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데스노트,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체방크 [특파원 칼럼]

머니투데이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3.03.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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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런(Touch Run)의 시대다. 은행 앞에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내가 맡긴 예금은 모바일에서 손가락 까딱 하나로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뱅크런이 아니라 터치런이다.



씨티그룹 제인 프레이저(CEO)도 기겁할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모바일 앱과 버튼 클릭 몇 번으로 수백만불을 움직이는 고객들 능력이 금융계의 게임체인저"라고 했다.

미국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적잖이 당황한 거 같다. 알다시피 자산 미스매치가 있었고 18억 달러 손실이 찍히자 정보를 알아챈 예금자들이 돈을 옮겨버렸다. 3월 8일에 손실 뉴스가 나왔는데 이튿날인 9일 하루에 420억불(54조원)이 빠졌다.



그런데 석연찮은 문제가 있다. 멍청한 SVB 경영진도 문제이지만 그를 가이드한 이들이다. 자산 미스매치를 중개한 대형투자은행들이 있는데 이들이 위기 사태에서도 SVB 부자고객들에겐 이 은행 가망 없으니 돈 옮기라고 부채질 했다는 거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CDO(부채담보부증권)를 팔고, CDS(관련 스왑)로 돈을 챙긴 구조와 유사하다. 숙주를 만들고 몇몇 고객과 뒷거래로 반사이익을 챙긴다. 숙주가 죽고 나면 어느 새 무리가 달려와서 남은 살점까지 뜯는다. 금융 하이에나 떼다.

SVB 파산 과정에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미국 정부가 위험을 절연하기는 했는데 정부 자금이 아니라 민간을 동원하고 주주들에게 책임을 지웠다는 거다. 블랙먼데이를 막기 위해 지난 주말에 등판한 조 바이든 대통령 메시지에 설계 구조도가 들어있다.


1. 미국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 이건 예금자 보호를 말한다. SVB 자산에 미국 장기국채가 남아있으니 예금보험공사(FDIC)를 동원해서 국채담보로 잠시 은행 역할을 정부가 맡겠다는 거다. 국채도 지키고, 은행 시스템도 살리겠다는 의도다.

2. SVB 경영진과 주주는 책임져야 한다. 실패한 경영진은 내쫓거나 민형사 책임을 지우고, 실패한 은행을 몰라보고 투자한 주주들은 주식을 전액감자해 원칙대로 손해를 묻겠다는 거다. 이렇게 해야 15년 전 오바마가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3. 은행 규정을 강화하겠다. 미국 지방은행의 구조조정과 정부 개입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엔 은행이 지나치게 없지만, 미국엔 지나치게 많다. 터치런의 시대라 미국도 대형화가 불가피하다. 또 그 핑계로 의회에서 예산 좀 타낼 기세다.

지금 미국 정부는 돈이 없다. 금융위기 때, 코로나19 때 돈 뿌려서 수습하느라 부채가 3경원이다. 달러 찍으면 그만이지만 지들끼리 자정한다고 정치 싸움하면서 부채한도를 조절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세계인이 지켜보기 때문이지 명분만 있으면 늘린다.

그런데 잠깐. SVB 핑계로 민간동원해 부실 털고, 예산 늘릴 명분 만들어두고 있는가 했는데 세계 톱 5에 들었던 크레디트스위스(CS)를 없애버렸다. 미국 달러스왑 5개국에 스위스를 넣어주고는 그 정부를 압박해 UBS와 말도 안되는 조건으로 합쳤다.

CS와 도이체방크(DB)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손보려던 은행들이다. 러시아와 중동 테러범들, 게다가 북한 자금까지 미국 몰래 담아주고 키워줘서 눈엣가시 같던 이들이다. 한마디로 미국 CIA(중앙정보국)의 데스노트에 담겨있던 은행이다.

CS는 또 죽을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이든이 지난해 친히 방문해 증산을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한 사우디아라비아 자금으로 살아나보려던 은행이다. 이번 합병으로 사우디는 '바이든의 주주책임 원칙'에 따라 수조원을 잃게 됐다.

사우디가 CS 죽기 직전에 괜히 발을 뺀 게 아닌 거 같다. 그리고 이제 화살은 도이체방크로 옮겨갔다. 도이체는 10분기 연속흑자를 낸 유럽계 수퍼스타이지만 원죄가 있다. 전쟁 이전까지 러시아산 가스로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던 독일계 투자은행이다.

뭔가 음모론 같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미국 중심의 질서 재편이다.

미국의 데스노트,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체방크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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