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으로 대박? '하늘의 별 따기'…유통가 손잡은 식품회사 속앓이

머니투데이 김민우 기자, 정인지 기자, 유엄식 기자 2023.03.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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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PB, 유통시장 게임체인저 (下)

편집자주 매주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가던 시절은 끝났다.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유통업체들은 '입맛'에 맞는 상품 발굴에 사활을 건다. 유통업체들이 가장 기민하게 활용하는 것은 PB(자체 브랜드)다. 제조업체가 신제품을 내놓길 기다리기보다 유통업체가 앞서서 고객 맞춤 상품을 제안한다. PB 개발력이 레드오션이 된 유통업계의 돌파구가 되고 있다.

"우리가 PB 만들지, 뭐"…아재입맛 30년, 답답한 유통사가 나섰다
- 움직이지 않는 NB..유통업체가 PB에 목숨건 이유

반값으로 대박? '하늘의 별 따기'…유통가 손잡은 식품회사 속앓이


'동원참치 42세, 빼빼로 41세, 신라면 38세, 종가집김치 37세, 진라면 36세'



매출 3조원을 넘는 국내 주요 식품업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들의 나이다. 모두 30년 이상 됐다. 세대가 한번 바뀔 시간이 흘렀지만 식품 강자 30년 넘게 1위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른바 식품업체 '3조 클럽'에서 2000년대 이후에 내놓은 신상품이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는 CJ제일제당이 만든 비비고 왕교자(2010년 출시)가 유일하다. 한번 기존 제품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입맛을 바꾸기 어렵다는 얘기다.

히트작이 나와도 인기가 꾸준히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팔도 꼬꼬면이 대표적이다. 2011년 8월 '하얀국물'이라는 역발상으로 돌풍을 일으킨 꼬꼬면은 출시 3일 만에 400만개가 팔려나가는 인기를 누렸다.



같은 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정한 대한민국 1등 상품 타이틀까지 얻었지만 기존의 빨간국물의 얼큰함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호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5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증설했지만 판매량이 급감해 팔도에 큰 손실을 안겼다. 매출은 2011년 12월 17억8000만원에서 다음 해 1월에는 14억3000만원, 2월에는 5억7000만원으로 감소했다. 두 달 새 3분의 1 수준으로 매출이 줄어들었다. 현재는 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과자 중에 2000년대 이후 히트작 중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상품은 '허니버터칩'이 유일하다.

수억원을 들여 신제품을 개발하고 또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을 들여 생산라인을 교체하더라도 소비자들의 관심은 잠깐뿐이다. 1970년대 1980년대에 만들어진 제품으로 돌아가다 보니 식품 상위 업체들은 기존 NB(제조사브랜드) 상품 생산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같은 제조업계의 흐름에 속이 터지는 것은 유통업계다. 신제품을 통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어야 매출이 늘어나는데 매번 팔던 것만 똑같이 팔아서는 유통업체 매출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신제품 출시를 통해 끊임없이 소비자들의 추가적인 구매를 유도해야 하지만 제조사들이 잘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하다"며 "유통업체가 PB(유통사 자체 브랜드)상품 개발에 나선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PB 전성시대, 제조·유통이 '미묘한 줄타기'하는 이유
- PB 상생 위한 숙제

#"우리 제품은 올렸는데 PB 제품 가격은 올릴 수가 없어요." 한 식품업체의 한탄이다. 원재료, 인건비, 물류비 인상으로 식품업체들이 지난해부터 가격을 줄인상했지만 PB 제품은 쉽지 않다. PB 가격은 유통업체와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성비와 품질을 갖춘 PB(자체브랜드) 제품들이 장바구니 물가 안정이 기여하고 있지만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상생을 위해선 숙제가 있다. PB '가격 경쟁력'을 위해서는 제조업체가 NB(제조사 브랜드) 대비 수익성을 일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유통업체들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적용으로 제조업체와의 유연한 계약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는 공생을 위한 미묘한 줄타기를 지속하고 있다.

◇ 물가 급상승하는데...PB 가격 올리기 어려워

반값으로 대박? '하늘의 별 따기'…유통가 손잡은 식품회사 속앓이
생존이 기로에 서 있다 PB 납품으로 기사회생하는 중소 제조업체들도 있지만 중견 제조업체들은 PB에 보수적이다. PB 제품 생산으로 공장 가동률이 올라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PB 사업 자체의 수익성이 낮다보니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PB 사업에 합류하는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업계 1위보다는 2~3위 사업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노브랜드 '라면한그릇'의 경우 2016년에 출시돼 아직까지 1980원(5개들이)에 판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NB(제조사 브랜드) 라면 5개들이 한팩이에 4000원대인 것과 비교된다. '라면한그릇'의 제조사는 팔도다. 팔도는 2021년 9월 왕뚜껑·도시락 등 라면 가격을 평균 7.8% 올렸고, 지난해 10월에도 라면 가격을 평균 9.8% 올렸다.

홈플러스도 지난해 말 NPB(공동기획상품)인 짜장라면 이춘삼을 출시해 한팩(4개들이)에 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춘삼은 홈플러스에서 1~2월 약 56만봉이 팔리며 농심 신라면을 제치고 홈플러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라면 1위에 올랐다. 그러나 판매가가 농심 짜파게티의 절반 수준이다보니 제조업체에 돌아가는 수익도 적은 편이다. 이춘삼의 제조업체는 삼양식품이다.

인구 감소로 수요가 줄어 들고 있는 우유는 상황이 더욱 어렵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서울유유(흰 우유 1ℓ)의 전국 소매점 평균 가격은 지난해 9월 2700원대에서 11월 2800원, 올해 2900원대로 뛰었다. 대형마트 PB 우유는 올 초 평균 10% 안팎으로 가격을 올렸지만 현재 2100~2390원 수준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재료 값이 올라도 유통사와 협의 없이 임의대로 올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 PB에 하도급법 적용돼 다양한 경영 전략 어려워

PB 상품 제조사들이 수익성을 고민하고 있다면 유통업체들은 법적 불확실성이 걱정거리다.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영전략이 필요하지만, 자칫 유통업체의 '갑질'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법 제11조에 따르면 유통업체는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지 않는 한 하도급대금을 감액할 수 없다. A 유통업체가 판매 물량을 1만개에서 2만개로 확대하면서 제조업체에게 단가를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유통업체는 발주와 입고 시점이 달라 생기는 단가 차이, 판촉 행사로 인한 단가 인하 요구 등을 할 수 없다.

또 하도급법 제12조2에 따르면 유통업체는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사업자에게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해 금전, 물품, 용역, 그 밖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도록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A 유통업체가 품질관리를 위해서라도 B 제조업체에게 C 업체가 수입하거나 만드는 재료를 사용하도록 요청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반면 하도급법은 외국법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외국법인이 국내에 영업소를 두더라도 하도급법 대상자가 아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해석하는 주체에 따라 애매모호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려고 노력하기보단 법 대상이 아닌 외국법인과의 협력을 꾀할 여지가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e커머스 등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특정 유통업체가 갑질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복잡한 법을 피하기 위해 외국 제조업체들과 협력을 강화한다면 국내 중소기업들에게도 득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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