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역사가 상당하다. 1970년 한국투자개발공사가 1억원 발행한 '증권투자신탁'이 첫 펀드다. 그러나 한국의 펀드는 재테크 실패의 상징이라는 오명 탓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
이후 2004년 적립식 펀드로 시장이 부활했는데 이번에는 대세상품이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 혼합형 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반토막, 세토막 났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베트남 펀드도 눈물의 상품 중 하나였다. 사모펀드 시장에선 이탈리아 헬스케어, 라임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가 터졌다.
얼마 전 의미가 큰 펀드가 나왔다. 사모펀드만 운용하던 VIP자산운용이 공모펀드 시장에 뛰어들며 출시한 'VIP 더 퍼스트' 펀드인데, 사전예약까지 몰리며 출시와 동시에 300억원이 완판돼 버렸다. 펀드이익은 고객이 먼저 가져가고, 손실은 자산운용사가 먼저 보는 손익차등 형태의 펀드다. 원금의 10% 이내 손실은 VIP자산운용이 떠안는다. 이익의 15%까지는 고객이 먼저 취하고 이후 수익은 운용사와 나눠 갖는다.
사모펀드 가운데는 타임폴리오 자산운용이 2020년 손익 차등형 펀드를 선보인 바 있다. 3년간 20%대라는 나쁘지 않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신한자산운용이 펀드수익률에 따라 성과보수를 달리하는 펀드를 선보였다.
이런 펀드들이 큰 인기를 끄는건 수익률 때문이 아니다. 기저에 깔려있는 '신뢰'를 고객들도 느꼈기 때문이다. 운용사의 능력이 다르다 한들 절대 수익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객들이 왜 모르겠나. 설령 손실이 나도 고객들이 운용사에 비난의 화살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신뢰(信賴)라는 한자에는 '믿고 의지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영어 트러스트(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trost)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편안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펀드가 더 많아지길 응원한다. 아울러 금융정책 및 감독당국에게도 작은 박수를 보낸다. 손익차등형 공모펀드는 2021년 정부가 출시한 국민참여형 뉴딜펀드가 첫번째 상품이었다. 당시 상품을 설계하며 실무자들이 흘렸던 땀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그때 뿌렸던 씨앗이 지금 발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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