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방송의 세대교체! '박재범의 드라이브'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3.03.21 08:50
글자크기
제이홉(왼쪽)과 박재범, 사진제공=KBS제이홉(왼쪽)과 박재범, 사진제공=KBS


30년 된 공영방송 심야 음악프로그램의 새 MC를 보며 든 생각은 단 하나 '젊음'이다.



물론 기존 사회자들도 당시에는 젊었다. 노영심은 25살 때 '작은음악회'를 시작했고 이문세는 36살 때 자기 이름을 건 '쇼'를 맡았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그가 26살 때 건넸으며, 윤도현은 30살이 돼 자신의 '러브레터'를 띄웠다. 그리고 배우 이하나는 25살의 '페퍼민트' 향을 전했고 유희열은 37살부터 자신의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렇게 유희열이 떠나고 반년이 지난 2023년 2월. 래퍼 박재범이 유희열이 스케치북을 맡았던 때와 같은 나이에 KBS 심야 음악프로그램 사회를 맡게 된다. 프로그램 제목은 '박재범의 드라이브'. 띠동갑을 훌쩍 넘는 전 사회자 유희열과 현 사회자 박재범 사이엔 역동적인 타이틀에서부터 이미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첫 방송은 좀 산만했다. 큐카드를 들고도 진행에 애를 먹던 박재범의 모습은 한국말이 서툴러 서툰 사회를 예감케 한 다수의 걱정이 현실이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박재범의 미숙함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허술한 매력은 준비되지 않은 준비로서 사람 냄새를 풍겼고, 임창정 때처럼 출연자들이 자신의 무대를 직접 꾸려 갈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박재범은 앞장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채색해나가는 대신 뒤에서 타인의 여백이 되어주는 진행자로 남으려는 듯 보였다. 래퍼 비오가 말했듯 그래서 박재범의 드라이브에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됐다. 이것이 방청객과 시청자들이 1회 방송을 보고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준 이유다.



그런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박재범이 춤과 노래로 출연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무르익는다. 스스로가 댄서이자 싱어, 래퍼인 박재범은 무대에 누가 올라오든 거기에 섞일 수 있는 준비된 MC였던 것이다. 가령 폴킴과 함께 뉴진스의 'Hype Boy' 안무를 소화하고 김조한, 챈슬러와 스티비 원더의 'Lately'를 같이 부른 장면은 그런 박재범의 드라이브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그 힘은 경계를 무너뜨렸고 젊음의 가치를 모색했다. 지천명에 이른 유희열이 스케치북을 닫지 않았다면 만나볼 수 없었을 파격의 에너지가 박재범을 거쳐 일요일과 월요일의 경계에서 신나게 진동했다. 첫 방송 때 관객석에서 불쑥 등장한 이찬혁, 크러쉬의 무대에 스스럼없이 스며든 박재범의 즉흥 진행이 다 그런 예들이다.

사진제공=KBS사진제공=KBS
결국 이건 음악방송의 세대 교체였다. 세대 교체란 필연적으로 장르의 교체를 부르는 법. 나스와 제이지를 동경해온 보이밴드 출신 래퍼가 BTS, 손흥민, 봉준호를 엮어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 첫 무대에서 펼쳐보인 인사는 사카모토 류이치와 어떤날을 좋아하는 유희열의 이전 방송과는 다른 세상으로 20~40대 대중을 불러들였다. 실제 노영심과 이문세, 이소라와 윤도현, 유희열은 조동익과 유재하라는 존재를 통하면 다 만나는 이름들이지만 박재범은 그 족보에서 벗어난 사회자다. 박재범의 드라이브에 가속이 붙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물론 양희은이 노래한 '좋아'는 그 가속을 살짝 유예시켰지만 얼마 안 가 터져나온 이영지의 속사포 랩 벌스는 그 유예를 다시금 유예시키며 블랙뮤직의 시대를 재삼 환기시켰다. "과거엔 무대 반주가 받쳐주질 못해 조니 길의 'My My My'를 부를 수가 없었다"는 김조한의 증언 역시 정마에와 쿵치타치의 트렌디 연주를 향한 칭찬으로 수렴되며 이 프로그램이 가진 '분위기 전환'의 맥락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품어온 가치를 박재범의 드라이브도 지켜가고 있다는 건 고무적이다. 바로 홍보가 필요하고 무대가 필요한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건 박재범 개인을 향해 "이 시대에 멋진 걸 하고 계신 분"이라고 말한 이찬혁의 칭찬이 KBS 심야 음악프로그램으로 향해야 한다는 걸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인 아티스트를 샤라웃(shout out) 한다"는 취지로 별채처럼 구비해둔 신인 소개 코너 '타라웃'도 박재범의 드라이브가 지닌 "함께 잘 살자"는 음악 공동체적인 면모로 여길 만 한데, 좁은 차 안에서 대중에게 인사하고 넓은 무대에서 대중과 만난 시온(SION), 수스(xooos), 구만(9.10000), 지올 팍(Zior Park)의 가능성은 다나카 유키오가 정점을 찍은 개그 코드보다 더 조명받아야 할 '드라이브'의 엔진이다.

사진제공=KBS사진제공=KBS
이 모든 걸 가장 극적으로 한자리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6회 방송에 출연한 제이홉 편이었다. 제이홉은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관객석에서 인터뷰를 했고 자리를 무대로 옮겨선 박재범과 댄스 잼을 벌였다. 박재범은 근래 제이콜(J. Cole)과 콜라보로 발표한 제이홉의 'On the Street' 챌린지 영상에 맞춰 자신도 따라 춤을 추었는데, 그는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나중엔 아예 해당곡 16마디 위에 직접 써온 벌스를 얹어 열띤 랩까지 선보였다. 그야말로 이전 음악방송들에는 없었던 '프리스타일 사회'다.

알려진 바로는 올해부터 KBS 심야 음악프로그램이 '더 시즌즈'라는 이름으로 연간 프로젝트를 도입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2023년 한해 동안 MC 네 명이 각각 자기 이름을 건 시즌별 뮤직 토크 쇼를 진행해나갈 거란 얘기인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박재범의 드라이브다. 2월 5일부터 시작했으니 예정대로라면 4월 정도에 MC가 바뀐다는 것. '드라이브'에 호감을 가졌던 방청객, 시청자들에겐 기대 반 아쉬움 반의 기획일 것 같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