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산유국들의 '위험한 개혁'[PADO]

머니투데이 이코노미스트 2023.03.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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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우디아라비아, UAE를 위시한 걸프만 국가들은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 판매수입으로 국민들에게 편안한 공공일자리와 무상복지를 제공하면서 국가를 통치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도 이젠 '탈석유'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서서히 공공일자리와 무상복지를 줄이고 다른 나라들처럼 '시장'을 활성화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유화에 환호하고는 있지만 국가의 온정적 지원이 더이상 주어지지 않는 앞날에는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걸프만 국가들의 개혁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개혁이 성공하게 된다면 중동지역에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게 될 것이지만 실패할 경우 전세계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2월 11일자 이코노미스트는 걸프만 지역 특파원들이 공동취재한 장문의 기사를 통해 이 지역에 불고 있는 개혁의 바람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이를 전문 번역으로 소개합니다. PADO는 3주간 걸프지역의 변화를 상세히 다뤘는데, 세계 정치경제 체제에서 에너지 공급을 주로 담당하는 이 지역의 변화방향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도하(카타르)=뉴스1) 이광호 기자 =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과 개막전을 찾은 세계 각국의 축구팬들이 경기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여름이 아닌 겨울에 중동에서 펼쳐지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두 번쨰 원정 16강에 도전한다.2022.11.2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도하(카타르)=뉴스1) 이광호 기자 =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과 개막전을 찾은 세계 각국의 축구팬들이 경기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여름이 아닌 겨울에 중동에서 펼쳐지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두 번쨰 원정 16강에 도전한다.2022.11.2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리야드에서는 라틴어가 드물지만 한 사우디 작가가 자국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panem et circenses(빵과 서커스)'라는 라틴어 문구였다. 작가는 무함마드 빈살만이 고대 아이디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했다고 설명했다. 왕세자는 사우디 사회계약 중 하나인 국가가 나눠주고 있던 빵을 빼앗고 있다. 그러는 한편 그는 서커스를 국민의 의무로 삼았다.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나가서 즐기라는 것이다.

효과는 있는 것 같다. 왕세자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그러나 그 작가는 하나의 모순을 느꼈다. 사우디는 더 이상 국민에게 혜택을 아낌없이 나눠줄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수상한 새 골프투어부터 포르투갈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의 거액 계약에 이르기까지 수십억 달러를 다른 곳에 쏟아붓는다. 그런데 사우디인들이 언제까지 서커스만으로 살 수 있을까??



걸프 산유국들의 '위험한 개혁'[PADO]
석유 왕국들의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의 6개 회원국은 수십 년 동안 비슷한 사회계약을 유지했다. 석유와 가스 수입으로 국고를 가득 채웠고 국민들은 보조금, 수당, 안락한 공공 부문 일자리의 형태로 혜택을 누렸다. 외국인들은 필요가 있는 동안만 와서 일했다. 두 집단(국민과 외국인)은 대부분 서로 무관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지난 몇 년은 걸프협력회의 국가들이 급변하는 시기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많은 사회적 제약을 떨쳐버리고 전 세계에 개방하고 있다. 걸프만 전역에 걸쳐 국민들을 편한 공공 일자리에서 벗어나 민간 부문으로 진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보조금 삭감, 새로운 세금, 동거 및 동성 결혼 허용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정책들이 별다른 소란 없이 시행된다.



물론 걸프협력회의 국가들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쿠웨이트는 한 세대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워한다). 천연가스가 풍부하고 인구가 적은 카타르는 공공요금 인하를 서두르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이 두 국가는 걸프협력회의 인구의 75% 이상과 2조 달러에 달하는 GDP 합계의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의 경험은 이 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두 나라 통치자들은 지금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경제를 다각화하고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진지한(아직까지는 확정된 것이 아니지만)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외교와 비즈니스에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국민의 행복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는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이 목표들은 상충하기도 한다. 다각화는 국민들을 민간 부문으로 밀어 넣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부 국민들은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이는 또한 국가가 보살펴주는 온정적 사회계약에 구멍을 내는 복지 삭감을 의미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통치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애국주의와 내셔널리즘을 밀어붙인다. 이미 인구 절반가량이 이민자인 이 지역에 더욱 많은 외국인을 유입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그런 내셔널리즘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도표 1 참조).


주요 걸프 지역 국가의 이민자 수 및 전체 인구 대비 비중주요 걸프 지역 국가의 이민자 수 및 전체 인구 대비 비중
지금은 걸프 지역에 있어서 희망적이지만 혼란스럽기도 한 시기다. 경제와 사회는 개방되고 있지만 정치는 닫히고 있다. 한 왕족은 "토론이 없는 것은 국가에 건강하지 않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일부 걸프만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다양성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서두르는 와중에 자신들만 뒤처질까 봐 초조해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십 년 동안 엄격한 형태의 이슬람 율법으로 통치해 온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7년부터 왕세자이자 사실상의 통치자인 빈살만 왕세자가 그러한 통치를 완화했다. 2018년에는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다. 1980년대부터 금지됐던 영화관도 같은 해에 다시 문을 열었다. 이 왕국에서는 이제 콘서트와 야간 레이브파티가 열린다. 음주는 여전히 불법이지만 적어도 부유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일부 지역에서는 곧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몇 가지 목적에 도움이 된다. 변화 덕분에 많은 사우디인들이 빈살만 왕세자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한때 기도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화장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괴롭히던 무서운 종교경찰 '무타와'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또한 자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수십 년 동안 사우디 사람들은 머리를 자유롭게 풀어헤치고 놀기 위해 두바이와 같이 더 자유분방한 걸프만 도시나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했다. 이들과 그들의 돈을 국내에 잡아두는 것만으로도 사우디 경제에 도움이 된다.

오래된 지역, 새로운 세상
이러한 사회혁신은 또한 사우디를 외국인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빈살만 왕세자는 다국적기업들에게 2024년까지 지역 사무소를 사우디로 이전하지 않으면 정부 계약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CEO들은 여전히 비즈니스 환경부터 국제 학교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걱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이전이 더 쉬워졌다.

사우디의 변화가 걸프 지역에서 오랫동안 인기 비즈니스 허브였던 아랍에미리트에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는 컨설턴트들이 주중에는 회의를 위해 리야드로 날아갔다가 즐거운 주말을 위해서 다시 두바이로 돌아온다. 경쟁력 상실을 우려한 아랍에미리트도 나름의 사회 변화를 서두른다.

지난 3년 동안 아랍에미리트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의해 오랫동안 지배돼 온 가족법을 정비했다. 수도인 아부다비는 2021년부터 비무슬림의 공공 결혼(정부 관리가 주관하는 결혼 --편집자 주) 절차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다른 6개 에미리트도 올해 2월에 뒤를 따랐다. 2020년부터는 이전에는 범죄였던(거의 처벌되지는 않았지만) 미혼 커플의 동거를 허용했다. 음주 관련 법이 느슨해지면서 무슬림이 술을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됐다.

작년에 아랍에미리트는 금토 주말제(무슬림들의 금요일 기도 참석을 돕기 위한 제도)를 포기하고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같은 토일 주말제로 달력을 변경했다. 2018년부터 6개 걸프협력회의 회원국 중 4개국이 부가가치세를 도입했고 아랍에미리트는 6월부터 9%의 법인세를 징수할 예정이다. 소득세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주제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걸프 지역의 사회계약은 자국민과 외국인에게 세금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다른 방식으로도 생활비는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2015년에 유류 보조금을 폐지했다. 휘발유는 글로벌 기준으로는 여전히 저렴하지만 사우디보다는 30%, 쿠웨이트보다는 거의 150% 더 비싸다. 대부분의 걸프만 국가들은 전력과 수도 요금을 인상했는데 예전엔 시장 가격보다 훨씬 낮았다. 33년 동안 전기 요금을 동결했던 오만은 자국민에 대한 할인요금을 없애고 이젠 외국인과 동일한 요금을 받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수입에서 비석유 수입원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수입에서 비석유 수입원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큰 영향을 미쳤다. 2012년 사우디 예산은 비석유 수입원이 전체 수입의 8% 미만을 차지했다. 하지만 10년 후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그 수치는 최대 31%에 달했다(도표 2 참조). 국민들의 경우 세금 인상과 보조금 감소로 인해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외국인들 역시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걸프만 지역으로 몰려든다. 부유한 러시아인부터 암호화폐 사업가까지 두바이에 업체를 설립하기 위해 서두르면서 아랍에미리트는 호황을 누린다. 낮은 인플레이션과 안정적인 통화, 풍부한 일조량 덕분이다. 2019년 도입된 '골든 비자' 제도는 숙련된 전문가와 부유한 투자자에게 현지 스폰서 없이도 장기 체류권을 부여한다. 2021년에는 특별 외국인들에게 시민권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정치학자 압둘칼레크 압둘라는 이를 '걸프 지역의 기회'라고 부른다. 다른 아랍 세계는 끝없는 쇠퇴를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걸프협력회의 국가들은 번영을 구가하고 잘 통치되고 있다. 국민들이 지엽적인 문제에 대해선 불평할 수 있지만 정치적 변화에 대한 요구는 거의 없다. "여기는 국민의 신뢰가 충만한 상태"라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신뢰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쌓아온 탄탄한 통치의 성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꼭 민주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성과를 냅니다."

걸프만 국가들이 경제와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는 지금, 문제는 이러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냐는 것이다. 서구인들이 주로 제기하는 한 가지 우려는 개방이 보수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이다. 자국 정부를 돕기 위해 걸프 국가 외교관들이 이러한 우려를 부추긴다. 빈살만 왕세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종교적 보수주의라는 유령을 계속 상기시키며 그의 탄압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우려는 과장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걸프만의 젊은 사람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개방적이다. 한때 조직화된 세력이었던 이슬람주의자들은 오늘날 걸프 지역에서 영향력이 약해졌다. 젊은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걱정하는지 보려면 패스트푸드를 살펴보라.

작년 서브웨이는 샌드위치 만드는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주 5일 근무, 종합 건강 보험, 교육 및 승진 기회 등을 약속했다. 다른 나라였다면 이 광고는 전혀 문제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아랍에미리트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 이 채용광고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는데 아랍에미리트 전통 의상을 입은 젊은 남녀의 사진을 게재하고 아랍에미리트인 고용을 늘리려는 '국가의 노력에 대한 지원'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SNS 사용자들은 이를 '모욕적'이라고 불렀다. 서브웨이는 광고를 내렸다. 검찰총장은 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광고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실업률에 대한 신뢰할 만한 수치를 발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추정에 따르면 약 11%의 젊은이들이 실업자라고 한다. 사우디에서는 15~24세 국민의 17%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바레인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 10년 동안 거의 두 배로 증가해 2021년 10%을 기록했다. 이러한 증가의 일부는 팬데믹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걸프협력회의 국가들만의 문제를 반영한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그들을 고용하기를 원하지 않는 공공 부문과 고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민간 부문 사이에 갇혀 있다.

돈이 없다
다른 걸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랍에미리트도 기업들이 자국민을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압박한다. 각 기업은 현지 일자리의 2%를 아랍에미리트 국민으로 채워야 한다(이 비율은 2026년 말 10%에 도달할 때까지 매년 증가한다). 1월 1일부터 이 비율에 미달하는 기업은 고용을 못 채운 아랍에미리트인 1명당 매월 6000디르함(약 213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시민권자를 고용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면 서브웨이가 할당량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이 모두 그런 일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슈퍼마켓 체인인 코업(Coop)에는 현지인들이 카운터에서 일한다. 하지만 서브웨이 광고는 아픈 곳을 건드렸다. 압둘라 박사는 "마치 '어이, 너희들은 민간 부문을 쫓는 개처럼 배고파 보여'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게 우리에겐 마땅한 일인가요? 이 풍요로운 땅에서요? 전 세계에서 9백만 명이나 건너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SNS에서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은 외국인이 좋은 일자리를 모두 가져간다고 불평한다. 외국인들은 현지인들이 건방지고 게으르다고 비난한다. 과거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러한 논쟁은 드물었을 것이다. 두 집단은 서로 접촉하거나 반응할 이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은 상호 경쟁에 내몰리고 있으며 일부 현지인들은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과학, 수학, 읽기 시험에서 아랍에미리트의 15세 어린이들은 대부분 부유한 국가들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2018년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최근 시험에서 아랍에미리트는 77개국 중 47위를 차지했다. 이웃 국가들의 성적도 그다지 좋진 않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는 각각 59위와 70위를 차지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자국 학생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외국인 학생들이 없었다면 더욱 낮은 순위를 기록했을 것이다. 특히 남학생의 성적이 더 나빴는데 여학생과 비교했을 때 읽기 점수의 남녀 격차는 57점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연구자들은 걸프 지역의 교육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주로 해외에서 온 교사들의 자질이 들쑥날쑥하다. 학교는 비판적 사고보다 암기 위주의 교육을 강조한다. 많은 아이들이 아랍어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보모에게 길러지고 있다. 또한 능력에 관계없이 공공부문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기대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동기가 거의 없다.

(두바이 로이터=뉴스1) 김성식 기자 = 3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부르즈 할리파 앞 두바이몰 일대를 가득 메운 모습이다. 2022.12.3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두바이 로이터=뉴스1) 김성식 기자 = 3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부르즈 할리파 앞 두바이몰 일대를 가득 메운 모습이다. 2022.12.3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랍에미리트는 2014년에 남성의 의무병역제를 도입했다. 고교 졸업장을 가진 징집병은 11개월 동안 복무하고 그렇지 않은 징집병은 3년 동안 군대에서 복무한다. 이론상으로는 고교 중퇴자의 복무 기간이 긴 것은 민간 일자리에 대비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군대를 전역한 많은 사람들이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의무 복무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바로 내셔널리즘을 키우는 것이다. 2015년부터 사우디 주도 연합군이 시아파 후티 반군과 싸우고 있는 예멘의 전쟁도 마찬가지로 애국심을 요구한다. 아랍에미리트는 가장 힘든 싸움을 치렀다. 2016년 아랍에미리트는 전몰자를 기리는 기념비인 와하트 알 카라마('존엄의 오아시스')를 공개했다. 한 아랍에미리트인은 "이 기념비에는 '당신도 이렇게 희생할 준비를 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걸프만 전역에서 비슷한 변화가 일어난다. 수십 년 동안 사우디의 정체성은 이슬람의 발상지이자 가장 성스러운 유적지가 있는 곳이라는 종교적 역할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빈살만 왕세자는 이를 바꾸고자 한다. 9월의 사우디 국경일은 이제 애국적인 축제의 시간이 됐다.

그의 정부는 장엄한 나바테안 유적이 있는 알울라 오아시스를 개발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다. 보수적인 성직자들은 아라비아반도의 이슬람 이전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인 자힐리야('무지') 시대의 기념비라며 이를 반대했다. 이제 사우디는 호텔을 짓고 축제를 개최하며 현지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이곳을 방문하도록 독려한다. 이슬람 이전의 이교도 역사는 이제 기피 대상이 아니라 기념의 대상이 됐다.

내셔널리즘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통치자에 대한 지지를 강화한다. 하지만 어두운 측면도 있다. 국민들은 SNS에서 비판적인 댓글을 발견하면 서로 신고한다. 반역죄로 고발하는 일도 흔하다. 정부 관계자들도 긴장한다.

이런 종류의 과잉 내셔널리즘은 통치에 좋지 않다. 역설적으로 국가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국민들이 정치적 이슈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수록 정치에 더 많이 관여하고 싶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 1000만 명 중 100만 명만이 국민인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군 복무에 대해 고민하는 한 청년은 인구의 10%가 언제까지 나머지 90%를 보호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또 다른 젊은이는 정부의 최근 개혁 중 일부가 외국인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분노보다는 불신에 찬 목소리로 지적한다. 공공 결혼은 외국인에게만 열려 있다. 새롭게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들은 두 번째 여권을 소지할 수 있지만 원래의 국민은 그렇게 이중국적을 가질 수가 없다. 귀화한 국민도 군 복무를 해야 하는지, 아랍어를 배워야 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아랍에미리트 관리들은 오랫동안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는 GDP 5000억 달러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면서 인구 불균형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 정부는 이 난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결론이 뭔지 아십니까? '우리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입니다"라고 한 참가자가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공식 통계를 100% 믿긴 어렵지만 아랍에미리트의 출생률은 아마도 3.5명 정도일 것이다. 이는 부유한 국가로서는 높은 수치이며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국가의 계획에 보조를 맞출 만큼 빠르게 증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1월에 두바이는 향후 10년 동안 경제규모를 두 배 늘리겠다고 밝혔다. 신생아를 일할 수 있게 만들더라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아랍에미리트 인구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
아랍에미리트와 달리 사우디에서는 지난 7년 동안 바리스타, 판매원, 호텔 접객원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우디 국민의 수가 증가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공공부문 채용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텔이나 쇼핑몰에서 일하는 것은 국민의 공적 생활이 확대되는 시기에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일자리의 보수가 높지 않기 때문에 고용 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사우디에는 최저임금이 없지만 민간기업은 사우디 국민 채용 할당량에 포함시키기 위해 사우디 국민에게 매월 최소 4000리알(약 14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취업 허가 수수료가 높아지면서 임금 격차가 좁혀지고 있지만 이주 노동자들의 임금은 여전히 낮다(80% 이상이 4000리알 미만을 번다). 정부가 사우디인의 쿼터나 급여를 올리고자 한다면 민간부문이 위축될 것이다.

하지만 리야드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떨어진 곳에서는 빈살만 왕세자의 개혁은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매년 수천 명의 사우디 사람들이 왕국의 연례 낙타 축제를 위해 드넓은 고원지대 사막에 모여든다. 방문객들은 낙타 굴레와 안장부터 꿀과 대추야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다. 은행 직원과 변호사가 바쁘게 일을 하는데, 낙타 거래에도 대출과 계약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심에는 낙타 경주와 잘 생긴 낙타 선발대회가 열리는, 흙 트랙이 있는 원형 극장이 있다. 바람이 부는 12월의 어느 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젊은 사우디 남성들이었다. 관광객도 여성도 없었다(여자 화장실이 없는 것을 보면 여성의 참석은 애당초 배제했던 것이다). 티켓은 무료였다.

백수인 20대 마흐무드는 오후의 잘 생긴 낙타 선발 대회에서 고향의 우승 후보가 우승하자 쓰고 있던 사우디식 두건을 허공에 던지며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는 출구로 향했다. 그는 다른 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농업부에서 일했지만 요즘은 그런 종류의 공무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농촌 지역에서는 고교 중퇴자를 위한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휩쓸고 있는 문화적 변화에 대해 묻자 그는 리야드의 콘서트와 놀이공원은 너무 비싸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걸프협력회의 국가 밖에서는 이들 나라 국민들이 모두 고급 승용차를 몰고 유럽에서 여름을 보내는 졸부들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흐무드 같은 사람들이 많다. 걸프 지역 통치자들이 야심 찬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그 결과 '밀물이 모든 배를 들어 올린다'고 해도 많은 걸프 지역 사람들은 향후 오랫동안 불안에 떨며 지내야 할 것이다.


- 원문: After decades of empty talk, reforms in Gulf states are real--but risky (The Economist)
- 번역: 김동규, 편집: 김상희


국제시사·문예 버티컬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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