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 사진제공=빅히트뮤직
지민의 고민에 다른 멤버들은 가끔은 길을 잃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건 누구나 거쳐야 할 성장통이며 어쩌면 음악을 통한 자기표현이 미래를 향한 등불이 되어줄 수도 있을 거라 조언해 주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지민의 솔로 데뷔작은 단순한 음악 작품을 넘어 지민이라는 개인이 감행한 자가 치료의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제목은 'Face'. '자신의 얼굴(face)을 마주하다(face)'라는 단순 번역만 거쳐봐도 알 수 있듯 스스로를 되돌아보려는 지민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전제는 없어 보인다.
지민, 사진제공=빅히트뮤직
앞서 말한 소품격 인터루드를 지나 앨범은 어느새 BTS '제8의 멤버'라 일컫는 피독이 함께 한 세 번째 트랙 'Like Crazy'에 닿는다. 위켄드와 조지 마이클, 다프트 펑크가 뒤섞인 이 매력적인 신스팝 곡은 미국 감독 드레이크 도레무스의 2011년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에 대한 지민 식 오마주다. 사실 지민은 이 영화를 프랑스 디제이 브레이크봇(Breakbot)의 'In Return'이란 곡과 매시업 된 영상으로 처음 만났는데, 이후 제대로 다시 감상한 뒤 영감을 얻어 이렇게 곡으로까지 빚어냈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폴 사이먼의 명반 'Graceland'를 똑같이 좋아하는 커플이 LA와 런던 사이에서 사랑의 열병을 겪는 이야기로, '미치도록(Like Crazy)'이라는 제목은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주인공 제이콥이 연인인 앤나에게 선물한 나무의자의 이름이었다. 지민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정확히 묘사한 연인의 대사를 곡 머리와 꼬리에 배치하며 영화와 음악을 만나게 했는데, 그것은 지난 시간 지민 스스로가 겪은 행복과 외로움이라는 다른 감정이 꿈의 몽환으로 증발하는 무드로의 전환처럼 보였다. 이 감정적 뒤척임은 곡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더 생생히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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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은 이번 앨범을 만들며 자신이 다른 BTS 멤버들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제이홉의 'Blue Side'와 비슷한 'Interlude : Dive'의 코드 진행과 슈가(Agust D)의 2020년 믹스테이프에 실린 'Interlude : Set Me Free'가 지녔던 성숙, 성장의 독백을 이어나간다는 의미로 'Set Me Free Pt.2'라는 힙합 곡을 만든 건 그 깨달음의 증거들이라 할 수 있다(미국 현지에선 'Set Me Free Pt.2'의 드라마틱 심포니 스타일이 칸예 웨스트의 명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와 비교되기도 했다). 어두운 날것의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도전으로 자체 규정한 이 작업은 그래서 짙은 음악적 딜레마 앞에 기어이 지민을 서도록 만들었으니, 'Alone'은 예술가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초조해하는 그런 지민의 심경을 가장 침착하게 들려주고 있다. 팬들에겐 '피땀눈물'과 'Lie', 'Filter'에서 진화해 더 "달콤 섬세 예리"해진 지민의 노래 실력을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처럼 화려한 삶 이면의 쓸쓸함과 방황이라는, 유명인이라면 으레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풍요 속 빈곤'에 대한 지민의 입장을 들어봤다. 여기서 질문. 지민은 정말 뮤지션으로서 홀로 설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혹시 아직 때가 아니었음에도 상황과 스케줄에 떠밀리듯 첫걸음을 내디딘 건 아니었을까. '자유'를 기치로 개인의 예술 작품을 염두에 두고 마음먹은 자기반성이었다면 좀 더 시간을 두고 했어도 좋지 않았을지, 나는 사실상 네 트랙짜리 미니 앨범으로 솔로 데뷔를 급히 장식한 듯한 지민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에둘러 말하지 못하는 성격인 탓에 노랫말은 온전히 그의 고민과 감정의 배설이었단 사실까지 감안하면 그런 생각은 더욱 확신으로 기우는 것이다. 'Alone'을 지배하는 허무의 뉘앙스, 'Set Me Free Pt.2'의 "끝에 멈춰 선 나 / Not Yet Not Yet"이라는 가사는 때문에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평소 "연습이 답"이라는 지론을 가진 지민. 'Face'는 어쩌면 진정한 홀로서기 이전 지민의 실전 같은 연습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