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우리집 세탁기로 달려갈 뻔"…LG 가전의 강렬한 '그 소리'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23.03.1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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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주·정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UX(사용자경험)연구소의 전략UX거버넌스팀 책임 연구원(사진 오른쪽부터)/사진제공=LG전자정병주·정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UX(사용자경험)연구소의 전략UX거버넌스팀 책임 연구원(사진 오른쪽부터)/사진제공=LG전자


"띵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리리, 띵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리"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10여 초의 짧은 소리에 여러 명이 보이는 똑같은 반응. "우리집 (LG)세탁기인줄 알았어요"

가사도 없는 짧은 소리 하나 만으로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인지 파악하고, 세탁이 완료됐다는 구체적인 기능까지 모두 알아차린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소리 하나가 기업의 아이덴티티와 제품의 사용성까지 보여준다는 얘기다.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들을 수 밖에 없는 소리. 제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소리. 고객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힌 '그 소리'를 만드는 LG전자 (91,200원 ▼1,400 -1.51%)의 사운드디자이너 정병주·정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UX(사용자경험)연구소의 전략UX거버넌스팀 책임 연구원을 10일 만났다.



세탁기 소리는 높게, 식기세척기 소리는 낮게…사용성까지 고민
가전의 목소리를 만드는 이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기준은 아이덴티티와 사용성이다. 세탁기와 식기 세척기, 스타일러 등 제품 종류가 다르더라도 전원을 켜고 끌 때 나는 소리는 통일시켰다. LG전자의 제품 임을 인식하게 하는 아이덴티티 작업이다. 사용성을 위해선 세탁 완료와 식기 세척 종료 등 기능을 알리는 소리를 제품 별로 다르게 했다. 세탁실이나 베란다 등 생활 공간과 다른 곳에 두는 경향이 높은 세탁기의 멜로디는 더욱 높고 길게 만들고, 식기세척기와 정수기 등 생활공간에서 함께 쓰는 제품은 반대로 하는 식이다. 정병주 책임은 "사용 위치까지 고려해서 소리를 다르게 한다"며 "방 안에서 멜로디만 듣고도 (무슨 제품의 어떤 기능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학적 부분과 사용자들의 개성도 놓치지 않았다. 생활 속에서 계속 들어야 하는 가전 소리가 듣기 불편하면 고객의 기분을 망칠 수 있다. 정수연 책임은 "사이렌을 예시로 들어보자. 동일한 음이 반복되면 부정적으로 들리고 사람이 경직될 수 있다"며 "예컨대 세탁을 다 했을 경우 LG전자의 이미지를 담아 기분 좋게 알려 주는 소리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LG전자 가전은 비발디와 차이코프스키의 클래식부터 징글벨 등 캐롤까지 담고 있다. 정병주 책임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등 대중가요를 추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병주·정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UX(사용자경험)연구소의 전략UX거버넌스팀 책임 연구원(사진 오른쪽부터)/사진제공=LG전자정병주·정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소속 UX(사용자경험)연구소의 전략UX거버넌스팀 책임 연구원(사진 오른쪽부터)/사진제공=LG전자
개인 취향에 접근성도 고려…"고객경험 세세하게 관리"
노인 가구와 1인 가구, 아기를 키우는 가정 등 가정 특성에 따라 소리 취향도 달라진다. LG전자는 고객들이 원하는 소리 종류를 고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량을 조절하고 밤에는 아예 소리를 끌 수도 있게 했다. 정병주 책임은 "아이덴티티를 꾀하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소리를 바꿀 수 있도록, UP가전으로 대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UP(업)가전은 LG전자가 2022년 내놓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전제품을 구매후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기능을 지속 추가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UP가전 세탁기를 구매하고 LG씽큐 앱에 제품을 등록한 고객 가운데 절반 가량이 새로운 알림 멜로디를 등록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개인화가 최근 들어 부각되면서 사용자 50% 가량이 새로운 소리를 다운받는다"고 설명했다.

접근성도 높였다. 저시력자와 노인 등 소리에 도움을 받는 고객들을 위한 기능이다. 정병주 책임은 "세탁기의 세탁 온도를 30도 또는 40도 등으로 설정할 때 음계 '도레미파' 이런 식으로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좋은 멜로디에 사용감, 접근성까지. 잡아야 할 토끼가 한두마리가 아니다보니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명함과 달리 '사운드'만 알아서 되는 것은 아니다. 제품 특성과 기능을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제품 개발단계부터 함께 참여한다. 소리마다 다르지만 완성까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도 걸린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크게 들릴 수 있는 정수기 소리를 개선하고 잠든 아기가 깨지 않도록 식기세척기 소리를 조절하는 식이다. 정병주 책임은 "짧은 순간이라도 거슬리는 소리가 되면 안되니, 그걸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세세한 사용 피드백도 수시로 받는다. 공식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가족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하고, 사용 후기를 올리는 유튜브 댓글까지 모조리 참고한다.


사운드 디자이너가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는 사용자 입장에서 '내 새끼'를 만나는 일이다. 정병주 책임은 "지난해 겨울 냉장고를 바꾸면서 제일 처음 한 것이 냉장고 사운드를 바꾼 것이었다"며 "궁금하지 않냐, 저도 제가 쓰는 제품에서 (저희가 만든 소리를) 만나게 되면 굉장히 기쁘다"고 말했다.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10년전부터 사용했던 세탁기 소리가 지금 LG전자 가전의 '대표' 멜로디가 되었듯, 이제는 그들이 만든 온오프 소리가 다음의 대표 사운드 자리를 향해 가고 있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2~3년전부터 소리 표준화 작업을 시작했다. 10여년 전에 나왔던 가전의 기능별 소리 등을 모조리 모아 일관성 있는 가이드를 만드는 일이다. 정병주 책임은 "소리를 만들 때엔 에어컨이 켜질 때 시원한 '느낌'까지 고려한다"며 "생소한 분야지만 사용자들이 제품을 사용할 때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중요한 일이다. LG전자가 그런 작은 부분까지 고객경험을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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