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 방지' 넣고 지우고…바이오사, 정반대 선택 이유는

머니투데이 박미리 기자 2023.03.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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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다수결의제·황금낙하산 등 조항 도입
오스코텍, 주주제안으로 조항 삭제 결의

올해 국내 바이오 업계에선 '적대적 M&A(인수합병)' 방지 조항을 도입하고, 삭제하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동시에 확인됐다. '적대적 M&A'은 상대기업의 동의없이 그 기업을 인수해 경영권을 얻는 행위다. 바이오기업 일부는 적대적 M&A를 막는 조항을 도입하기로, 일부는 그 정반대로 관련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상법상 특별결의 요건보다 더 가중된 결의요건을 요하는 '초다수결의제', 경영진에 거액의 퇴직보상금을 지급해 인수비용을 높이는 '황금낙하산' 등이 적대적 M&A를 막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경영진이 낮은 지분율로 불합리한 피해를 볼 경우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지만, 정상적인 기업 M&A를 방해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적대적 M&A 방지' 넣고 지우고…바이오사, 정반대 선택 이유는


"적대적 M&A 막아라"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놀루션 (3,870원 ▲20 +0.52%)은 오는 2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초다수결의제' 조항을 신설할 계획이다. '적대적 M&A로 인해 기존 이사의 해임이나 신규 이사 및 감사의 선임을 결의하는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2 이상,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4분의3 이상 찬성해야 가결로 인정하겠단 것이다. 회사 측은 "적대적 M&A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테라젠이텍스 (4,375원 ▼40 -0.91%)도 이번 주총에서 '적대적 M&A로 인해 신규 이사 및 감사 선임을 결의하는 경우'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2 이상,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2 이상 찬성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이사 선임은 보통결의, 해임은 특별결의 안건이다. 두 회사는 보통결의 기준인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1 이상,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과반', 특별결의 기준인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2 이상'보다 까다로운 안건 통과 기준을 제시해 적대적 M&A를 막고자 한 것이다.

황금낙하산 조항을 도입하려는 바이오사들도 눈에 띈다. 인벤티지랩 (11,970원 ▼80 -0.66%)은 적대적 M&A로 해임될 경우 통상적인 퇴직금 이외 퇴직보상금으로 '대표이사에 50억원을, 이사에게 30억원을 해임 후 15영업일 이내 지급한다'는 조항을 정관에 신설할 계획이다. 비엘 (2,565원 ▲110 +4.48%)도 적대적 M&A로 해임될 때 통상적 퇴직금 이외 퇴직보상금으로 '대표이사에 200억원, 이사 및 감사에 각각 100억원을 퇴직 후 7일 이내 지급한다'는 조항을 정관에 추가할 예정이다.

적대적 M&A 방지 조항 도입은 최대주주 측 지분이 낮은 바이오사 특성에 기인한다. 바이오기업들은 수익 창출까지 오랜 연구개발 기간이 소요된다. 이에 상당수 바이오사들이 수익 창출 전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 전환사채 등으로 투자금을 조달했고 최대주주 측 지분은 상당부분 희석됐다. 위 4개사 최대주주 측 지분율도 제놀루션 25.23%, 테라젠이텍스 9.21%, 인벤티지랩 25.02%, 비엘 7.14%로 높은 편은 아니다.(지분율은 작년 11월 상장한 인벤티지랩을 제외하고 모두 작년 9월 말 기준)


"정상적 M&A 방해" 지적도
적대적 M&A 방지 조항이 '경영권 방어'란 긍정적 측면만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업계 관계자는 "적대적 M&A를 기업 주주가치를 개선시키는 것으로 보는 입장에선 기존 경영권을 지나치게 보호해 정상적인 M&A까지 방해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올해 일부 바이오사들에선 적대적 M&A 방지 조항을 지우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HLB (105,200원 ▼4,500 -4.10%), HLB생명과학 (20,450원 ▼950 -4.44%), 노터스 (4,510원 ▲95 +2.15%) 등 HLB 계열사들은 황금낙하산 조항을 도입한지 1년 만인 올해 삭제를 결정했다.

오스코텍 (27,600원 ▼550 -1.95%)은 주주제안으로 초다수결의제 조항 삭제 안건이 주총에 올라왔다. 주주들은 "발행주식 총수의 80%를 얻어야 주주가 제안한 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조항은 지분 10%대의 소수지분 지배주주의 경영권이 신성불가침이 돼 1주 1의결권인 주주평등 원칙을 위배한다"며 "이사회의 다양한 구성을 막아 독립성 및 투명성을 저해하고 소수 지배주주의 경영권 남용을 초래할 수 있어 다수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들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송민경 한국ESG기준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식회사 제도는 경영진이 주주를 대표해 회사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경영을 하는 것"이라며 "기업을 둘러싼 전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고려해 중장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경영진이 경영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안 되는 경영진에 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들의 연임을 방지하는 등 움직임이 정상적인 자본시장의 모습"이라며 "설득력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경영진 교체를 막아 주주 이익 증진을 어렵게 하는 건 문제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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