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만에 부는 변화의 모래바람[PADO]

머니투데이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2023.03.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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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우디아라비아, UAE를 위시한 걸프만 국가들은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 판매수입으로 국민들에게 편안한 공공일자리와 무상복지를 제공하면서 국가를 통치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도 이젠 '탈석유'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서서히 공공일자리와 무상복지를 줄이고 다른 나라들처럼 '시장'을 활성화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유화에 환호하고는 있지만 국가의 온정적 지원이 더이상 주어지지 않는 앞날에는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걸프만 국가들의 개혁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개혁이 성공하게 된다면 중동지역에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게 될 것이지만 실패할 경우 전세계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2월 11일자 이코노미스트는 걸프만 지역 특파원들이 공동취재한 장문의 기사를 통해 이 지역에 불고 있는 개혁의 바람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이를 요약 소개합니다. PADO는 3주간 걸프지역의 변화를 상세히 다뤘는데, 세계 정치경제 체제에서 에너지 공급을 주로 담당하는 이 지역의 변화 방향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도하(카타르)=뉴스1) 이광호 기자 =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과 개막전을 찾은 세계 각국의 축구팬들이 경기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여름이 아닌 겨울에 중동에서 펼쳐지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두 번쨰 원정 16강에 도전한다.2022.11.2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도하(카타르)=뉴스1) 이광호 기자 =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과 개막전을 찾은 세계 각국의 축구팬들이 경기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여름이 아닌 겨울에 중동에서 펼쳐지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두 번쨰 원정 16강에 도전한다.2022.11.2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몇 년은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급변하는 시기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많은 사회적 제약을 떨쳐버리고 전 세계에 개방하고 있다. 걸프만 전역에 걸쳐 국민들을 편한 공공 일자리에서 벗어나 민간 부문으로 진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보조금 삭감, 새로운 세금, 동거 및 동성 결혼 허용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정책들이 별다른 소란 없이 시행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이 두 국가는 걸프협력회의 인구의 75% 이상과 2조 달러에 달하는 GDP 합계의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의 경험은 이 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두 나라 통치자들은 지금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경제를 다각화하고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진지한(아직까지는 확정된 것이 아니지만)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외교와 비즈니스에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국민의 행복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는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이 목표들은 상충하기도 한다. 다각화는 국민들을 민간 부문으로 밀어 넣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부 국민들은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이는 또한 국가가 보살펴주는 온정적 사회계약에 구멍을 내는 복지 삭감을 의미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통치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애국주의와 내셔널리즘을 밀어붙인다. 이미 인구 절반가량이 이민자인 이 지역에 더욱 많은 외국인을 유입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그런 내셔널리즘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십 년 동안 엄격한 형태의 이슬람 율법으로 통치해 온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7년부터 왕세자이자 사실상의 통치자인 빈살만 왕세자가 그러한 통치를 완화했다. 2018년에는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다. 1980년대부터 금지됐던 영화관도 같은 해에 다시 문을 열었다. 이 왕국에서는 이제 콘서트와 야간 레이브파티가 열린다. 음주는 여전히 불법이지만 적어도 부유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일부 지역에서는 곧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몇 가지 목적에 도움이 된다. 변화 덕분에 많은 사우디인들이 빈살만 왕세자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한때 기도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화장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괴롭히던 무서운 종교경찰 '무타와'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또한 자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수십 년 동안 사우디 사람들은 머리를 자유롭게 풀어헤치고 놀기 위해 두바이와 같이 더 자유분방한 걸프만 도시나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했다. 이들과 그들의 돈을 국내에 잡아두는 것만으로도 사우디 경제에 도움이 된다.


사우디의 변화가 걸프 지역에서 오랫동안 인기 비즈니스 허브였던 아랍에미리트에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는 컨설턴트들이 주중에는 회의를 위해 리야드로 날아갔다가 즐거운 주말을 위해서 다시 두바이로 돌아온다. 경쟁력 상실을 우려한 아랍에미리트도 나름의 사회 변화를 서두른다.

지난 3년 동안 아랍에미리트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의해 오랫동안 지배돼 온 가족법을 정비했다. 수도인 아부다비는 2021년부터 비무슬림의 공공 결혼(정부 관리가 주관하는 결혼 --편집자 주) 절차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다른 6개 에미리트도 올해 2월에 뒤를 따랐다. 2020년부터는 이전에는 범죄였던(거의 처벌되지는 않았지만) 미혼 커플의 동거를 허용했다. 음주 관련 법이 느슨해지면서 무슬림이 술을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됐다.

(두바이 로이터=뉴스1) 김성식 기자 = 3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부르즈 할리파 앞 두바이몰 일대를 가득 메운 모습이다. 2022.12.3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두바이 로이터=뉴스1) 김성식 기자 = 3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부르즈 할리파 앞 두바이몰 일대를 가득 메운 모습이다. 2022.12.3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년에 아랍에미리트는 금토 주말제(무슬림들의 금요일 기도 참석을 돕기 위한 제도)를 포기하고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같은 토일 주말제로 달력을 변경했다. 2018년부터 6개 걸프협력회의 회원국 중 4개국이 부가가치세를 도입했고 아랍에미리트는 6월부터 9%의 법인세를 징수할 예정이다. 소득세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주제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걸프 지역의 사회계약은 자국민과 외국인에게 세금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다른 방식으로도 생활비는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2015년에 유류 보조금을 폐지했다. 휘발유는 글로벌 기준으로는 여전히 저렴하지만 사우디보다는 30%, 쿠웨이트보다는 거의 150% 더 비싸다. 대부분의 걸프만 국가들은 전력과 수도 요금을 인상했는데 예전엔 시장 가격보다 훨씬 낮았다. 33년 동안 전기 요금을 동결했던 오만은 자국민에 대한 할인요금을 없애고 이젠 외국인과 동일한 요금을 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큰 영향을 미쳤다. 2012년 사우디 예산은 비석유 수입원이 전체 수입의 8% 미만을 차지했다. 하지만 10년 후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그 수치는 최대 31%에 달했다. 국민들의 경우 세금 인상과 보조금 감소로 인해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아랍에미리트는 2014년에 남성의 의무병역제를 도입했다. 고교 졸업장을 가진 징집병은 11개월 동안 복무하고 그렇지 않은 징집병은 3년 동안 군대에서 복무한다. 이론상으로는 고교 중퇴자의 복무 기간이 긴 것은 민간 일자리에 대비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의무 복무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바로 내셔널리즘을 키우는 것이다. 2015년부터 사우디 주도 연합군이 시아파 후티 반군과 싸우고 있는 예멘의 전쟁도 마찬가지로 애국심을 요구한다. 아랍에미리트는 가장 힘든 싸움을 치렀다. 2016년 아랍에미리트는 전몰자를 기리는 기념비인 와하트 알 카라마('존엄의 오아시스')를 공개했다. 한 아랍에미리트인은 "이 기념비에는 '당신도 이렇게 희생할 준비를 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걸프만 전역에서 비슷한 변화가 일어난다. 수십 년 동안 사우디의 정체성은 이슬람의 발상지이자 가장 성스러운 유적지가 있는 곳이라는 종교적 역할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빈살만 왕세자는 이를 바꾸고자 한다. 9월의 사우디 국경일은 이제 애국적인 축제의 시간이 됐다.

내셔널리즘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통치자에 대한 지지를 강화한다. 하지만 어두운 측면도 있다. 국민들은 SNS에서 비판적인 댓글을 발견하면 서로 신고한다. 반역죄로 고발하는 일도 흔하다. 정부 관계자들도 긴장한다. 또, 이런 종류의 과잉 내셔널리즘은 통치에도 좋지 않다. 역설적으로 국가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국민들이 정치적 이슈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수록 정치에 더 많이 관여하고 싶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 1000만 명 중 100만 명만이 국민인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군 복무에 대해 고민하는 한 청년은 인구의 10%가 언제까지 나머지 90%를 보호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또 다른 젊은이는 정부의 최근 개혁 중 일부가 외국인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분노보다는 불신에 찬 목소리로 지적한다. 공공 결혼은 외국인에게만 열려 있다. 새롭게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들은 두 번째 여권을 소지할 수 있지만 원래의 국민은 그렇게 이중국적을 가질 수가 없다. 귀화한 국민도 군 복무를 해야 하는지, 아랍어를 배워야 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아랍에미리트와 달리 사우디에서는 지난 7년 동안 바리스타, 판매원, 호텔 접객원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우디 국민의 수가 증가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공공부문 채용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텔이나 쇼핑몰에서 일하는 것은 국민의 공적 생활이 확대되는 시기에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일자리의 보수가 높지 않기 때문에 고용 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걸프협력회의 국가 밖에서는 이들 나라 국민들이 모두 고급 승용차를 몰고 유럽에서 여름을 보내는 졸부들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이 많다. 걸프 지역 통치자들이 야심 찬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그 결과 '밀물이 모든 배를 들어 올린다'고 해도 많은 걸프 지역 사람들은 향후 오랫동안 불안에 떨며 지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국제시사·문예 버티컬 PADO의 '걸프 산유국들의 '위험한 개혁''을 요약한 것입니다.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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