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주·정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UX(사용자경험)연구소의 전략UX거버넌스팀 책임 연구원(사진 오른쪽부터)/사진제공=LG전자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10여 초의 짧은 소리에 여러 명이 보이는 똑같은 반응. "우리집 (LG)세탁기인줄 알았어요"
가사도 없는 짧은 소리 하나 만으로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인지 파악하고, 세탁이 완료됐다는 구체적인 기능까지 모두 알아차린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소리 하나가 기업의 아이덴티티와 제품의 사용성까지 보여준다는 얘기다.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들을 수 밖에 없는 소리. 제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소리. 고객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힌 '그 소리'를 만드는 LG전자 (91,200원 ▼1,400 -1.51%)의 사운드디자이너 정병주·정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UX(사용자경험)연구소의 전략UX거버넌스팀 책임 연구원을 10일 만났다.
미학적 부분과 사용자들의 개성도 놓치지 않았다. 생활 속에서 계속 들어야 하는 가전 소리가 듣기 불편하면 고객의 기분을 망칠 수 있다. 정수연 책임은 "사이렌을 예시로 들어보자. 동일한 음이 반복되면 부정적으로 들리고 사람이 경직될 수 있다"며 "예컨대 세탁을 다 했을 경우 LG전자의 이미지를 담아 기분 좋게 알려 주는 소리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LG전자 가전은 비발디와 차이코프스키의 클래식부터 징글벨 등 캐롤까지 담고 있다. 정병주 책임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등 대중가요를 추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병주·정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UX(사용자경험)연구소의 전략UX거버넌스팀 책임 연구원(사진 오른쪽부터)/사진제공=LG전자
접근성도 높였다. 저시력자와 노인 등 소리에 도움을 받는 고객들을 위한 기능이다. 정병주 책임은 "세탁기의 세탁 온도를 30도 또는 40도 등으로 설정할 때 음계 '도레미파' 이런 식으로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좋은 멜로디에 사용감, 접근성까지. 잡아야 할 토끼가 한두마리가 아니다보니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명함과 달리 '사운드'만 알아서 되는 것은 아니다. 제품 특성과 기능을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제품 개발단계부터 함께 참여한다. 소리마다 다르지만 완성까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도 걸린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크게 들릴 수 있는 정수기 소리를 개선하고 잠든 아기가 깨지 않도록 식기세척기 소리를 조절하는 식이다. 정병주 책임은 "짧은 순간이라도 거슬리는 소리가 되면 안되니, 그걸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세세한 사용 피드백도 수시로 받는다. 공식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가족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하고, 사용 후기를 올리는 유튜브 댓글까지 모조리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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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디자이너가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는 사용자 입장에서 '내 새끼'를 만나는 일이다. 정병주 책임은 "지난해 겨울 냉장고를 바꾸면서 제일 처음 한 것이 냉장고 사운드를 바꾼 것이었다"며 "궁금하지 않냐, 저도 제가 쓰는 제품에서 (저희가 만든 소리를) 만나게 되면 굉장히 기쁘다"고 말했다.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10년전부터 사용했던 세탁기 소리가 지금 LG전자 가전의 '대표' 멜로디가 되었듯, 이제는 그들이 만든 온오프 소리가 다음의 대표 사운드 자리를 향해 가고 있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2~3년전부터 소리 표준화 작업을 시작했다. 10여년 전에 나왔던 가전의 기능별 소리 등을 모조리 모아 일관성 있는 가이드를 만드는 일이다. 정병주 책임은 "소리를 만들 때엔 에어컨이 켜질 때 시원한 '느낌'까지 고려한다"며 "생소한 분야지만 사용자들이 제품을 사용할 때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중요한 일이다. LG전자가 그런 작은 부분까지 고객경험을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