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적자의 진짜 이유[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03.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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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파운드리사업장 EUV(극자외선) V1 생산라인//사진제공=삼성전자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파운드리사업장 EUV(극자외선) V1 생산라인//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 반도체 적자의 진짜 이유는 뭘까.

시장에선 메모리 반도체 수요감소로 인한 재고 증가를 이유로 든다. 재고증가로 D램 가격이 떨어져 1분기에만 삼성전자 (77,700원 ▼1,500 -1.89%) 반도체 부문에서 4조원 가량 영업적자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안좋아 적자가 난다'는 말은 적어도 1등 기업 삼성에게는 통하지 않는 변명이다. 2, 3위인 SK하이닉스 (182,100원 ▲2,200 +1.22%)나 미국 마이크론의 적자와 삼성전자의 적자는 그 의미가 다르다.

2016년쯤으로 기억한다.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이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 회사의 최고 책임자와의 저녁을 했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 사업 위기의 원인'을 물었더니 "환율도 좋지 않고,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아서..."라는 답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위기의 원인을 내부부터 찾지 않고, 외부로 돌리는 모습에 "더 어려워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 CFO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그의 답은 "글로벌 경기가 나빠지는 것은 갑자기 나타난 변수가 아니라 기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맞닥뜨리는 상수다. 이 때 제대로 하는 게 실력이고 진짜 경쟁력이다"라고 답했었다. 너무 다른 분석이었다. LG전자 (97,200원 ▼300 -0.31%)는 그로부터 5년 후 휴대폰 사업을 접었다. 최고 경영진의 마인드가 기업 성패를 좌우하는 첫번째 요인라는 점을 깨달았던 시간이다.



첨단기술 전환기인 2008년 위기와 닮아...삼성과 후발주자 기술격차 사라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리는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해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리는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해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
2019년 1월 청와대에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를 마친 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당시 직책)에게 "요즘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다는데 어떤지"를 묻자, 이 부회장은 "이제부터 진짜 실력이 나오는 거죠"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 때 최태원 SK 회장이 웃으며 "삼성이 이런 얘기 할 때 제일 무섭다"고 했고, 이 부회장은 "영업비밀을 말해버렸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런 당시 농담이 무색하게 적자의 늪에 같이 빠진 이유는 뭘까. 최 회장이 두려워하던 삼성전자의 '초격차' 기술력은 왜 사라졌을까.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 시기는 반도체 사업이 적자를 냈던 2008년 전후와 닮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3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의 유사성 때문이 아니다. 이보다 닮은 점은 반도체의 핵심 기술교체 시기라는 점과 삼성 반도체의 강력한 리더십 문제다. 경제위기는 기업에겐 늘 다가올 수 있고 대응해야 하는 상수이다.

20년 전인 2003년경 반도체 업계는 100나노급 회로선폭에서 90나노 이하로의 기술진화를 추구해 노광기의 광원을 KrF(불화크립톤)에서 ArF(불화아르곤)로 교체를 추진했다. 그리고 5년간 기술진화는 빠른 속도로 이뤄져 2008년 상반기에는 50나노 양산 기술까지 진화했다.

이 때부터 50나노 이하로 진화하기 위해 또 한번의 기술 변혁이 필요했고, 삼성전자는 ArF에 '물의 굴절'을 이용한 ArFi(액침 불화아르곤)로 전환과 더블패터닝 등 다양한 신기술을 시도했다. 지금(2023년) 반도체 업계가 20나노급에서 10나노급으로 전환하면서 ArFi 광원에서 EUV(극자외선)로 전환하는 과정과 비슷한 도전들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비싼 ArF와 ArFi 투자를 통해 앞선 차세대 공정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항상 기술전환 시기에는 선발주자의 어려움이 있다. 대규모 비용투자 외에도 시행착오 등 후발주자가 겪지 않는 어려움을 먼저 겪는 과정에서 기술추격의 위험성에 늘 노출돼 왔다.

2003년 당시 하이닉스는 투자할 돈이 없어 기존 KrF 장비를 개선해 ArF 성능에 준하는 90나노와 80나노 공정에 성공했고, 2007년경에는 공정혁신을 통한 생산성을 높인 '사이버팹'으로 신규투자 없이도 생산성과 기술면에서도 삼성전자를 따라 잡았다. 돈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한 기술이 통한 것이다.

2007년 7월 삼성의 '선진기술 비교전시회'에서 이건희 회장은 하이닉스에 추월당한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을 강하게 질타했고, 황 사장은 그 해말 삼성의 반도체 수장 자리에서 밀려났다.

지금은 그 상대가 하이닉스 외에도 마이크론까지 가세했다. 1a 미세회로 공정을 위해 1대당 3000억원 가량이 드는 EUV 장비 수십대씩 들여 놓은 삼성은 2021년에 기존 ArFi 공정을 개선해 1a(13~14㎚) 양산에 나선 마이크론에 선수를 뺏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SK하이닉스도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인텔로부터 10나노급 4세대(1a) DDR5 서버용 D램 인증을 받으면서 삼성전자와 기술격차가 사라졌다는 평이 나온다.

과거 삼성전자가 쓰던 골든 프라이스(Golden Price)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경쟁사보다 6개월에서 1년 반 정도 앞섰을 때는 경쟁사들이 적자로 인해 감산을 하더라도 삼성전자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이익을 낼 수 있는 골든 프라이스를 항상 유지하는 전략을 폈다. 하지만 원가경쟁력이 비슷해진 지금 상황에서 서로 물량을 쏟아내니 서로 적자를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훌륭한 투수가 훌륭한 감독은 아니다...팀워크가 최선의 무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 두번째)이 2020년 6월 19일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의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경영진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 두번째)이 2020년 6월 19일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의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경영진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항상 전쟁이 어려워지면 희생양을 찾게 마련이다.

삼성 내부에서 그 희생양의 재료로 여러 얘기가 들린다. 전임 CEO가 매일 혹은 매주 받는 '주간 보고'에 핵심 연구원들이 모두 매달려 R&D를 할 수 없어서 그렇다느니,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라인에 100% 올인하면서 R&D를 위한 라인을 확보하지 못해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다느니 하는 얘기가 그것이다.

여기에 사업지원팀의 제대로 된 사업지원이 없어서 투자 적기를 놓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본인들이 그랬든 그렇지 않았든 삼성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런 믿음이 강하다는 게 문제다. 소통의 부재가 이런 불신을 가져왔고 그 책임은 리더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 리더의 역할은 승패의 90% 이상을 좌우한다. 특히 기술집약적인 반도체 산업에서는 리더를 중심으로 한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 최근 몇년간 삼성 반도체 내에서는 리더는 강한데 팀워크가 무너졌다는 얘기가 돌았다. 기업 내 팀워크는 야구에 비교되곤 한다.

야구는 투수 게임이다. 걸출한 국보급 투수가 있으면 거의 승률이 70% 이상은 된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투수가 있어도 내외야수의 도움이나 타자들의 도움이 없다면 잘해야 비긴다. 세계적인 투수 중에 훌륭한 야구감독이 드문 이유는 투수의 특성상 개인 플레이에는 강한데 팀워크가 약한 단점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팀워크가 없으면 이길 수 없다.

삼성전자엔 김광호·이윤우·진대제·황창규·권오현·김기남 등 걸출한 에이스(CEO)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를 보완한 것이 스텝이고 동료들이었다. 삼성 반도체에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반도체코리아를 이끈 수많은 현장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다.

이들 국가대표 팀원들과 팀워크가 좋았던 CEO와 그렇지 않은 CEO 사이에는 그 결과물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보통 그 결과는 물러나고 1~2년 후에 드러나게 돼 있고 1분기 4조원 가량의 적자는 그 결과물이다.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으로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그 다음 산도 높은 법이다.

지금의 위기는 도약을 위한 준비단계다. 이제 진짜 실력을 보일 시기가 됐다. CEO의 개인적 능력이 아니라 팀삼성의 힘을 보일 때다. 그 출발점은 팀워크를 위한 경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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