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비싸게 위스키 수입만?…인도·대만도 만드는데, 왜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23.03.1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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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시동걸린 양주독립④-키플레이어된 후발 주자들...종량세 장벽에 한국은 걸음마 단계

편집자주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고급 위스키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였다. 시대가 바뀌면서 흥청망청 마시는 위스키 문화는 자취를 감췄다. 위스키 수입도 2007년을 정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하이볼'과 함께 위스키가 살아났다. 새 위스키가 출시되면 오픈런이 벌어지고 시내 곳곳에 위스키바가 등장했다. 위스키 열풍은 위스키의 국산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들까지 뛰어들었다. 양주가 더이상 양주가 아닌 시대, 양주독립이 시작됐다.

대만 카발란 증류소 전경. /사진제공=하나투어대만 카발란 증류소 전경. /사진제공=하나투어


우리나라는 자체 위스키 증류소 없이 수입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생산 분야 경쟁력이 낮다. 후발 주자인 인도와 대만이 자체 위스키 증류소를 구축해 글로벌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거듭난 것과 대조적이다.

10일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위스키 시장 규모는 2022년 809억달러에서 연평균 12.4% 성장해 2032년 5503억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 같은 성장세는 인도, 일본 등 아시아 국가 소비량 증가와 맞물려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1년 위스키 소비 규모는 인도가 17억663만리터(ℓ)로 가장 많았고 이어 미국(6억203만리터) 일본(1억5100만리터) 프랑스(1억3001만리터) 영국(7494만리터) 순이었다. 한국의 소비량은 2021년 기준 940만리터로 주요국에 못 미친다.

위스키 제조 불리한 기후 극복한 인도와 대만…한국은 수입 의존 구조 고착화
인도와 대만은 고온 다습한 기후로 당초 위스키 제조에 부적합한 지역으로 인식돼 왔다. 위스키는 곡물을 증류한 술인데 기온이 높으면 알코올이 빠르게 증발해 제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위스키 종주국인 스코틀랜드는 연간 증발하는 위스키 원액량이 1~2%이나 인도나 대만 등 아열대 기후에선 연간 15~20% 증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30년간 숙성한 고급 위스키를 생산하기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인도와 대만은 각자의 생산 방식을 구축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인도는 1987년부터 증류소에서 보리 맥아로 만든 정통 싱글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인도산 몰트 75%와 스코틀랜드 수입 몰트 25%를 섞어 숙성한 '암룻 퓨전(Amrut Fusion)'은 '위스키 바이블'의 저자 짐 머레이가 2010년 "100점 만점에 97점"이라고 평가하며 세계 3대 위스키로 꼽아 명성을 얻었다. 맵고 짭짤한 인도 특유의 맛을 지닌 이 제품은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위스키 시장으로 수출된다.

12억 인구가 뒷받침하는 거대한 내수 시장도 인도 위스키의 강점이다. 연간 1500만 케이스 이상 팔리는 조니워커, 잭다니엘 등 유명 위스키 판매량도 인도 내수시장 인기 브랜드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비싸게 위스키 수입만?…인도·대만도 만드는데, 왜
대만은 기후 악조건을 역발상으로 돌파했다. 타이베이 남쪽에 위치한 카발란(Kavalan) 위스키 증류소는 해발 3000m가 넘는 산맥 가운데에 위치했다. 2006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이곳은 연평균 기온이 27도가 넘는 고온에 강수량이 많아 매년 증발하는 위스키 원액량이 15%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품에 숙성 기간을 잘 표기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단기 숙성 방식이 오히려 신선한 맛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발란 위스키는 2010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위스키 블라인드 테이스팅 이벤트에서 영국과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유명 위스키 평론가들은 카발란에 열대과일잼 같은 독특한 향기가 있다고 호평한다. 카발란 양조장은 대만의 주요 관광 코스로도 개발돼 '일석이조'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도 한때 위스키 산업에 도전했다. 1980년대 초반 진로와 오비, 백화양조 등이 수년간 국산 위스키 제조를 시도했다. 하지만 증발량이 많고 수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판단으로 결국 사업을 접었다. 인도와 대만 사례를 보면 이 기간의 개발 공백은 아쉽다. 다만 최근 롯데, 신세계 등 대기업이 자체 증류소 건립에 나섰고 김창수 위스키 등 국내 생산 브랜드가 점차 늘어나면서 반등 기회로 여겨진다.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위스키를 구매하고 있다.  이마트는 이날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1,200병과 산토리 가쿠빈 8400병을 한정 수량으로 판매했다. 2023.2.2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위스키를 구매하고 있다. 이마트는 이날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1,200병과 산토리 가쿠빈 8400병을 한정 수량으로 판매했다. 2023.2.2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되살아난 위스키 시장…업계, 위스키 종량세 전환 요구하나 정부는 난색
국내 위스키 수요도 되살아나는 추세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스카치 등 위스키류 수입액은 2억6684만달러로 전년(1억7354억달러) 대비 52.2% 증가했다. 2007년(2억7029만달러) 이후 15년 만에 최대치다.

다만 업계에선 국내 위스키 자체 생산 확대를 위해 주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위스키는 현재 가격에 비례해 세금을 책정하는 '종가세' 구조다. 술 가격이 비쌀수록 세금이 더 붙는다. 현행법상 위스키 등 증류주에 붙는 세율은 72%에 달한다. 주세의 30%인 교육세와 10%의 부가세를 더하면 원가의 약 103%가 세금이다. 국내 출고가 10만원짜리 위스키라면 세금만 10만원이 넘는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위스키도 맥주처럼 알코올 도수와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는 대부분 종량세를 적용하며, 국산 위스키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소주 등 종가세를 채택한 저가 주류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고 세수 감소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증류주에 종량세를 적용하면 소주 등 저가주는 세부담이 올라가고 위스키 등 고가주는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위스키는 아무래도 고가주에 속해 종량세를 요구하는 입장도 이해되지만, 소주를 비롯한 다른 증류주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업계 이해관계, 소비자 부담 등이 맞물려 있어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증류주의 종량세 개편은 중장기 과제로 당장 변경할 가능성이 작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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