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카지노’가 흥미로운 건 강윤성 감독의 영화적 세계관이 공고해지는 발판이 아닐까라는 점 때문이다. 마동석과 함께 기획하는 ‘범죄도시’가 (과연 진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많은 후속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세계관. 마치 불교적 윤회의 도돌이표처럼 새롭게 돌아오는 새로운 악의 등장에 기반한 서사적 구조 말이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지만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데 이건 모든 갱스터 및 누아르의 원천이다. 여기에 ‘카지노’는 에너지를 굉장히 쏟아 붓는다.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는 음지의 세력과 필연적으로 얽힐 수 밖에 없는 관료 체제. 전 세계를 휩쓸었던 마약왕 시리즈 ‘나르코스’처럼. 아, 이렇게 연상의 고리를 확장시키면 ‘카지노’는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과 같은 느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 하지만 ‘카지노’는 경찰 역의 손석구와 정팔 역의 이동휘로 인해 좀 더 다른 결로 펼쳐진다.

최민식의 연기야 뭐 자타가 인정하는 베테랑이다. 몇몇 작품으로 갑작스레 스타덤에 오른 손석구는 ‘나의 해방일지’와 ‘범죄도시2’와는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시즌 1의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 손석구는 처음에는 “이게 뭐지?”라는 의아함을 전하다, 서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아 이래서 이렇구나”라는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래서 손석구는 여전히 좋은 배우다. 마냥 웃긴 역만 할 줄 알았던 이동휘의 변신도 흥미롭다. 위트를 간직한 캐릭터이면서도 그가 변해가는 과정 자체를 개성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강윤성 감독은 뻔한 배우들을 데려다 뻔할 줄 알았지만 다른 색채를 지닌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카지노’라는 세계 속에서 범죄는 결코 미화되지도 않으며, 먹고 살기 위한 일종의 투쟁으로 그려진다. 먹고 살려 하다 보니 속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한다. 이 속에서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꽤나 힘을 발휘하고, 결국 ‘카지노’를 끝까지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16개의 에피소드를 완결하는 데 ‘카지노’는 (요즘 OTT 트렌드에 비하면) 굉장히 오래 걸렸다. 그래도 매주 수요일이 기다려졌던 건 느림 속 긴장의 쾌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2023년 3월 22일자로 ‘카지노’는 완결됐다. 물론 1시간 2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가진 시즌 2의 에피소드 8은 뻔한 종결이면서도 또 다른 카지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만큼 도박판도 꽤나 급변하고 있음을 또 다른 캐릭터를 등장시킴으로써 오리무중의 새로운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니까. 각설하고 ‘카지노’는 느림의 미학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새 유형의 갱스터 물이었다. 사족이지만, 마지막 화에서 이동휘가 새롭게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 개인적으로 그건 비장미 가득했던 ‘지존무상’에서 웃음기로 채워진 ‘지존계상’으로 넘어가는 왕정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리게 했다. 만일 새로운 시즌이 제작되었을 때, 그런 급진적 선회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