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붕괴 막전막후…美정부는 어떻게 실리콘밸리를 구했나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23.03.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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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사태 전후 상황 보도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전국 카운티 입법 컨퍼런스서 인프라 법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전국 카운티 입법 컨퍼런스서 인프라 법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40년 역사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자금 위기설이 불거진 지 36일 만에 파산했다. 지난 8일 그렉 베커 SVB 최고경영자(CEO)가 투자증권 손실과 신주발행에 따른 자금조달 계획을 발표한 게 예금자들의 '뱅크런'을 가속화 한 신호탄이 됐다. 이틀 뒤인 10일,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SVB 폐쇄를 선언했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워싱턴은 어떻게 실리콘밸리를 구했나'라는 제목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9일 저녁부터 12일 발표까지의 의사결정 과정 '72시간'에 대한 막전막후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주말 동안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백악관 참모진과 재무부 공무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그리고 여야 국회의원까지 SVB 파산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정부 개입 여지와 정책 강도를 끊임없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72시간의 재구성①: 9일 SVB 주가폭락과 뱅크런, 그리고 회의적인 정부 분위기
[필라델피아=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피니싱 트레이드 인스티튜드에서 연방 예산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6조9천억 달러(약 9천100조 원) 규모의 2024 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2023.03.10.[필라델피아=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피니싱 트레이드 인스티튜드에서 연방 예산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6조9천억 달러(약 9천100조 원) 규모의 2024 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2023.03.10.
SVB의 고객들이 줄줄이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이 가시화 한 건 9일이다. 전날 그렉 베커 CEO가 "현금 유동성을 위해 미 국채로 구성된 증권 210억달러(27조5000억원)를 매각하면서 18억달러(2조4000억원) 손실을 봤다"고 발표한 데 이어 "22억5000만달러(2조9400억원)의 신주발행을 추진한다"고 한 말이 도화선이 됐다.

실리콘밸리 중심으로 커 온 SVB은행 특성상 주요 고객층은 온라인메신저 슬랙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경고글을 퍼다 날랐다.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에 따르면 9일 오전 SVB 주식은 60% 폭락했고, 계좌에선 420억달러(55조원)가 빠져나갔다.



이날까지만 해도 미 금융당국 관료들은 SVB 사태가 전체 금융시스템에 위협으로 작용할지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다. SVB가 중앙은행의 긴급유동성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미 늦었다고 판단해서다. 또 이날 오후까지 SVB측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골드만삭스에도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9일 저녁 뉴욕에선 금융 관련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참석자인 윌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은 "SVB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얼마 없다"며 "은행을 팔 수밖에 없다는 게 명백해지고 있다. 아니라면 더 큰 개입이 있을 것"이라며 회생절차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72시간의 재구성②: 10일,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SVB파산선고. 금융당국 대책수립
[샌타클래라=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 앞에서 대기하다가 입장하게 된 여성이 셀카를 찍고 있다. 예금주들은 돈을 찾기 위해 은행 밖에서 줄을 서서 대기했으며 연방정부는 SVB 예금주들이 인출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SVB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03.14.[샌타클래라=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 앞에서 대기하다가 입장하게 된 여성이 셀카를 찍고 있다. 예금주들은 돈을 찾기 위해 은행 밖에서 줄을 서서 대기했으며 연방정부는 SVB 예금주들이 인출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SVB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03.14.
당초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감독부의장인 마이클 바 등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9일 밤부터 10일 아침까지 SVB 파산을 막을 해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하지만 금요일(10일)이 밝았을 때 연준 관료들은 "SVB 은행의 실패가 금융시스템에 광범위한 위협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0일 오전, 백악관 관계자에 따르면 보좌관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SVB를 집어삼킨 '충격'이 다른 금융기관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실리콘밸리로부터 쇄도하는 문자와 전화로 위험성을 직감한 또 다른 한 사람, 레이얼 브레이너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이날 오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SVB 사태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위기 확산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부와 FRB 위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다른 나라의 금융위기를 목격했던 경험이 있었다.

초기만 해도 정부관계자들은 "주고객층인 실리콘밸리의 현금 부자들이 SVB파산으로 인한 자기 손실을 정부가 막으라고 로비하는 걸로만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정부 개입에 대해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이날 오후, 뉴욕에서는 좀 더 심각한 논의가 오갔다. 재무부 아데예모 부장관과 JP모건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이 만나 SVB의 파산이 다른 은행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지, 금융시스템의 전반적인 위협으로 번질지 여부를 놓고 대화했다. 이 자리에서 다이먼 CEO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제롬파월제롬파월
장마감 전 FDIC가 직접 나서 SVB은행 폐쇄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연방정부 차원의 대책은 발표되지 않았다.

#72시간의 재구성③: '블랙먼데이'를 막기 위한 토요일과 일요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에서 열린 대 중국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 정상회의 중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에서 열린 대 중국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 정상회의 중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연방정부는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열리는 13일 이전 구제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백악관과 재무부 관료들도 처음에는 SVB 파산이 경제위기로 번질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다. SVB 은행이 빠르게 매각될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행 등 전국적으로 '뱅크런' 사태가 확산되는 걸 목격하곤 생각을 고쳐먹었다. 양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들도 우려를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SVB의 파산은 그저 실리콘밸리 부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전체 금융시스템을 위태롭게 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일 일요일까지 미 정부는 포괄적인 구제금융 방안을 공개하지 않았다. '구제금융'이라는 비판을 제기한 워싱턴 정가의 시선이 따가워서다. 이번 SVB 사태 후속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일종의 시험대로 여겨졌다. 몇몇 은행까지 무너지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일단 정부는 주말 내내 SVB의 신속 매각 가능성을 검토했다. 인수할 수 있는 기업 리스트를 은행 규모와 중요도 순으로 정리했다. 실제로 대형 지역은행인 PNC는 인수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SVB의 장부를 열어본 뒤 물러났다. 관계자에 따르면 SVB가 가진 리스크나 우발부채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충분한 약속을 받지 않아 인수를 포기했다고 한다.

11일 오후, 바이든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과 통화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실리콘밸리의 큰 기업들이 급여나 운영비에 쓸 현금이 없을 상황에 대비해 정부 지원책을 마련중이었다.

비슷한 시각, 옐런 장관은 파월 연준의장, 마틴 그루엔버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 등 고위관리들을 소집했다. 주요 관계자와 임직원들은 줌 영상회의로 소환됐다.

이날 저녁이 되어서야 백악관, 재무부, 연준은 2가지 굵직한 합의를 도출했다. 정부는 SVB 고객의 모든 예금 전액을 보장한다는 것, 그리고 연쇄적인 은행 파산을 막기 위해 다른 금융기관에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내용이다. 발표 시점은 일요일 오후로 잡았다. 행정부 관료들은 "SVB 예금 보호에 세금을 쓰지는 않겠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옐런 장관옐런 장관
12일 오전, 금융 당국은 은행 지원방안 초안을 마무리 짓고 의회에 보고했다. 옐런 장관과 대통령이 협의해 SVB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도록 '시스템 리스크 예외조항'을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연방준비제도와 FDIC는 만장일치로 그 결정을 승인하기로 투표했다.

옐런 재무장관은 이날 파월 연준 의장 등이 포함된 금융안정 감독위원회(FSOC)를 소집했다.

회의 결과는 오후 6시께 공개됐다. SVB에 이어 시그니처은행이 폐쇄됐다는 소식이 외부에 알려진 직후였다. 아시아 증시 개장 전 은행의 잇따른 파산으로 불안감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미 연방정부는 파산한 두 은행 고객에 대해 법적 보호 한도인 1인당 25만달러를 넘어선 예금을 모두 보증해주기로 했다. 두 은행의 주 고객인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13일부터 예금을 바로 인출할 수 있게 허용했다. 그 재원은 은행들이 낸 예금보험기금에서 충당하기로 했다.

은행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연준은 미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담보로 제공하는 금융회사에 최대 1년 만기 대출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오전 짧은 연설을 통해 "우리 규제 당국이 취한 조치로 모든 미국인은 필요할 때 예금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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