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물건 못 팔아" 부랴부랴 재활용…기업들 변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김도현 기자, 이세연 기자 2023.03.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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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플라스틱 순환경제(上)

편집자주 플라스틱 재활용은 '가면 좋은 길'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 됐다. 글로벌 규범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다. 따르지 않으면 생수 한 병 사고 파는 것도 어려워진다. 페트병부터 비닐까지 모두 재활용 가능한 순환경제 생태계가 중요한 이유다.

5년 내 '80조 시장' 오픈…플라스틱 재활용 안 하면 물건도 못판다
①'2025년'에 주목하라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앞으로 5년 내 플라스틱 패러다임이 변화한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일정 수준 쓰지 않으면 물건을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새로운 시대다. 기업들은 변화를 택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절박감 때문에 분주하게 움직인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은 2025~2030년을 전후로 재생원료 사용 비율을 극적으로 높이는 것을 계획중이다. 코카콜라는 2025년까지 모든 포장재에 사용하는 재생원료 비율을 25%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2030년 목표치는 50%다. 아디다스는 내년부터 신발·의류 등 모든 제품 생산에 재활용 플라스틱만 쓰기로 했다. 펩시코(25%), 네슬레(30%), 유니레버(25%), 로레알(50%), P&G(50%), 에스티로더(최대 100%) 등도 2025년을 기준으로 목표치를 제시했다.



국제적으로 '플라스틱 순환경제'가 표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배출을 줄이고,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반드시 재활용해야 하는 시대를 앞두고 선제적 조치를 취한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지난해부터 플라스틱 용기는 재활용 원료를 이용하도록 했다. 재활용 원료 비율 목표는 2025년 25%, 2030년 50%다. 뉴저지 등 여타 주도 관련 규정 제정에 나섰다. EU(유럽연합)는 2025년까지 모든 페트병에 25%, 2030년까지 모든 플라스틱병에 30%의 재활용 소재를 써야 한다. '플라스틱 제로'의 선두주자인 프랑스 정부는 2025년 1월1일까지 모든 1회용 플라스틱 포장재 재활용 100% 달성을 천명했다.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지난해 유엔환경총회에서 176개국은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플라스틱 관련 조약을 만들 것을 결의했다. 이는 순환경제 체제가 단순 '플라스틱병'이 아니라 자동차·휴대폰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것임을 시사한다. 코트라(KOTRA) 파리무역관은 "소비재 포장재, 가전 소모품, 식음료 용기 등 제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비즈니스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삼일PwC는 글로벌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가 올해 486억 달러(약 63조원)로 커진 후, 오는 2027년 638억 달러(약 83조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맥킨지는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이 2050년 600조원(플라스틱 시장의 60%)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와 기업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환경부는 페트(PET) 생산기업에 대해 2030년까지 '재생원료비율 30%'를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2050년까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기기에 100% 재활용 플라스틱만 쓴다. SK지오센트릭,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은 2024~2025년까지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이 가능한 공장을 완공한다.

하지만 재활용 플라스틱 수요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들의 대응 속도가 비교적 늦고, 물량이 한정적이어서다. 국내에 신설되는 주요 공장의 플라스틱 처리 물량을 모두 합쳐도 연 50만톤에 미치지 못한다. 그마저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수거·선별의 문제로 물량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공장 완공 연도가 '2025년' 전후로 맞춰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며 "물건을 아예 못파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제주시 봉개동 환경시설관리소 매립장에 재활용 플라스틱이 산처럼 쌓여 있다. 2020.6.7/뉴스1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제주시 봉개동 환경시설관리소 매립장에 재활용 플라스틱이 산처럼 쌓여 있다. 2020.6.7/뉴스1
"90% 재활용 가능한데"…플라스틱 1000만톤 중 700만톤 불타
②생태계 구축이 필요한 이유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2025년 무렵부터 글로벌 기업들이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비중을 높이는 것의 바탕에는 기술의 발전이 있다. 이미 폐플라스틱을 거의 90%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상용화된 상태다.

◇물리적-화학적 재활용

생수병과 같은 깨끗한 페트병은 물리적 재활용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페트병을 분쇄해서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든다. 들어가는 에너지도, 발생하는 탄소도 적다. 다만 재생 플라스틱의 질이 떨어질 수 있는 점은 문제다. 색깔이 있거나 이물질이 묻은 플라스틱에적용할 수 없는 방식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물리적 방식을 보완할 수 있다. 크게 해중합, 폴리프로필렌(PP) 추출, 열분해 추출 등으로 나뉜다. 폐플라스틱에 화학적 반응을 줘서 태초의 '원료'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물리적 재활용을 수차례 거쳐 질이 떨어진 재활용 플라스틱 제품도 이 과정을 통해 재탄생할 수 있다.

해중합은 색깔이 있는 페트병, 카페트, 커튼, 현수막 등에 활용한다. 플라스틱을 이루는 덩어리를 해체시켜 기초 원료로 되돌린다. PP추출은 폐플라스틱을 녹여 물질을 추출하는 기술로, 휴대폰 및 자동차 대시보드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열분해 추출은 말그대로 고열에 끓여 '원유'처럼 만드는 것이다. 비닐이나 더러운 플라스틱을 모두 재자원화할 수 있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원유와 희석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거친 후 휘발유·경유·등유와 같은 형태로 쓸 수도 있다.
 경기도 용인시 재활용센터에서 직원이 압축 플라스틱을 정리하고 있다.2018.4.2/뉴스1  경기도 용인시 재활용센터에서 직원이 압축 플라스틱을 정리하고 있다.2018.4.2/뉴스1
◇2024~2025년 '화학적 재활용' 본격화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에는 에너지가 들어가고, 탄소가 발생한다. 특히 화학적 재활용 과정이 그렇다. 열분해 추출만 봐도 300~800도 고온이 필요하다. 순환 과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와 발생하는 탄소의 양을 줄여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모두 갖춰나가는 게 기술적 목표다.

전세계적으로는 화학적 재활용의 비중을 높이는 게 중요해지고 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불투명 플라스틱의 재활용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어서다. 국내 기업들도 2024~2025년쯤부터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이 가능한 공장을 완공하고 사업에 뛰어들 태세다.

SK지오센트릭은 오는 2025년까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 단지인 울산 ARC(Advacned Recycle Cluster)를 조성한다. 연간 약 25만톤(t)에 달하는 폐플라스틱 처리를 할 수 있다. 롯데케미칼은 울산2공장에 2024년까지 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 설비를 11만톤 규모로 구축한다.
SK지오센트릭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 공장 울산 부지 현장SK지오센트릭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 공장 울산 부지 현장
LG화학은 올 1분기 내에 충남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에 플라스틱 순환경제 구축을 위한 열분해유 공장 착공에 들어간다. 2024년 내 상업생산이 목표다. GS칼텍스는 실증사업 결과에 따라 2024년 가동 목표로 연간 5만톤 규모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생산설비 신설투자를 모색할 예정이다.

◇90% 재활용 가능하지만..생태계 구축해야

기술은 '손실없는 재활용'에 근접했다는 평가다.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물리적은 90% 이상, 화학적을 통해서도 80~90% 수준의 재자원화가 가능하며 탄소배출도 플라스틱을 소각하는 것 대비 70~80%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관건은 이 '기술'의 '현실' 적용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에 연 960만톤의 폐플라스틱이 배출됐는데, 그 중 재활용 비중은 230만톤(24%)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재활용의 기회도 받지 못한 채 소각·매립된다. 수작업을 통한 수거·선별이라는 어려움 때문에 절대다수의 플라스틱이 태워지고 버려진다.

업계 관계자는 "플라스틱 순환경제 '생태계'를 구성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폐플라스틱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로봇을 투입하고 참단장비로 기계화를 이뤄 선별율을 거의 90%까지 끌어올린 해외 사례도 많은데 이는 순환경제 생태계 구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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