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중한 금속의 모험: 조각가 앤서니 카로[PADO]

머니투데이 파이낸셜타임스 2023.04.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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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카로의 작품 <포럼(Forum)> (1992/1994) / Photograph by Andy Stagg (C) Pitzhanger Manor & Gallery앤서니 카로의 작품 <포럼(Forum)> (1992/1994) / Photograph by Andy Stagg (C) Pitzhanger Manor & Gallery


최근 어느 영국 장관이 영국 철강산업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철강이 꼭 필요하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철강 없이는 건설, 차량 제조, 국방, 항공, 기계, 기차, 교량도 없다. 철강은 곧 모더니티다.



조각가 앤서니 카로(Anthony Caro, 1924~2013)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1960년대 초 그의 강력한 강철 작품이 처음 등장했을 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카로는 헨리 무어*의 조수로 일했으며, 무어의 스튜디오를 떠난 후 자신의 표현매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처음에는 덩치가 크지만 다소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사람 형상의 청동 조각을 만들었다.

*[헨리 무어(Henry Moore): 유럽의 조각 전통에 반발, 원시 미술에서 이상을 찾았고, 추상예술의 가능성과 조각재료의 고유한 물질성을 탐구한 세계적인 조각가 --역주]



런던 캠든타운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앤서니 카로 / Photo by Nicholas Sinclair (C) The Anthony Caro Centre런던 캠든타운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앤서니 카로 / Photo by Nicholas Sinclair (C) The Anthony Caro Centre
미국 방문 중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만나고 데이비드 스미스의 작품을 접하고 나서 카로는 런던으로 돌아와 산소용접기를 구입하고는 강철 작업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어떤 갤러리도 이러한 작품을 선보이려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거대한 추상표현주의 캔버스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현장은 여전히 크기가 절제되고 실내에 둘 수 있을 규모에 머물러 있었다. 1961년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카로가 개인전을 열었을 때야 비로소 그의 작품에 제대로 된 공간이 주어졌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묵중한 작품들에는 급진적이고 기이하며 신비로운 무언가가 있으며, 그리고 런던 서부에 있는 건축가 존 소운(John Soane: 19세기 영국 건축가로 '영국 건축의 아버지'로도 평가 --역주) 경의 핏쟁거매너를 배경으로 한 《앤서니 카로: 건축의 영감》전시에서 카로의 작품들은 빛나고 흥미를 자극하며 동시에 이 장원저택(매너)을 압도한다.

장원저택의 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아연 도금된 강철과 강렬한 보라색 구조물로 이루어진 〈매그놀리아 통로(Magnolia Passage)〉(2005~2006)를 만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이 전시의 모든 구성 요소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발견된 산업 오브제*'(이 전시에서는 주로 강철 박스 빔), 조각과 공간 사이, 설치미술과 놀이터 사이의 혼동, 그리고 내부 공간이 있는 예술에 대한 제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 대량생산된 제품이 미술작품 소재로서 재발견된 것 --역주]

"조각은 항상 오브제와 표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카로는 내부에 관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내부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앤서니 카로 센터 CEO이자 큐레이터인 폴 무어하우스의 설명이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구겨진 녹슨 철탑과 마주하게 되는데, 마치 약간 상체를 젖혀 사색에 잠기고, 엉덩이를 약간 비스듬하게 올린 듯한 기묘한 작품이다. 그 형태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지만, 인간의 태도를 넌지시 보인다. 구축주의 타워, 폐차장 로봇, 바우하우스 발레 의상, 컬트 오브제를 조금씩 닮은 이 작품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의 웅장한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엉망이 되어버린 타워 꼴이다. 카로는 형태와 접합에 관심이 많은 구축주의자라는 인상을 내게 준다. 그렇지만 "카로는 구축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반대였습니다." 앤서니 카로 센터 CEO인 무어하우스의 반박이다.

*[구축주의(constructivism): 1920년대 러시아 주류였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으로 산업적 재료와 실용성을 강조하면서 주로 사회주의 이념을 표명 --역주]

이 전시회의 모든 조각 작품을 함께 만든 카로의 오랜 조수 패트릭 커닝엄(그는 1970년부터 카로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작업했다)은 "카로는 처음 시작할 때는 조각품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전혀 몰랐습니다"고 말한다. 그리고 커닝엄은 산업 폐기물을 가리키며 "아마도 이런 조각 하나에서 시작했을 것일텐데, 그리고 나서는 1인치 두께의 철판 옆에 이 조각 하나를 배치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리고 거기로부터 다음 단계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라고 카로의 작업에 대해 설명한다.

이 전시 제목("건축의 영감")은 건축에 대한 친밀감을 보이지만, 이것은 건축이 작동하는 방식은 아니다. 사전 설계가 없는 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카로의 작품은 공간에 대한 몽환적인 이해를 보여주며, 실용적인 결과물보다는 무의식적 관념이 그리는 공간을 제시한다. 이는 조각과 공간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기법이다. 카로는 "건축은 아마도 가장 순수한 추상적 시각 형태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카로의 작품 <어린이 타워 룸(Child's Tower Room)> (1983~1984) / Photograph by Andy Stagg (C) Pitzhanger Manor & Gallery카로의 작품 <어린이 타워 룸(Child's Tower Room)> (1983~1984) / Photograph by Andy Stagg (C) Pitzhanger Manor & Gallery
카로의 말년에 나는 그와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당시 우리는 함께 책을 쓸 계획이었다), 나는 그가 건축의 본질을 기능보다 순수한 형태로 인식한 것이 건축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는지 건축에 대한 심오한 이해 때문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그의 작업은 흥미로운 중간 지대를 만들어냈다. 가장 건축적인 작품으로는 대형 목재 작품 〈어린이 타워 룸(Child's Tower Room)〉(1983~1984) 이 있는데, 로켓 우주선과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미완성 나선형 타워 중간쯤 자리하는 크고 친근해 보이는 작품으로 어린이들로 하여금 내부의 어둑어둑한 공간에 올라가 놀도록 초대한다.

카로의 작품 <눈은 알고 있다(The Eye Knows)> (2013) / Photo by John Hammond (C) Anthony Caro Centre카로의 작품 <눈은 알고 있다(The Eye Knows)> (2013) / Photo by John Hammond (C) Anthony Caro Centre
〈눈은 알고 있다(The Eye Knows)〉(2013)같은 가장 미니멀한 작품은 한 방향으로 광택을 낸 금속 표면이 친밀감을 거부하지만 그 형태는 보는 관람객을 끌어당긴다. 나는 작품의 중심부분이 폐기된 산업용 싱크대를 재생한 것이고 또 이것을 뒤집어 놓은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꽤 자세히 살펴봐야 했다. 이 싱크대는 곡선으로 움푹 들어가 있고 그 내부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두껍고 투명한 아크릴 판이 그 중간을 가로지른다. 이 작품은 '발견된 오브제'와 미니멀리스트 구조물이 결합되어 있어, 구부러진 강관(鋼管)의 추상미가 선명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산업 제조 공정이 숭고한 것을 만들어내는 반면, 예술은 손으로 만든 것과 기계로 만든 것 사이의 접합들이 어색해 항상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좀 더 작은 작품들이 전시된 다른 방은 스케일을 달리한다. 이 작은 작품들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으면서 받침대 가장자리 밖으로 삐져 나와 있는데, 이러한 배치 방식이 작품의 귀중함과 완결성을 고의로 가로막는 듯하다. 〈유물보관소(Reliquary House)〉(2011)는 어두운 내부에서 돌출한 '발견된 철제 오브제'들을 포함하는 마치 귀신이 나올 듯한 콘크리트 오두막이다. 일부 조각 작품에서는 공간이 명확히 보이는 반면, 다른 조각에서는 공간이 보이지는 않지만 항상 작품 내부에 존재한다는 느낌이 왠지 모르게 든다.

카로는 아마도 자신의 보스였던 헨리 무어와 연관되어서인지 야외 조각 공원들을 싫어했고, 자신의 작품을 화이트큐브(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실내공간-역자 주) 에 전시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도 나이가 들어 누그러지면서 야외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포럼(Forum)〉(1992/94)의 무겁고 녹슨 프레임이 바깥 정원에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가장 인상적으로 구성된 작품은 두 건물 사이의 작은 외부 공간에 있어 여러분들이 놓치기 쉬울 수도 있다.〈문(Door)〉(실제 문이 아님)은 부분적으로 공원의 후원으로 가는 실제 문을 가리기도 드러내기도 한다. 기계 부품과 건축 요소로 이루어진 이 아연 도금 강철 구조물(거대한 말뚝과 강철 기둥처럼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은 원래 무엇이었는지 반쯤 알아볼 수 있는 것들, 너무 평범해 보이지도 않는 모더니티 요소들, 건설 현장의 임시변통, 금속으로 지은 창고와 농업 건축물의 평범한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가을 랩소디> (2011) / Photo by John Hammond (C) The Anthony Caro Centre<가을 랩소디> (2011) / Photo by John Hammond (C) The Anthony Caro Centre
존 소운 경이 수집해둔 모조 골동품 파편들, 처마 장식과 엔타블라처(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에서 기둥이 지지하는 윗부분 --역주) 컬렉션, 즉 대량생산된 고전적 건축의 출발점과 함께 세팅된 이 공간에서 우리는 두 명의 인물이 각각 모더니티의 '발견된 오브제'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 명은 과거를 보고 다른 한 명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중공업의 언어인 강철이 이제는 한때 위대한 산업 문명의 고고학처럼 보인다. '발견된' 건축물의 파편들은 분해되어 쇠퇴의 눈짓과 함께 창조는 여전히 가능하다는 낙관을 띈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앤서니 카로: 건축의 영감(Anthony Caro: The Inspiration of Architecture)> 전시는 영국 런던 서부 핏쟁거매너(Pitzhanger Manor)에서 3월 9일부터 9월 10일까지 열린다.


작가 앤서니 카로(Anthony Caro)는 대표적 영국 조각가로서 대담하고 균일한 색조로 칠한 철판이나 철골 등 산업 폐기물을 이용해 추상 조각을 제작하는 등 1960년대 조각을 재정의함으로써 현대 조각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필자 에드윈 히스코트(Edwin Heathcote)는 저술가, 건축가, 디자이너로서 1999년부터 파이낸셜타임스(FT)의 건축/디자인 비평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대 미술사학 박사로 대영박물관 어시스턴트를 거쳐 현재 명지대 객원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역서로는 <중국 근현대미술사>(근간)가 있다.


- 원문: Anthony Caro, Pitzhanger Manor review -- adventures in heavy metal © 2023 The Financial Times Ltd. All rights reserved.
- 편집: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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