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더 커" 철강업계, 정치권 美 쿼터 개선 요구에 쓴소리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2023.03.2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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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더 커" 철강업계, 정치권 美 쿼터 개선 요구에 쓴소리


정치권이 추진하는 대미 철강 수출 쿼터제 개편에 대해 업계가 우려한다. 중견 철강사 배분량을 늘리자는 취지지만, 상위 소수 기업이 업계를 대표해 미국을 상대로 진행해 온 반덤핑 관세 대응이 약화할 수 있어서다. 제한된 물량만 수출할 수 있는 미국의 철강 수입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외교적 협상이 선행해야 한단 지적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2018년 철강 232조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주요 철강 수출국의 쿼터량을 정했다. 한국은 2015~2017년 평균 대미 철강 수출량 383만톤의 80%인 263만톤의 쿼터를 받았다. EU·일본 등은 추가 협상을 통해 쿼터량 초과 물량에 대해서만 25% 관세를 무는 조건으로 수출량을 늘려왔지만, 한국은 2018년 이후 배정된 물량만큼만 매년 수출하고 있다.



배정된 물량의 상당수는 수출 상위 기업이 나눠 갖는다. 2015~2017년 상위 수출기업엔 95%의 '기본쿼터'가 주어진다. 당시 수출량이 적거나, 신규 기업의 경우 5%의 '개방쿼터'에 의존한다. 이에 정치권이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기본쿼터를 80~90% 수준으로 낮추고 5~15% 수준의 공용쿼터를 신설해, 배정된 수출 물량을 조기 소진한 기업에 선착순으로 추가 수출 물량을 배정하자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런 내용을 골자로 정부에 개편을 종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이런 요구가 성급한 주장이고 철강 대미 수출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계한다. 정치권 요구대로 정부가 움직이면 미국이 중요시하는 시장자유주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철강 쿼터 개편도 업체 간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상무부가 제한한 수출물량을 배분하면서 정부·정치권이 개입해선 안 된단 의미다.



대미 협상력 약화도 또 다른 우려 요인이다. 정치권의 개편 요구는 철강업계 내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강관사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알려진다. 대미 쿼터를 확보한 강관업체는 30여 곳이지만, 이 중 기본쿼터 보유업체는 △세아 △넥스틸 △현대제철 △휴스틸 등 10여 곳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상위 4개 사 물량 비중이 크다. 이에 들지 못한 기업에서 강한 불만을 쏟았던 게 사실이다.

정치권은 생산량 차이가 크지 않은 회사 간 쿼터 격차가 크기 때문에 상위 기업에 특혜나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생산능력과 수출 비중을 단순 비교하면 통계적 착시를 일으킨다고 반박한다. 미국 수출용 강관은 배관용이 아닌 송유관·유정용강관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 상위 4개 사의 수출량이 월등해 기본쿼터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강관을 포함한 전체 철강 쿼터를 조정할 경우 고품질의 철강 제품을 생하는 기업의 수출 기회가 줄어들어 대미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중견·중소 강관사에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할당량 조절이라는 방법에 반대하는 것"이라며"제한된 물량을 강제로 나누랄 게 아니라 전체 수출 물량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EU·일본과 같이 미국이 정한 쿼터를 넘어선 물량에 대해 조건부 수출이 가능하도록 외교적 협상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형회사가 미국 현지 협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수의 대형회사가 이들을 대신해 현지 관세 당국과 반덤핑 협상을 이어왔다"며 "기본쿼터 축소는 이들의 입지를 축소해 소형 철강사의 부담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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