당했단다. 사업을 다 정리하게 됐다. '이래 살면 뭐 하겠노' 싶어 차를 가지고 낭떠러지로 갔다.
그때 곁에 있던 반려견 똘이가, 그의 팔을 막 잡아당겼다. 마치 엄마 그러지 말라고, 함께 살자고 어르는 듯했다. 오 소장은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돌아와서 대리운전부터 다시 시작했다.
밤과 낮을 운전하고 다니며 헤매고 떠도는 개들이 하나둘씩 보였다고.
그때부터 유기견을 구하기 시작했단다.
지난해 여름, 열악한 집에서 죽어가던 백구 45마리가 살아났다. 거기 두었어도, 울산시 보호소로 갔어도, 아마 다 별이 됐을 녀석들이 벚꽃을 보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사진=남형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