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최민식은 "힘들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왜 안 힘들었겠어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주 촬영지가 기온 높은 나라인 필리핀이었던 까닭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을 한바가지씩 흘렸고, 액션신도 적지 않아 몸쓰는 일도 많았다. 입에 붙지 않는 영어 대사까지 외워야 했던 그는 "아주 고생했다"며 "다신 영어 있는 대본은 안한"다며 손사레를 쳤다.

'카지노'는 돈도 빽도 없이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전설이라 불리는 남자 차무식(최민식)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인생의 벼랑 끝 목숨 건 최후의 베팅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를 배경으로 차무식이라는 인물의 일대기식 스토리를 전개한다. 무식이 맨손으로 부를 축적하는 과정 속 끊임없이 욕망하는 인물의 치밀한 분화를 보여주는 작품.
"차무식이라는 인물의 평범함에 초점을 두고 싶었어요. 한 엄마의 아들이자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아버지. 카지노라는 정글에서 벗어나 한국에 있을 때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신 같은 장면은 그래서 꼭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러한 일상신을 통해 차무식이라는 캐릭터의 평범함을 보여주고 싶었죠. 무식은 히어로도, 조커도 아니에요. 알다가도 모를 인생의 불확실성을 차무식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결국엔 욕망을 좇아 헐떡대다가 불나방들이 불빛에 모여들다 타 죽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한 거죠."
최민식은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1화 정팔(이동화)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화무십일홍'이라는 단어를 꼽았다. 화무십일홍은 꽃이 열흘 동안 붉게 피어있는 경우는 없다는 뜻으로 막강한 권력도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걸 뜻한다. 모든 생명의 순리처럼 무식 역시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순간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무식의 오른팔과도 같던 동생 정팔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을 통해 극적인 여운을 주고자 했다.

'카지노'가 흥미로웠던 건 시대별로 20대부터 여러 나이대를 연기한 최민식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부 시청자들은 무식이 나이들수록 볼록해지는 배를 보며 CG가 아닐까하는 궁금증을 제기하기도. 이에 대해 최민식은 "요즘 많은 작품들이 과학기술의 힘을 빌린다고 해서 제 뱃살도 깎아주는지 알았더니 그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웃어보였다. 아름답게 가꿔진 모습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원했던 최민식은 그렇다고 일부러 살을 찌운 건 아니라며 "제 뱃살이 용기는 아니었"다는 너스레로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직까지는 연기할 때 피가 끓어요. 또 끓는 피만으로는 안 되고 스스로에 대한 차가운 냉철함이 섞어야 진단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나이가 들었다고 이젠 좀 지혜가 생긴 것 같아서 안도가 돼요. 처음으로 연극 대본을 리딩했을 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극단 뿌리라는 곳에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기 이외에 한번도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알바 외에는 오로지 연기로 먹고 살았어요. 연기가 그냥 숨쉬는 것처럼 그리고 밥먹는 것처럼 제 생활이 됐어요. 배우란 죽어야 끝나는 직업이니까. 끝까지 이 일에 대한 제 의미를 뭔지 모르고 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