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중독→풍력 강국…10년간 영국엔 무슨 일 있었나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23.04.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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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이 더 저렴해서 선택…해상풍력 2010년 0.8% →2021년 12%

편집자주 [넷제로 케이스스터디] 탄소중립은 정부의 정책, 기업, 시민사회 모두가 풀어가는 과제입니다. 많은 국가에서 탄소중립은 이미 '달성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논의를 지나 '어떻게 이행하느냐'의 논의로 진입한 상황입니다. 한국에 함의를 줄 수 있는 각 국가·기업·지역 사회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영국 하이윈드 스코틀랜드(Hywind Scotland)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단지/사진제공=에퀴노르영국 하이윈드 스코틀랜드(Hywind Scotland)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단지/사진제공=에퀴노르


72% -> 2%

1990년과 2021년 영국의 총 전력에서 석탄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다. '석탄 중독'이란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석탄 의존도가 극심했던 영국 경제는 현재 '제로'에 가깝게 석탄 사용을 줄였다.

어느 국가든 에너지 전환은 막대한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난제다. 정교한 정책 설계는 이 난제를 푸는 핵심이다. 이 점에서 영국의 탈(脫)석탄은 성공한 에너지 전환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된다. 영국이 어떻게 석탄 중독에서 벗어 났는지 대표적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 봤다.



영국 석탄 발전 비중, 10년 만에 28%에서 2%로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가 매년 발간하는 에너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영국 전력 중 풍력·태양광 발전 비중은 24.9%으로 2010년(2.6%) 대비 약 10배 늘었다. 바이오 에너지 등 기타 재생에너지도 12.9%로 10년 전(3.2%) 대비 증가했다. 원자력(2010년 16.2→2021년 14.8%)을 포함할 경우 무탄소 발전이 절반을 넘는다.



반면 같은 기간 석탄 발전은 28.1%에서 2.1%로 급감했다. 줄어든 석탄의 자리를 재생에너지가 대체한 것이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 위기로 영국 내 마지막 석탄발전소 세 곳의 가동을 수개월 연장했지만, 내년 석탄발전을 종료한다는 계획은 유지 중이다. 아직 영국의 최대 발전 원은 천연가스(39.8%)이나, 총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춘다는 목표는 달성했다.

석탄 사용의 급감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로 직결됐다. 영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2010년 6억860만톤(t)CO₂eq에서 2020년 4억550만tCO₂eq으로 줄었는데, 발전 부문 배출량이 2010년 2억74만tCO₂eq에서 2020년 8400만tCO₂eq으로 급감한 게 이 감소분의 핵심이다.

이렇게 10년 만에 에너지 믹스가 급격히 바뀐 데엔 영국 정부가 내놓은 에너지 정책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된다. 여러 정책 중에서도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민간에 준 인센티브와 석탄 사용을 끝내기 위한 가격 규제가 핵심으로 꼽힌다. 이 정책들의 핵심은 '석탄을 비싸게, 재생에너지를 싸게' 만들어 시장이 재생에너지를 선택하게끔 유도했다는 점으로 수렴한다.


석탄 중독→풍력 강국…10년간 영국엔 무슨 일 있었나
재생에너지, 더 저렴해서 쓴다

대표적 인센티브 정책 중 하나는 영국 정부가 2014년 시작한 발전차액(CfD) 지원 제도다. 핵심은 이렇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빨라지려면 발전업체들 입장에서 화석연료보다 재생에너지가 더 높은 수익을 내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즉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화석연료에 비해 저렴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용을 낮추려면 최소 수년 동안 우선 발전업체들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 해 인프라를 깔고 기술을 고도화해야 한다. 발전업체 입장에서 이 투자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전력 판매 가격의 변동성이다. CfD는 정부가 이 가격의 불확실성을 낮춰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도록 유인한 제도다.

구체적으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 무탄소 발전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발전사업자가 특정 프로젝트로 생산하게 될 전력에 대해 정부 산하 기업과 15년간 고정된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이 계약을 통해 발전기업은 고정된 가격과 움직이는 시장 도매가격의 차액을 지원 받는다. 시장가격이 고정된 가격 보다 낮으면 정부가 발전사업자에게 그 차액을 준다. 이 구조를 통해 발전기업들은 일정한 기대수익을 보장 받고 장기 투자계획을 짤 수 있다. 대신 시장 가격이 더 높으면 발전사업자가 차액을 정부에 내 전력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준다. 한마디로 발전업체들이 시장에서 손해를 보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고, 이익이 나면 차액을 정부에 환원하는 제도다.

여기에 CfD 제도는 2015년 이후 입찰로 진행됐는데, 가장 낮은 입찰가를 적어내는 발전업체가 낙찰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발전업체 입장에서는 더 낮은 입찰가를 써야 낙찰이 되니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를 낮추기 위한 경쟁이 빨라졌다. 시장의 경쟁과 기술 발전으로 이미 영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화석연료 보다 저렴해졌다. 지난해 4차 CfD 입찰에선 총 11기가와트(GW) 규모 전력공급이 가능한 7개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들이 낙찰됐는데, 영국 매체 카본 브리프에 따르면 낙찰된 발전업체들이 써낸 평균 입찰가격이 메가와트시(MWh) 당 48파운드로 같은 시점 가스 발전 비용의 9분의 1이었다.

특히 규모의 경제가 뚜렷한 해상풍력의 발전비용 감소 뚜렷하다. 2017년 시행된 2차 입찰에서 해상풍력 프로젝트 최저 낙찰가(57.50파운드/MWh)는 영국 신규 원자력발전소인 힝클리 포인트의 발전 예상 구매단가(92.50파운드/MWh) 보다 낮았다. 2019년 3차 입찰엔 해상풍력 업체 중 보조금 없이 낙찰된 첫 사례가 등장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보조금 없이 기존 발전원과 경쟁력을 갖는 수준이 된 것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영국의 해상풍력 평균 발전단가(LCOE)는 2010년 평균 0.210달러/kW에서 2021년 0.054/kW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독일의 해상풍력 발전단가(0.179→0.081달러) 보다 가파른 하락세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높아지며 확산도 빨라졌다. 해상풍력의 경우 발전용량이 2010년 3.1테라와트시(Twh)로 전체 발전의 0.8%에 불과했지만 2021년(35.5Twh)엔 영국 전체 발전의 11.5%를 담당한다. 육상풍력을 합치면 풍력이 전체 발전에서 21%를 차지한다. 이 변화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당위성 때문만이 아니라 기업들의 수익 추구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부가 모든 지원을 직접 하기 보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장을 조성하는데 보조금을 집약적으로 썼고,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높아지면서 화석연료대비 재생에너지의 수요가 늘어나는 방식으로 보급 확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영국 노섬벌랜드 소재 뱅크스 그룹 샤턴 오픈 캐스트 광산의 모습/로이터=뉴스1지난 2016년 영국 노섬벌랜드 소재 뱅크스 그룹 샤턴 오픈 캐스트 광산의 모습/로이터=뉴스1
석탄을 비싸게'탄소세'로 명확한 신호

동시에 영국 정부는 석탄 사용을 끝내겠다는 분명한 정책적 신호를 일종의 탄소세를 도입해 발신한다. 2013년 발전 부문에 도입한 가격하한제(Carbon Price Floor; CPF)란 제도다. 석탄발전 비용을 의도적으로 높여 시장에서 석탄발전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게끔 유도한 것.

이전에도 영국의 석탄발전에는 탄소가격이 부과되고 있었다. 2005년 시작된 유럽연합(EU) 차원의 배출권거래제(ETS)를 통해서다. 그러나 ETS는 탄소 '가격'이 아니라 기업들의 탄소배출 '양'을 규제하는 제도다. 기업이 규제 당국으로부터 사전에 할당 받은 수준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배출권을 사는 제도인데, 이 배출권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커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탄소 가격이 높다면 저탄소 사업에 투자할 유인이 생기지만, 탄소가격이 어느 수준 이하라면 굳이 돈을 써 투자할 유인이 없다. 무엇보다 탄소가격이 크게 변동하면 장기 계획을 짜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석탄발전 탄소가격을 '일정하게 높게' 부과해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저탄소 발전 투자 유인을 높였다. ETS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가격이 정부가 정한 가격 하한보다 낮을 경우 배출권 가격과 정부의 가격 하한 값의 차이만큼을 탄소가격지지(Carbon Price Support)세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EU ETS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산업계 위축과 과다 할당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영국이 부과한 이 탄소세는 온실가스 저감에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한전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영국 발전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20% 감축된 것이 이 탄소세의 효과로 추정된다. 독일이 2010년 이후 5% 절감한 것 보다 큰 효과다.

국가마다 에너지 전환 여건은 다르다. 다만 영국의 사례는 정부가 민간의 경쟁을 유도해야 할 영역과 직접 개입해야 할 영역을 구분해 정책 목표를 달성했고, 기업이 직면한 불확실성을 줄여 투자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눈 여겨 볼 예가 될 수 있다.

출처 = 사단법인 넥스트, 엠버, 주한영국대사관 공동 주최 웨비나 중 엠버 측의 'The UK’s coal to clean journey' 발표 자료 출처 = 사단법인 넥스트, 엠버, 주한영국대사관 공동 주최 웨비나 중 엠버 측의 'The UK’s coal to clean journey' 발표 자료
우크라이나 전쟁 후…'재생에너지 확대 = 에너지 안보 강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영국에서 탄소중립은 이제 에너지 안보 제고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극심한 에너지 비용 급등을 겪었는데, 이 원인 중 하나는 높은 가스 의존도에 있었다. 영국 발전에서 가스의 비중은 약 40%로 약 20%인 유럽 평균 보다 현저히 크다. 게다가 영국 가구의 85%가 가스 보일러를 이용해 난방의 가스 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본격화하기 전, 석탄 사용을 줄이면서 가스 이용이 늘어난 영향이다.

가스를 어떤 에너지원으로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영국에서는 한창이다. 분명한 건 석탄으로의 회귀는 없다는 점이다. 영국의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의 필 맥도날드 상무이사는 24일 사단법인 넥스트·엠버·주한영국대사관이 공동개최한 웨비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이와 관련한 가스 공급 부족이 석탄의 회귀로 나타나지 않았다"며 "2022년에도 석탄발전은 여전히 전체 발전의 2% 미만"이라 했다.

석탄으로의 회귀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에너지 시장에서 재생에너지가 석탄 보다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에너지원이 됐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2014년 이후 새로 짓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탄소포집저장(CCS) 장치를 다는 게 필수적이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 CCS 장치를 다는 게 재생에너지 발전을 하는 것 보다 비싸다. 맥도날드 상무이사는 "(영국 정부는) 석탄 발전을 CCS 장치 사용이 있을 때만 허용했는데 이 기술은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풍부한 청정 전력은 (석탄발전소의) 재가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입증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석탄 단계적 폐지가) 탄소배출 저감을 주 목적으로 했으나 이제 재생에너지가 너무 저렴해졌다"며 " 가스 수입에 따른 지정학적 문제가 있어 에너지 전환의 목적이 안보의 확보가 됐고, 여기에 특히 풍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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