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기술패권경쟁의 첨병 '테크인텔리전스'

머니투데이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 2023.03.30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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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인공지능(AI), 양자 등 전략기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기술은 이제 단순히 기업의 경쟁력 수단을 넘어 국가경제· 산업 전반, 나아가 국가간 동맹과 외교까지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자리잡았다. 이에 발맞춰 선진국들은 전략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국가가 앞장서 확보해야 할 10개 내외의 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연구·개발 투자확대를 위한 법률제정, 관련 조직과 인프라 정비 등 전례 없는 총력전을 펼친다.



우리나라도 기술패권경쟁 시대에 기술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으로 지난해 10월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수립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모빌리티, 차세대 원자력, 첨단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를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하고 올해부터 전략기술 확보를 위한 과제들을 본격 추진한다. 올해 2월에는 국가전략기술육성 특별법이 국회에서 확정돼 관련정책의 추진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테크인텔리전스'(Tech Intelligence)란 기업이 내·외부 환경변화를 반영해 주목할 기술들을 도출하고 목적에 따라 선별·획득할 때 필요한 필수역량이다. '기술정보'가 국내외 기관들이 발표하는 기술 관련 팩트를 단순 수집한 것이라면 테크인텔리전스는 수집된 기술정보를 분석·평가해 활용도를 높이는 역량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LG 경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정보량 증대, 기술발전 가속화, 기술의 융복합화 등에 따라 테크인텔리전스 역량이 점점 중요해진다.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전략기술 확보경쟁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나라도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테크인텔리전스 역량강화에 사활을 걸 때다.



먼저 주요국의 전략기술 선정·육성전략에 대한 모니터링과 분석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은 '반도체와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서 10대 핵심기술을, 일본은 '경제안전보장법'에서 20대 중요기술을 선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중요기술의 연구·개발동향과 기술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관리체계를 명시하고 이를 총괄할 싱크탱크 출범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도 각국의 전략기술 동향, 경쟁력, 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우리만의 대응전략을 수정·보완하는 데 지속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전략기술과 관련된 우리의 기술주권 역량을 선제적으로 분석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외교, 안보 및 통상 이슈에 대응해야 한다. 기술주권 역량에는 산업공급망, 기술경쟁력, 전문인력 현황 및 확보계획 등이 포함된다. 2019년 일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사용되는 3대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했고 이에 코스닥지수가 6% 이상 급락하는 등 산업계에 큰 혼란이 일었다. 정부가 다각도로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했으나 이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 핵심기술 자립역량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 기술주권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국 중심의 기술보호주의와 기술주권 확보라는 새로운 흐름 속에 글로벌 경쟁국의 전략기술을 분석하고 활용하는 테크인텔리전스 역량은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의 강점과 상대의 약점을 면밀히 알아야 치열한 기술확보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 외교·통상에서도 유리한 무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갖추는 테크인텔리전스 역량강화는 국가전략기술 육성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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