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람시는 서구의 혁명적 좌파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글을 쓰고 있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노동계급 사이에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계급의식"이 고양될 것이며 이에 따라 혁명이 불가피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가 마르크스의 기대와 달리 혁명에 오히려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자 좌파 지식인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1902년의 저작에서 젊은 블라디미르 레닌은 "프롤레타리아의 엘리트 전위(前衛)"가 혁명의 깃발을 직접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엘리트가 프롤레타리아를 이끌어 구체제 국가를 전복하고, 생산수단을 차지한 후 모든 권력을 한 곳에 집중시켜 노동계급의 독재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적 정치의식은 '오직 밖에서부터' 노동자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 레닌의 주장이었다.
이것이 그람시가 말하는 그 유명한 '문화적 헤게모니'로, 강압적 힘보다 훨씬 더 은밀한 형태의 권력이다.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가 그람시가 말하는 "기동전"('운동전'이라고도 함 --역주), 즉 국가 통제권을 놓고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이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벌이는 투쟁을 통해 혁명을 이끌었다. 하지만 서구에서 혁명가들이 유토피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보다 오랜 시간이 들고 더욱 은밀하게 진행되는 '헤게모니 저항' 투쟁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투쟁은 한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적 합의에 대한 "진지전"(陣地戰: '참호전'이라고도 함 --역자주) 형태여야 한다. 진지전은 동양적 세계의 혁명과 달리 단 한 번의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승리하는 전쟁이 아니다. 진지전은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시민사회 기관들의 통제권을 놓고 한없이 시간이 늘어지며, 전선도 사방에 흩어지는 전투를 치러야 한다. 1960년대 독일의 운동권 지도자인 루디 두취케가 이러한 전투를 "시민사회 기관들을 뚫고 행진하는 대장정"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유명하다.

그람시의 전략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와 길을 달리하는데,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문화적 규범, 관습, 사회제도 등 사회 전체가 경제적 관계와 권력에 의해 모습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계급도 경제적인 생산관계의 관점으로만 보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그람시는 계급투쟁의 최전선에 '문화적' 생산관계를 놓았다. 먼저 이러한 문화 장악이 이뤄져야만 경제적 기구 장악이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람시의 관점이다.
그의 사상이 영향력을 확대하자 서구에서도 그의 전략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보수파 학자 존 폰티는 "그람시의 가장 혁신적 생각들, 예컨대 '인종, 종족, 성별 같은 정체성에 따라 지배그룹과 피지배그룹이 권력투쟁을 벌인다'거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거나 '모든 지식과 도덕은 사회적인 구성물'이라는 생각들이 오늘날 미국 정치의 중심에 있는 전제이며 가정"이라고 2000년에 쓴 바 있다. '비판이론'이라고 불리는 학파는 주로 그람시의 사상에 기반하는데 미국의 헌법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원칙들, 즉 차별없는 정의, 법 앞에서의 평등, 언론과 양심의 자유 등은 억압적 권력구조를 감추는 연막에 불과하다고 본다. 비판이론을 계승한 비판적 인종이론(CRT)이나 젠더이론은 현재 미국정치에서 문화전쟁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흐름은 그람시가 생각한 '문화적 전위'와 유사한 진보주의자 계급이 주도하고 있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을 강조하는 관료주의가 대학 캠퍼스와 회사 이사회에서부터 노동조합, 주요 스포츠, 연방정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거대 SNS기업들은 자격을 갖춘 '팩트 체크 담당자'를 배치해 우파 '가짜뉴스'에 경고 표시를 달게 하고 게시물 내용을 '순화'하는 방식 등으로 보수 인사, 담론을 입막음하고 있다. DEI 컨설턴트, 재정이 풍족한 시민단체 및 재단, 활동가 성향의 기성 언론은 서로 힘을 합쳐 미국인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재구성하려 하고 있는데, 자격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가진 엘리트 교육기관들도 이들을 크게 도와준다. 오늘날 문화적 전위 특유의 가치관, 서사, 세계관은 미국의 각종 엘리트 기관에서 헤게모니에 가까운 지위를 누린다.
그람시적 전위의 영향력이 마르크스적 경제혁명을 가져오는데는 실패했을지 모르나, 그 문화적 영향력은 오늘날 그람시가 정복하고자 했던 "요새와 토성"의 모든 해자, 성채, 지하감옥까지 미치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일종의 민주적 권위주의라는 유령인데, 참호 속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운동권 계급이 사회의 문화적 규범(그리고 그 결과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보는 관점)을 결정한다. 이 계급은 과거 미국을 지켜왔던 전통과 제도들을 부정하고 있다.
공산주의 혁명이 미국땅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람시 정치사상의 결함을 드러내는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또는 단지 그람시적 문화혁명이 아직은 미완성임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의 권력 개념은 미국의 전국적 문화전쟁에서 그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그람시가 꿈꿨던 사회변혁, 즉 "학교, 대학, 교회, 언론에의 침투"를 통한 "사회의 의식 변혁"이 이제 미국의 공화당 지배 지역까지도 미치게 되었다.
낙태 같은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20세기 후반의 문화전투는 대체로 좌파의 승리로 끝났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 기도시간, 군대내 동성연애자, 결혼의 정의(定義) 문제 같은 싸움이었다. 좌파의 대장정은 더욱 급진화돼, 성전환자의 군복무, 여성징집, 미성년자 성전환 수술, 미국의 전통적인 상징이나 이야기, 또는 인물을 죄다 비하(건국의 아버지들의 동상을 부수고, 그들의 이름을 공원, 학교, 정부청사에서 떼어내고, 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로 대체하고, 독립을 선포한 1776년 대신 흑인노예가 처음 도착한 1619년을 '진짜 건국의 해'로 주장하는 글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등)하는 것을 새로운 전선으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변혁의 실질적 영향력은 보다 미묘하지만 근본적인 변화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많은 좌파적 가치, 원칙, 핵심전제들이 미국 정치문화의 근간으로 별다른 반론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인종, 젠더, 성과 관련된 논쟁에서 우파들도 종종 암묵적으로 좌파의 목표를 받아들이고 있다. 단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보수적 방법이 더 적절할 것이라는 정도로만 반론하고 있다. 우파의 일각에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체계적 인종차별'이 낙태, 최저임금, 복지 관련 정책들을 이끌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인종별로 차이가 나는 결과들이 비백인들에 대한 미국에 존재하는 구조적 억압을 증명한다는 좌파의 의심스러운 가정을 받아들인다. 2020년 초 공화당이 다수인 연방 하원 세입세출위원회는 "트럼프 경제" 아래서 여성의 "노동력 참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더 빠른 비율로 상승하고 있으며" "유색인종 여성이 일자리 경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며 다시 한번 보수적 정책이 그 자체로 좋다고 하기 보다는 평등한 사회적 결과를 낳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다는 프레임에 넣어 홍보했다.
하지만, 미국의 자치 메커니즘이 이러한 문화적 흐름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인디애나주와 유타주에서 성전환 스포츠선수(생물학적 남성)가 여성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에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하자, 공화당이 다수인 주 의회가 압도적 다수의 재의결로 법안을 통과시켜 버렸던 것이다. 또 한때 떠오르는 스타였다가 비슷한 법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빛이 바랜 적이 있던 사우스다코타의 노엄 주지사도 이번엔 새 '여성 스포츠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움직였다.
최근 공화당 지도자들은 보이콧 위협을 무시하고 이른바 '워크 자본'(woke capital: 워키즘 쪽에 선 기업이나 자본가를 의미 --역주)에 맞서 결의를 새롭게 다졌다. 조지아주에서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한 투표법이 흑인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올스타게임 개최지를 조지아주 애틀란타시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협박했을 때, 흔들림 없이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플로리다에서는 론 드산티스가 좌파운동가들이 '동성애에 반대하는' 법안으로 낙인을 찍은 교육법안 문제에 디즈니가 개입하려 하자 이에 맞섰다. 전국에 걸쳐 공화당이 다수파인 주와 하위 지역단위에서 우파의 문화전쟁 전략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듯한데, 분명한 그람시적 접근법을 보이면서 좌파 문화권력의 현상이 아닌 원천 자체를 겨냥한다.

콜로라도주 인권위원회 같은 개입주의적 관료조직은 좌파의 문화적 지배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권력 원천 중 하나다.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힘을 동원해 이러한 관료조직들을 약화시킬 수 있고 또 약화시켜야 한다. 일이 터진 이후 법정에서 이들의 반헌법적 선동에 맞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보수주의 정치는 '큰 정부'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러 상황에서 국가에 대해 헌법적 제한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플로리다 공립대학들에서 모든 DEI, 비판적 인종이론(CRT) 관련 관료조직들에 예산지원을 없애려는 론 드산티스의 최근 시도는 분명히 그런 조직들이 "고사(枯死) 하도록" 하려는 것인데 완전히 그의 헌법적 권한이다. 실질적인 문화전쟁 승리를 거뒀을 뿐만 아니라 낭비적인 정부지출을 줄이고 이렇게 아낀 세금을 더 긴요한 주정부 기능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플로리다 주지사가 이러한 분야에서 자신의 정치적 권한을 사용한 그 단호함, 즉 그가 플로리다주 안에서 주요 문화기관들의 통제권을 되찾겠다는 진정성 있는 태도는 우파에게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접근법이다.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부분적으로는 정치적 권력 행사를 통해 조율되기도 하는 보수주의의 진지전은 미국인들의 삶에 정부 통제의 확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하지만 그 진지전은 국가가 문화와 교차하는 지점들을 겨냥하면서 이 교차지점이 급진적 가치와 규범이 아닌 보수주의적 가치와 규범을 반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드산티스는 최근 보수적 반CRT 운동가인 크리스토퍼 루포를 어느 좌파성향이 강한 작은 대학의 이사회에 임명했다. 정치가인 드산티스나 운동가인 루포 어느 누구도 국가주의적 프로젝트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단순히 현재 미국의 공공제도가 미국문화를 만들고 지배하는 세력들에 포획되어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를 포함한 공교육 기관은 정부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운영하는 교육공무원들은 마치 자신들이 민간단체인양 선출직 공직자들과 유권자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에 의한 결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문화가 정치를 결정하는 것도 정치가 문화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양자는 항상 상호작용한다. 그람시가 보기에, 헤게모니가 확립된 나라에서 정치와 시민사회는 "사회세력들, 즉 지도계급과 피지도계급 사이에 균형 상태를 만들어내는 두 개의 핵심요소"다. 마르크스주의 저널인 시어레티컬리뷰(Theoretical Review)에서 발레리아노 라모스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지도계급의 헤게모니와 지배적지위가 위협받게 된다." 현재 정치와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이 지점들의 좌파 통제를 뒤흔들려는 보수파의 저항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람시의 이론에 따르면, 정치적 영역은 '도미니오(dominio)' 즉 강제력을 통해 다스려지고, 시민사회는 '디레치오네(direzione)' 즉 설득과 합의에 의해 다스려진다. 그람시가 보기에, 현대적 선진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이 주로 사용하는 지배수단이 후자 즉 설득과 합의이며, 국가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오직 "체제 차원의 위기"가 발생해 헤게모니를 지닌 문화적 합의가 위협받을 때 뿐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연방정부 기관들과 그들의 실리콘 밸리 동맹세력들이 주도하는 "가짜 정보"에 대한 감시 및 검열 시도는 그들의 지배수단이 '도미니오'에서 '디레치오네'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러한 감시와 검열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은 좌파의 문화지배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도전이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문화전쟁에서 우파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은 미국 헌법 의 핵심내용이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람시는 가장 강력한 사회권력이 문화를 만드는 계급과 제도에 있다는 점을 잘 이해했다. 이러한 제도에는 한 사회의 공식적인 정치제도도 포함되지만, 이는 사회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더욱 광범위한 싸움 속에서 하나의 전장(戰場)에 불과하다. 진정한 정치는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며 정부의 안과 밖에서 이뤄진다. 최근의 기억에 남아있는 가장 성공적인 보수주의 문화전투인 낙태반대(pro-life) 운동은 풀뿌리 운동, 시민적 제도 구축, 정치 로비, 반헤게모니적 언론, 정보 생태계 구축에 이르기까지 여러 전장에서 나름의 진지전을 벌였다. 낙태반대 신념은 공화당원, 보수주의자, 심지어 특정 주요 기독교단 구성원(남부침례회 같은 일부 교단은 과거에는 낙태반대에 그리 열심이지 않았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문화적 우세를 확보하기 위한 진보파의 시도는 '센소 코무네'를 점령하기는커녕 우파 진영의 더욱 강하고 적대적인 정치적 태도만 낳았을 뿐이다. 대기업, IT기업, 그리고 자녀들의 학교 등 시민사회 기관 및 제도들에 대한 공화당원들의 태도가 지난 수년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전국의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벌어진 학부모 주도의 풀뿌리 항의는 그들이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있음을 분명히 증언한다. 우파는 이제 보수적인 언론, 싱크탱크, 운동그룹 등 반격할 무장을 갖추었다. 언젠가 이 싸움은 미국의 주류사회를 관통해 정반대 방향으로 행진해 나갈 대장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바로 우파의 "진지전"이다.
실제로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문화전쟁을 정확하게도 이렇게 본다. 일부 유럽 우파 사상가들은 오랫동안 그람시를 추종했다. 1981년에 유럽의 신우파가 개최한 컨퍼런스는 주제가 '우파 그람시주의'였는데, 이 운동을 주도하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브누아는 "그람시의 몇몇 관점은 거의 예언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도 그람시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루포는 그람시를 신좌파(뉴레프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면서, 동시에 우파에도 영감을 줄 잠재력이 크다고 자주 말한다. 올해 초 힐스데일 컬리지에서 했던 연설에서 루포는 "50년 전에 시작해 미국 제도들을 하나하나 점령해가며 행진해온 그람시의 대장정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면서 이에 맞서 그들이 점령하고 있는 "제도들에 대해 포위전(공성전)" 전략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몇 달 전 그는 플로리다의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화혁명이 이뤄진 현상황을 현실 내지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의 대응은 경제의 축보다는 문화의 축에서 이뤄지는 반혁명 관점에서 짜여져야 한다."
현재 문화 이슈들에서 적극적으로 반격하고 있는 공화당원들은 그람시를 인용하지도 않고 심지어 읽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람시적 전략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디즈니, DEI 관료들, 공공교육 기관들과의 싸움에서 플로리다 주지사 드산티스는 좌파 문화권력의 심장을 겨냥했다. 이러한 시도를 더욱 많은 공화당 주지사들과 공화당 우위의 의회에서 따라가고 있는데, 기업들의 친좌파적 이해관계에 대해 더욱 적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고, 아이다호와 와이오밍에서처럼 심지어 주립대학들의 젠더연구 과정에 예산을 직접 끊어버리는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한다.
'혁명'과 '반혁명' 같은 표현에 이른바 신우파(뉴라이트)계열의 보수주의 논객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보수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좌파의 시민사회 점령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을 믿기 위해, 그리고 '대장정' 전략이 조직 원리로서 갖는 장점들을 보기 위해 오랜 보수주의 원리들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우파가 예술, 학교, 지성계에서 발판을 다시 확보하려 한다면, 1960년대 이전 그람시적 좌파 전위가 그랬듯 우파 역시 미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 반란군'으로 자리매김 하는데 어색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국제시사·문예 버티컬 PADO의 '안토니오 그람시와 미국의 문화전쟁'을 요약한 것입니다.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