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실리콘밸리여서 더 빨리 망했다"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23.03.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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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케빈 루스, 뉴욕타임스에서 "기술기업들이 폄하하던 금융당국이 기업들 살리는 중"

사진=게이티미지뱅크사진=게이티미지뱅크


기술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케빈 루스가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통해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실패에서 생각해 볼 3가지'라는 제목으로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주 고객이 있는 업계 특성이 이 은행의 빠른 실패로 이어졌고, 업계가 비판하던 힘이 결국 이들을 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SVB는 기술기업을 주 고객으로 하며 코로나19 시기 기술기업이 활황일 때 같이 성장했다. 다만 기술기업들도 유동성이 풍부해 대출 수요가 적어 SVB는 장기채권에 크게 투자해왔는데, 금리 인상으로 채권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다. 유동성 위기설에 뱅크런이 발생하자 예금 지급을 위해 SVB는 손실을 보고 보유 채권을 정리하게 됐다.



루스 작가는 "이번 SVB파산사태는 단순히 '금리인상 시기에 장기채권에 투자하지 말라'는 메시지만 남은 게 아니다"며 "SVB의 파산을 계기로 산업계가 고민해볼 만한 3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가장 먼저, SVB의 독특한 사업모델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SVB는 미국 은행순위 16위의 소규모은행으로 분류된다. 지난 1월 기준 자산규모는 약 2000억달러(263조원)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만큼은 '특권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자들은 자신의 첫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 은행, 첫 자동차를 사기 위해 대출을 받은 은행, 첫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준 은행으로 SVB를 기억한다. 그 때문에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이 SVB를 인수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 은행이 인수된다고 해도 이후 기술 기업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지, 스타트업에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리고 실리콘밸리 내 SVB 모델에 대한 신뢰가 지속될지 등은 의문이다.

실리콘밸리뱅크(SVB) 미국 본사 전경/사진=로이터통신실리콘밸리뱅크(SVB) 미국 본사 전경/사진=로이터통신
두 번째로 루스는 SVB의 빠른 파산이 '실리콘밸리식' 업무 스타일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칼럼은 "만약 SVB의 고객들이 기술 창업자들이 아닌, 식당 주인이나 반려견 미용샵 주인이었다면?"이라고 되묻는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예금이 인출되고 파산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SVB의 예금주들은 일반적인 고객이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은행의 서류를 면밀히 살피고, 시장의 위험과 변동성에 촉각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하루종일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바로 벤처 창업자와 투자자들이다. 일부가 SVB의 지불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자마자 온라인메신저 '슬랙'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경고글이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일순간에 많은 사람들은 SVB 와 관련해 '패닉'에 빠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번 SVB 파산사태가 "금융당국의 규제가 살아있다는 걸 재확인시켰다"고 평가했다.

최근 몇 년간, 일부의 성공한 기술기업은 정부 관리들과 규제기관에 대해 "느리고, 부패했고, 혁신을 발목 잡는다"며 폄하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을 해 온 기업 가운데 지난주 SVB 파산의 여파로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곳도 있다. 이같은 사례를 들며 칼럼은 "은행 규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칼럼이 게재된 12일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공동 성명을 내고 SVB 예금을 전액 보증하기로 했다. SVB 고객인 기술기업들은 보호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현금을 이 은행에 넣어둬 이번 사태로 위기를 맞았다.



칼럼에서 루스는 "향후 정부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면, 실리콘밸리는 규제 덕분에 생존했다고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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