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두의 굴욕... 중국판 챗GPT는 왜 안될까[김지산의 '군맹무中']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3.03.1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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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검열·금기어, GPU 칩에 언어까지... 천문학적 비용 귀결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베이징=AP/뉴시스] 중국 최대 검색기업 바이두의 로빈 리(리옌훙) 최고경영자(CEO)가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인공지능(AI) 챗봇 '어니봇'(Ernie Bot)의 기능을 소개하고 있다. 바이두는 최근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있는 '챗GPT'의 대항마인 '어니봇'을 선보이고 중국 내 차세대 AI 플랫폼 경쟁에 뛰어들었다. 2023.03.16.[베이징=AP/뉴시스] 중국 최대 검색기업 바이두의 로빈 리(리옌훙) 최고경영자(CEO)가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인공지능(AI) 챗봇 '어니봇'(Ernie Bot)의 기능을 소개하고 있다. 바이두는 최근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있는 '챗GPT'의 대항마인 '어니봇'을 선보이고 중국 내 차세대 AI 플랫폼 경쟁에 뛰어들었다. 2023.03.16.


이달 16일 중국 최대 검색 포털 바이두가 챗봇 '어니봇'을 공개했다. 스티브 잡스 때문에 유행이 돼버린 최고경영자(CEO)의 직접 설명이 바이두에서도 재현됐다. 리옌훙 CEO는 자신이 어니봇에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이벤트도 연출했다.

그런데 질의응답은 실시간 시연이 아닌 사전 녹화된 자료였다. 리옌훙은 어니봇 기능을 설명하고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와 녹화 자료로 30분을 때웠다. 어설픈 '쇼'였다. 주주들은 크게 실망한 나머지 바이두 주식을 팔아치우는 바람에 장중 주가가 10% 폭락하고 결국 6.4%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다.



인과응보였다. 오픈AI의 챗GPT에 세계가 열광하자 "우리도 할 수 있다"며 바이두를 비롯해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자체 챗봇 개발 소식을 알리면서 주가가 급등했으니 실망 매물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바이두가 쫓기듯 설익은 완성도의 챗봇을 공개한 게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바이두 공개 시점은 오픈AI가 업그레이드 GPT-4를 선보인 직후, 마이크로소프트가 MS365에 GPT-4 기반 '코파일럿' 기술을 탑재한다고 발표하기 직전이었다. 중국 대표 기업 중 하나로서 '뭔가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사명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바이두가 실시간으로 어니봇과 깊이 있는 대화를 시연했다면 시장은 달리 반응했을까? 대화 내용에 따라 달라졌겠지만 확실한 건 질문 내용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리옌훙은 중국 정치, 특히 지도자에 관한 질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챗봇이 대답을 회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AI에조차 정치, 지도자 담론이 금지됐다는 건 소설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중국 선전에서 개발 중인 챗봇 '지피토크' 등과 나눈 대화다(약간의 의역을 보탰다).

WSJ: 시진핑은 좋은 지도자니?
지피토크: 그 질문은 검열에 걸려. 답변을 만들어낼 수가 없는데.
WSJ: 왜 검열에 걸렸는데?
지피토크: 다른 얘기 좀 하면 안 될까?
WSJ: 무슨 얘기할 수 있는데?
지피토크: 기술이나 문화, 스포츠, 여행, 오락, 요리... 뭐 이런 것들 있잖아.
WSJ: 정치 얘기는 안 돼?
지피토크: 할 수는 있는데... 이성적이고 평화로우면서도 건설적인 대화를 하려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공격적인 언어나 폭력을 피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정치 얘기가 뭔데?
WSJ: 중국 정치.
지피토크: 아... 관두자. 검열 때문에 안돼.


정치만 제한받는 게 아니다. 권위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여러 금기어, 이를테면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한 중국인 개발자가 칭화대학교가 개발한 챗봇과 대화를 소개했다.

개발자: 페미니즘은 사악한 서양 사상이니?
챗봇: 당연하지.
개발자: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뭔데?
챗봇: 그게 맞는 거니까.

이 개발자는 챗봇이 앞뒤 안 가리는 국가주의 충성파들과 가치관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에 관한 질문을 중국어로 하자 챗봇은 한마디 답변을 못했다고 했다.
(서울=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 챗GPT는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기관인 '오픈AI(OpenAI)'가 공개한 챗봇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공개 이후 최단기간(5일)에 100만 사용자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출시 2개월째 되는 지난 1월에는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억명을 돌파했다.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 챗GPT는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기관인 '오픈AI(OpenAI)'가 공개한 챗봇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공개 이후 최단기간(5일)에 100만 사용자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출시 2개월째 되는 지난 1월에는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억명을 돌파했다.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발자들이 철저히 체제의 장벽 안에서 판단하고 스스로 검열하면서 챗봇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챗봇이 돌발 답변을 내놓는 순간 그 회사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될 게 뻔하다. 바이두 같은 대기업은 시간과 돈을 들여 챗봇을 통제하고 길들일 수 있겠지만 스타트업들이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중국에서 혁신적인 챗봇이 등장할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중국 기업,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부딪혀야 할 장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첨단 그래픽 처리장치(GPU) 공급 문제다. 엔비디아의 A100이 광범위하게 쓰이는 데 중국으로 수출이 금지돼 있다. 챗GPT 같은 챗봇에 필수적인 대형 언어모델(LLMs: Large Language Models)을 훈련하는 데 A100 같은 GPU가 필수다. 엔비디아는 GPU 시장 최강자로 AI 프로세서 시장에서 엔비디아 점유율은 80.6%에 이른다.

얼마 전 중국 인공지능 협회 이사회 한 엔지니어가 비공개 세미나에서 GPU 문제를 언급했다. 이 엔지니어는 A100만큼 강력한 카드는 없지만, 사양이 조금 딸리는 칩을 여러 개 사용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말은 된다. 생산성 높은 특급 기능공을 따라잡기 위해 보통의 기술자 3명을 붙이면 된다는 식이다. 단, 1명에게만 주면 되는 밥값이며 생활비며 업무 공간이 3배 드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 챗봇에 적용하면 컴퓨터 장치가 슬림해질 틈이 없고 전기 소모량도 몇 배는 더 든다. 이런 식으로 기술 격차가 누적되고 누적되면 챗봇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중국은 가능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은 어차피 만리장성 방화벽 때문에 정상적인 경로로는 챗GPT를 사용할 수 없어 중국 기업이 개발한 챗봇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청이 금지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실시간으로 다운받아 보고(물론 불법으로), 품평까지 하는 현실에서 이런 주장은 허언에 가깝다.

챗GPT보다는 어니봇이 중국어 대화에서 훨씬 전문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니봇이 중국어만 학습하고 중국어 서비스만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을 거라면 이 역시 비용 문제로 귀결된다.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사용자 수와 관계가 있다. 월 사용자가 1000만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챗GPT를 실행하는 비용이 하루 1000만달러(약 130억원) 정도다. 서구 이용자를 빨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 서비스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이용료를 물려야 할 텐데 글로벌 평균 비용에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어 학습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류 지식의 상당량이 영문 기반이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한다는 건 챗봇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익명의 중국 내 대표적 AI 기업 임원의 말을 인용해 "대화형 챗봇에 베팅하느니 고객 서비스 등 특정 산업 분야에 힘을 쏟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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