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보석을 산 롯데, 그런데 땅이 없다 [맨해튼 클래스]

머니투데이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3.03.1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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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롯데 뉴욕팰리스 - 가시돋친 장미

편집자주 세계인들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뉴욕(NYC)과 맨해튼(Manhattan)에 대해 씁니다. 국방비만 일천조를 쓰는 미국과 그 중심의 경제, 문화, 예술, 의식주를 틈나는 대로 써봅니다. '천조국'에서 족적을 남긴 한국인의 분투기도 전합니다.

롯데그룹이 미국 맨해튼 중심가 '더 뉴욕 팰리스 호텔'을 8억500만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브랜드 호텔 업체 중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롯데가 처음이다. 사진은 더 뉴욕 팰리스 호텔 전경롯데그룹이 미국 맨해튼 중심가 '더 뉴욕 팰리스 호텔'을 8억500만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브랜드 호텔 업체 중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롯데가 처음이다. 사진은 더 뉴욕 팰리스 호텔 전경


맨해튼 섬의 중심 매디슨 애비뉴에는 광고사들이 몰려 있다. 과시적인 패션피플들이 즐비한 거리의 중심에 고상하고 유서 깊은 호텔이 있는데 그게 뉴욕팰리스다. 부동산 재벌로 미국 대통령에 올랐던 도널드 트럼프 조차 갖고 싶어하던 화려한 건축물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유엔(UN) 총회에서 숙소로 쓰기도 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수학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뉴욕팰리스를 자주 이용했다. 롯데 경영자로 합류하기 전 본인 능력으로 뉴욕 노무라증권에서 채권 부문 서열 3위까지 올라갔던 신 회장은 비즈니스맨 시절에도 뉴욕팰리스를 좋아했다고 한다. 각별한 애정을 두고 지켜봤던 것이다.



2015년 중순 한 통의 전화가 롯데에 걸려왔다. 글로벌 호텔 중개 및 투자사인 하지스 워드 엘리엇(Hodges Ward Elliott)이 뉴욕팰리스 인수를 제안한 것이다. 부동산투자법인 노스우드 인베스터스(Northwood Investors)는 2년 전 1억6000만 달러를 들여 리노베이션한 이 호텔을 엘리엇에게 팔아달라고 한 상태였다. 엘리엇은 롯데의 수장이 이 호텔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롯데그룹이 삼성가(家)인 호텔신라에서 영입한 김정환 전무(2019년 호텔롯데 대표이사 은퇴)가 거래를 도맡았다. 신라호텔에서 총지배인 겸 호텔사업부장(전무급)을 거쳤고 2012년 호텔롯데로 옮겨서도 다시 총지배인을 맡아 국내 양대 호텔체인을 섭렵한 그는 글로벌 사업까지 성공시킨다면 트리플 크라운을 얻는 셈이었다.



뺏길까봐 너무 조급했다
롯데 뉴욕 팰리스 현판식롯데 뉴욕 팰리스 현판식
신 회장의 재가를 얻은 롯데 인수팀은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엘리엇이 부여한 배타적 협상기한은 고작 한 달에 불과했다. 잘 나오기 힘든 매물을 인수할 찬스를 잡았는데 경쟁자에게 뺏기면 안된다는 조급함이 앞섰다. 실사단은 서울에서 삼정KPMG가 맡았고, 법무대리로는 폴 헤이스팅스가 참여했다. 하지만 한 달은 서울에서 뉴욕을 두어번 오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롯데 인수팀의 계산에는 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의 가치가 8억500만 달러(약 1조원)라는 것은 재고의 가치가 없는 가격이었을지 모른다. 이미 전 주인이 약 2000억원을 들여 재건축한 상태라 건물에는 더 들일 돈이 필요치 않다고 판단했다. 롯데는 한국에서의 임직원 관리기법만 도입하면 곧바로 흑자를 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롯데가 한 달 만에 서두른 결정은 세 가지 오판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경영학 교과서의 PMI(인수후통합) 메뉴얼에 따라 서울의 매니지먼트팀을 고작 서너명 파견한 것이다. 인수 초기에 해당회사 임직원의 반발을 두려워해 그를 염려한 결정이었다. 1조원을 들이고 얻은 것은 사실 '롯데'라는 마크 하나에 불과했다.

뉴욕팰리스에는 인수 후 롯데의 기업문화가 전혀 이식되지 못했다. 롯데가 뉴욕팰리스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뉴욕팰리스가 그저 새 투자자를 찾은 것에 불과했다. 호텔 서비스와 친절도는 직원들의 지나치게 고고한 자존심에 밀려 개선되지 못했다. 마치 오래되고 유명한 곳에 왔으니 그저 견디란 식의 서비스가 이어졌다.

품질 개선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코로나19 타격이 겹쳤다. 2021년까지 누적손실은 6000억원을 넘어섰다. 한 해에 수백억원씩 적자가 쌓이고 오히려 손실이 늘어나는 이유는 두번째 패착 때문이다. 인수 실사과정에서 뉴욕호텔 노동조합(The Hotel and Gaming Trades Council, HTC)의 위력을 간과한 것이다.

환갑넘은 평직원 연봉이 20만弗
The Hotel and Gaming Trades Council, AFL-CIO, (Hotel Trades Council for short), is the union for hotel and gaming workers in New York and Northern New Jersey. (HTC는 뉴욕과 북부 뉴저지의 호텔과 유흥사업 근로자들을 위한 노동조합 연맹체다.) /사진= HTCThe Hotel and Gaming Trades Council, AFL-CIO, (Hotel Trades Council for short), is the union for hotel and gaming workers in New York and Northern New Jersey. (HTC는 뉴욕과 북부 뉴저지의 호텔과 유흥사업 근로자들을 위한 노동조합 연맹체다.) /사진= HTC
경영개선이 어렵거나 코로나19 등을 맞아 손님이 없고 적자가 난다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데 HTC가 버티고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유연한 근로계약에 이점이 있지만 세계의 중심 뉴욕과 최대 관광지에 토착한 호텔 노조에는 예외다. 노조와 합의하지 않고는 단 한 명도 자를 수 없다.

매니저급에 오르지 못한 환갑이 넘은 직원이 연공서열에 따라 2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서울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지만 이들을 구조조정할 수는 없다. 롯데는 인수후 이런저런 구조개선 계획을 세웠지만 일 잘하는 애꿎은 비노조원(전체의 20%)만 팬데믹 시기에 짐을 싸야 했다.

마지막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인수팀은 실사 단계에서 이 웅장하고 장엄한 호텔이 오직 지상권만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나쳤다. 땅 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의미다. 뉴욕팰리스 맞은 편에는 그 유명한 세인트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이 있다. 교황청이 관리하는 높이 100미터가 넘는 네오고딕 양식의 이 대성당이 사실은 뉴욕팰리스 대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로마교황청은 성당 주변에 유해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주변을 사들였고 뉴욕팰리스와는 25년 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현재 임대료는 1000만 달러 수준인데 2015년 롯데 인수팀은 재계약을 머나먼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롯데의 토지임차 재계약 갱신 시점은 앞으로 2년여 밖에 남지 않은 2026년이다.

로마교황청 2년 후 땅값 네 배 올릴 수도
롯데 뉴욕팰리스는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과 실내장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박준식 기자 롯데 뉴욕팰리스는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과 실내장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박준식 기자
2015년의 롯데는 뉴욕팰리스를 사들여 구조조정을 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면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누적적자가 쌓인 상황에서 토지임차 계약 갱신은 적잖은 부담이다. 게다가 임차료는 계단식으로 상향돼 왔다. 관계자들이 전망하는 갱신 임차료는 현재보다 3~4배 높은 4000만 달러 수준이다.

롯데 입장에서 뉴욕팰리스는 그 존재가치만으로 호텔사업이나 그룹 전체의 품격을 높여줄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전처럼 떠받들어 모시는 모습이다. 유지관리 비용이 지나치게 높고 경영관리가 엉망이란 판단에 따라 신동빈 회장이 직접 나서 2021년 7월 블랙스톤 출신의 짐 패트러스(Jim Petrus) 대표를 영입했다.

그러나 새 대표가 오고 나서도 적자는 지속되고 있다. 근본적인 경영 개선이 어려운 까닭은 인수가격에 맹점들을 반영하지 못했고, 관리초기에 조직문화를 이식할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909실 규모의 이 호텔은 대통령들의 숙소로 '뉴욕의 백악관'이라고 불리지만 현재 롯데 입장에서는 아픈 손가락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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