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망은 피해자의 믿음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주더라도 어떻게든 돌려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는 법적, 사회적 제도가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특별한 법률지식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식이 되었는데, 확정일자를 강조하면 마치 확정일자만으로도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도 사기꾼들이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악용하는 대표적 제도인데, 피해자 보호를 보증범위를 넓히면 사기꾼의 활용폭도 커질 수 있다.
그런 신뢰에 기반한 전세제도는 필요한가? 그렇다면 세입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더 보완할 필요가 있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면 최소한 '전세'가 범죄 수단이 되어 피해자가 생기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확정일자는 이미 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전세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할 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혹여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사기꾼들에게 더 효과적인 사기 수단을 제공하여 잠재적 피해자를 더 양산할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전세대출도 일률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겠지만, 금융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기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태는 방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세제도가 갖는 현실적인 장점도 있겠지만, 그 자체로는 법리적, 경제적으로 특이하고 위험한 제도이다. 세입자는 특별한 담보 없이 거액의 목돈을 집주인에게 건네 주고, 반대급부로 고작 2년 정도 부동산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그 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뿐이기 때문이다. 뒤이어 들어오는 세입자의 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반환해 주는 구조도, 신규 가입자가 없으면 결국 문제가 터지는, 일종의 폰지 사기와 비슷한 구조로 볼 수도 있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그저 기우에 불과한 경우가 많지만, 현재 우리는 그것이 괜한 걱정이 아님을 현실로 직면하고 있지 않은가? 무주택자들은 전세로 주거를 마련하는 방안의 위험성을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고, 정부도 전세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안전하게 연착륙시킬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