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뀌었으면 뀌었다던 아버지" 정직의 사업가 이운형을 추억하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3.03.10 06:00
글자크기

故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10주기

고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이 2011년 오페라 공연에서 박수를 보내고 있다. 고인은 생전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임기 후엔 스스로 후원회장을 맡았다./사진=세아그룹고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이 2011년 오페라 공연에서 박수를 보내고 있다. 고인은 생전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임기 후엔 스스로 후원회장을 맡았다./사진=세아그룹


"아버지는 정직한 분이십니다. 방귀를 뀌셨으면 뀌셨다고 하고, 안 뀌셨으면 안 뀌셨다고 하십니다!"

세아그룹 3세 이태성 세아홀딩스 사장이 초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인 고(故)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에게 쓴 어버이날 편지는 '방귀'로 시작한다. 편지를 본 이 회장은 파안대소 했다. 이 사장은 선친을 그리며 엮은 책에도 그 편지 전문을 실었다. 무엇보다 정직함이 선친의 최우선 경영 철학이었음을 이 사장이 가장 잘 헤아리고 있어서다.

'철강업계 신사'로 통했던 이 회장이 작고한 지 10일로 10주기를 맞는다. 세아그룹은 간소하게 10주기 행사를 치른다지만 산업계에는 고인의 삶과 철학이 새삼 깊고 넓게 회자된다.



이 회장은 1974년 그룹에 들어 2013년까지 약 40년간 세아그룹을 이끌었다. 국내 강관(철파이프)업계 최초 1억 달러 수출 달성, 지주회사체제 선제적 도입, 기아특수강(세아베스틸)·창원강업(세아특수강) 인수 등 굵은 족적을 남겼다. 이 기간 회사 매출은 약 300배로 커졌다.

그룹이 50살이 되던 2012년, 미래비전 수립 업무를 맡은 회사 직원이 이 회장에게 물었다. "앞으로도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우리가 꼭 가져가야 할 것을 하나만 꼽으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이 회장이 말했다. "정직입니다." 그 직원은 "순간 좀 멍했다"고 했다. 회장과 회의를 앞두고 수많은 기업의 사례를 연구했지만 '정직'을 최우선 가치로 꼽은 회사는 없었다.



이 회장은 "40년 경영을 해보니 정직할 때가 가장 평안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닌 스스로의 눈으로 봤을 때 부끄러움이 없어야만 평안하더라는 얘기였다. 아들 이 사장에게 당부했다는 "손해보는 것 같을때가 가장 공정하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쪽으로 경영해야 한다는 거다.

당시 이 회장이 꼽은 세가지 키워드가 바로 정직과 열정, 실력이다. 이후 세아의 길은 이 세가지 가치를 최우선으로 이어져왔다. 인재관도 마찬가지다. 이 회장은 "머리가 영리하고 재치가 있는 사람보다는 우직하고 성실한 사람, 변함이 없고 꾸준한 사람, 정직한 사람을 더 원한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던 정신과 원했던 기업문화가 여기서 읽힌다.

변할 수 없는 정직의 기반 위에서 세아그룹은 변모를 꾀해 왔다. 특수강을 앞세워 우주산업까지 정조준하고, 커지는 풍력발전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에 영국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기지를 확충했다. EU(유럽연합)는 물론 미국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실적도 견실해졌다.


그 과정에서 세아는 미래를 보는 만큼이나 이 회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변화의 길에서 변치 않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핵심은 정직이다. 이는 이 회장의 유명한 철학인 심여철(心如鐵), 즉 철과 같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철은 세상에 수많은 혜택을 주면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늘 처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겸손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철과 같은 마음입니다." 생전의 그가 늘 했던 말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