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입구에 걸린 현수막의 모습. 14일 오전 이 아파트에서는 경비원 박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 경비원들은 부당한 처우를 설명하는 현수막과 전단을 부착했다./사진=유예림 기자
1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A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 박모씨가 관리소장 B씨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동료 경비원인 C씨는 "B소장이 다른 경비원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경비반장인 박씨에게 물었다"고 주장했다.
반장과 일반 경비원의 월급은 30만∼40만원 차이가 난다. 박씨는 일반 경비원으로 발령된 지 3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3월 1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박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 경비원들은 부당한 처우를 설명하는 현수막과 전단을 부착했다./사진=유예림 기자
다른 동료 경비원도 "60대인 B 소장이 70대인 박씨를 향해 윽박 지르고 면박을 줬다"며 "아무 일도 없는데 박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겠느냐"고 말했다. "B 소장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경비원은 한둘이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장소에서는 "B 소장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호소문이 발견됐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A아파트 경비원들 일부는 전날 B 소장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과 전단을 단지 내에 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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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B 소장은 "직원들이 말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대부분 부인했다. 그는 "나에게 인사권이 없다"며 "경비원을 함부로 자르거나 경비원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비원들에게 경비복과 모자를 제대로 착용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지만 '갑질'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B 소장은 박씨의 호소문에 대해서도 "경비대장이 대필해준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일목요연하게 그 나이에 끝까지 틀린 글자 하나 없이 쓸 수 없다"며 "경비대장이 (나에게) 앙심을 품고 일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B 소장은 또 "육체적·정신적 책임자라 해놓고 (박씨 자신에 대한 내용은) 한 마디가 없고 다른 사람 얘기만 있다"며 "그 고통이 뭔지 자세하게 써줘야지, 왜 쓸 데 없는 말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박씨가 숨진 원인 등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호소문에 대한 필적 감정을 포함해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면밀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A아파트 주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50대 여성 김모씨는 "바쁘다는 이유로 아파트에서 경비원 분들이 고생했다는 것을 알지 못해 죄송하다"며 "아파트 앞에 국화꽃 놓고 추모하는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