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 레만 CS 이사회 의장(왼쪽)과 콜름 켈러허 UBS 회장이 19일(현지시간) 베른에서 UBS가 크레디트스위스(CS)를 32억 달러에 인수하는 기자회견에 참석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은행업법에 적힌 은행업의 정의다.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것'이 은행의 본질이다. 이익을 얻으려면 낮은 금리로 예금을 받아 높은 금리로 빌려주면 된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경제에서 사기를 치지 않는 이상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짧게 빌리고(예금), 길게 빌려주면(대출) 가능하다. 단기 예금(요구불예금)이 많고 장기 대출(혹은 장기채권)이 많으면 은행 이익은 극대화된다. 반대로 단기 예금이 빠르게 빠지는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은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 빌려준 대출을 떼여도 어려워진다.
167년 역사를 가진 세계 9위 IB(투자은행) CS가 UBS로 인수됐다. CS 위기는 지난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CS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 3분기말까지 CS 고객 예금잔액은 3600억스위스프랑(약 510조원)에서 4000억스위스프랑(약 567조원)을 왔다갔다했다. 하지만 4분기말 잔액은 2330억스위스프랑(약 330조원)으로 거의 반토막났다. 3개월만에 200조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갔다.
국내에서도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하면 버틸 수 있는 은행은 없다. 다만 국내 대형 은행에서 이같은 규모의 뱅크런 발생 가능성은 낮다. 가장 큰 이유는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서다. 국내 은행은 장기 유가증권에 많이 투자하지 않으니까 SVB처럼 금리가 갑자기 오른다고 대규모 손실을 볼 일이 없다. 헤지펀드 등 고위험 유가증권 투자도 하지 않으니까 CS처럼 투자 실패할 리도 없다. 대신 국내 은행은 대출 자산이 많다. 대출이 부실해지면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은행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산업별 고른 대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부동산 등 특정 산업이 위기에 빠지면 은행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망할 정도는 아니다. 한국경제 전체가 무너지면 모를까 그전까지는 국내 은행은 안전하다.
역설적이지만 국내 은행이 안전한 이유는 그동안 은행이 비판받은 이유와 같다. 국내 은행은 예대마진에 기초해 이자이익을 꾸준히 낸 덕분에 뱅크런 걱정을 덜었다. 은행이 안전한 덕분에 한국 경제 위기감도 덜하다. 은행의 이자이익이 은행과 한국 경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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