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벌고 벌금 5억?…"신도 모른다" 작전세력이 챙긴 돈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심재현 기자, 박다영 기자, 성시호 기자 2023.03.29 07:00
글자크기

[MT리포트-신종범죄의 습격 2부: 감옥 가도 남으니까…新작전의 세계](上)

편집자주 미공개정보를 이용하거나 시세를 조종해 부당이익을 거두는 불공정거래가 주식·파생시장을 넘어 가상화폐시장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처벌을 받아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새로운 형태의 불공정·부당이익 범죄로 이어진다.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고 자본시장 건전성을 확립할 해법이 시급하다.

4년새 18배 늘어나 3조원 '먹튀'…코인판 휘젓는 '작전'
수백억 벌고 벌금 5억?…"신도 모른다" 작전세력이 챙긴 돈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11개월만에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동유럽의 소국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테라·루나 사건은 전 세계에서 투자 피해자가 28만여명에 이른다. 이른바 '작전'으로 부르는, 부당이익을 겨냥한 불공정거래범죄가 주식·파생시장을 넘어 가상화폐시장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시장에선 '수익 보장', '안전 자산' 등 거짓 허울을 뒤집어쓴 낡은 사기 수법이 새로운 투자 플랫폼과 결합해 신종금융범죄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애꿎은 투자 피해자가 늘고 있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당국의 대처는 여전히 느리다. 피해 보상은커녕 범죄이익 환수도 요원한 상황이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2021년 2년 동안 시세조종, 미공개정보이용, 사기적 부정거래 등 3대 불공정거래 사건으로 국내에서 발생한 부당이익 추정액이 1조120억원에 달한다. 여기엔 테라·루나 사태로 위법혐의를 받는 이들이 챙긴 돈은 포함되지 않았다. 가상화폐가 자본시장법상 아직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되지 않아 집계에서 빠진 탓이다.



가상자산시장 관련 피해사건 규모를 토대로 추정하면 이 기간 발생한 실제 불공정거래 부당이익 규모는 곱절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상자산 피해사건 규모는 2018년 1700억원 수준에서 2021년 3조1300억원으로 4년간 18배 넘게 늘었다. 수사당국에서는 이 가운데 불공정거래에 따른 피해액이 적잖다고 본다. 테라·루나 사건 외에도 국내에서 가상자산 관련 불공정거래범죄가 이미 상당히 퍼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황이라는 분석이다.

불공정거래 행위는 국내 현행법에서 형사처벌 대상이다. 처벌 대상이 되는 투자금액의 하한선도 없어 투자액수와 관계없이 처벌을 받는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런 처벌 규정에도 불공정거래가 사라지기는커녕 가상자산시장 등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는 배경으로 우선 규정에 비해 실제 처벌이 약하다는 점을 꼽는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주가조작 등 증권 불공정 거래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64명 중 40%에 해당하는 26명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범죄조직을 통한 사기범(15.3%) 집행유예 비율보다 2배 이상 높다. 검찰 기소 이후 재판을 거쳐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400일 이상으로 길다.


더 큰 문제는 사건별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이 제대로 환수되지 않고 범죄 피의자들 수중에 고스란히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을 지낸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뺏겨봐야 일부에 그치고 실형을 살더라도 1~3년 수준이라는 점이 불공정거래범죄를 키운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감옥 가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새로운 수법을 동원한 제2, 제3의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2021년 적발한 불공정거래사범 99명 가운데 21명(21.2%)이 과거에 이미 한 번 이상 적발된 적이 있는 전력자라는 집계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게 볼 수 없다.

부당이익이 제대로 환수·추징되지 않는 것은 현행 자본시장법에서 주식 시세조종 등 불공정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몰수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정작 부당이익을 어떻게 산정할지 기준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6월 부당이득의 산정기준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3년 가까이 지난 최근에야 겨우 국회 소관상임위원회의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가상자산시장을 악용해 늘어나는 신종 불공정거래 범죄의 경우 가상자산 자체가 금융투자상품에 해당되는지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해 관리·감독이나 부당이익 추적·환수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기 변호사는 "주식시장에서 불공정거래가 있으면 현금화된 돈이 계좌에 있어 몰수하기 쉽지만 디지털지갑에 들어간 가상자산은 서버가 해외에 있을 경우 등에 따라 추적·환수가 어렵다"며 "환수가 어렵더라도 일단 근거는 있어야 하는데 가상자산의 증권·상품 해당 여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했다.

시세조종에 3배 넘게 뛰어도…얼마나 챙겼는지 모른다?
수백억 벌고 벌금 5억?…"신도 모른다" 작전세력이 챙긴 돈
금융 범죄자들이 불공정행위로 거둔 부당이득을 환수·추징할 때 법원이 부당이득 규모를 보수적으로 산출할 수밖에 없는 데는 불법행위와 이익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사정이 있다.

주가 등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보니 다른 요인을 배제하고 시세조종으로 얻은 이익만 산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대법원까지 이어진 다수의 법정 공방에서도 결론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주식 대량 매수를 통해 시세조종을 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삼라그룹은 2007년 주식회사 남선알미늄을 계열회사로 편입시켰다. 우오현 삼라그룹 회장은 당시 삼라 사장 A씨와 진덕산업 전무B씨에 차명계좌로 남선알미늄 주식을 매입하라고 지시했다. 2007년4월30일 3000원대였던 주가는 두 사람이 고가매수주문, 시장가매수주문 등으로 시세조종을 벌이자 4개월 만인 같은 해 8월31일 1만원을 넘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매도와 재매수를 반복해 주식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처럼 가장했다. 이들이 거둔 부당이득의 일부는 우 회장과 그 가족에게 송금됐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우 회장까지 포함해 3명의 시세조종 행위가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범죄라고 봤다. 문제는 이들이 시세조종 행위를 벌인 기간이 국내 주식시장 대호황기와 겹쳤다는 것이다. 시세조종 행위가 벌어진 기간 남선알미늄과 동종업종인 철강금속업종 주가지수는 3배가량 올랐다.

대법원은 "주가상승분에 시세조종 행위 외에 다른 요인이 포함되면 그 부분은 공제해 위반행위로 인한 이익을 구분산정해야 한다"며 "시세조종행위와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이익이 얼마인지를 가려야 한다"고 판시했다.

해외 투자 유치를 가장해 시세조종한 사례도 있다. 에스씨디의 박성훈 대표는 C씨와 투자원리금을 보장하는 조건의 투자수익보장약정을 체결했다. C씨는 차명 외국 법인 명의로 에스씨디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 회사가 해외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으로 가장한 것이다. 두 사람이 주식을 매도하기 직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한 행사장에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기술을 두고 "이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언급하면서 수소에너지 관련주의 주가가 급등했다. 에스씨디의 거래량은 대폭 늘고 주가도 상승했다.

대법원은 투자수익보장약정이나 유상증자 차명 참여 등은 부정행위로 봤지만 이로 인한 이득을 산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주가상승을 분리해 위반행위와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이익을 산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허위·과장정보를 유통해 시세조종을 하던 도중 종목 추천 업체가 끼어들어 부당이득 산정이 어려워진 경우도 있다. 하드디스크 부품업체 에이치앤티(H&T)의 정국교 대표는 2007년 허위·과장정보로 주가를 띄웠다. 정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해외자원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시를 내고 언론 인터뷰를 했다.

정 대표의 행위는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인정됐지만 같은 기간 한 투자 연구소에서 이 회사의 주식 매수를 추천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이 연구소는 수백명의 회원에 투자 강연을 했고 여러 차례 이 회사의 호재에 대해 언급했다. 연구소 회원의 해당 주식 매수비중은 특정거래일에 최고 23%를 차지했다.

대법원은 재상고심에서 "주가 상승 전부가 정 전 대표의 허위사실유포와 허위·부실 표시 문서(공시자료) 이용행위와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작전세력 번 돈 정확히 얼마? 여의도 저승사자 "그건 신도 몰라"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전 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 / 사진제공=법무법인 화우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전 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 / 사진제공=법무법인 화우
A가 운전 중 길을 건너던 B를 치는 교통사고를 냈다. 사고 이후 A가 B를 자신의 차에 태워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다른 차에 치이는 사고로 B가 사망했다. 이때 첫 사고를 낸 A에게 B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B가 사망에 이른 결정적인 원인은 두번째 교통사고이므로 A는 B의 사망과 인과관계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A가 애초에 사고를 내지 않았으면 B가 사망할 일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만약 첫 사고로 B가 경상이 아닌 중상을 입었다면 또 어떨까.

2019년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대검찰청 부당이득 산정기준 법제화 TF(태스크포스) 단장을 지낸 김영기 화우 변호사는 지난 23일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예시를 통해 현행 자본시장법 체제에서 불공정거래범죄로 인한 부당이득을 산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했다. 불공정거래범죄를 끊어내고 시장의 원리를 바로 세우자면 부당이익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그만큼 어렵지만 시급한 문제라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뇌물 사건에서 오간 돈이 1억원이라면 그건 입증의 영역이지만 자본시장에서 발생한 부당이득은 인과관계를 따지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위법행위와 관련 있는 주가 상승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부당이득 산정은 '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식만 해도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너무 많다"며 "시세조종으로 주가를 띄웠더라도 시장 큰손이 추종매매하면서 주가가 더 올랐다면 어디까지 책임을 묻고 부당이득으로 봐야 하는지 등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사 경험에 비춰볼 때 투자자들을 상대로 불공정거래를 일삼는 이른바 '작전세력'을 잡으려면 불공정거래로 얻은 이익을 좀더 적극적으로 추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부당이득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는 결국 사회적으로 논의, 탄력적으로 합의할 문제이지 불가능한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최근 가상자산시장 등으로 불공정거래범죄가 확산하는 데 대해서도 금융·사법당국이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어떤 범죄는 정형화된 유형이라 법제화됐는데 더 큰 이득을 얻은 범죄는 정형화되지 않아 법제화하지 못하면 역차별,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앞으로 법제화 논의과정에서 불공정거래 특성에 맞게 인과관계를 탄력적으로 해석,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엄밀한 잣대를 들이밀 경우 부당이득 산정이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며 "어려운 길이지만 검찰과 법원이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중심으로 금융사법당국이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표현처럼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시장을 과도하게 규제한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적어도 불공정거래에선 업계 위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못 된다"며 "다만 시장을 살리는 규제, 수사여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표현이 그런 표현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