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결론 어떻든 의료 마비사태"…최종 충돌 눈앞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이창섭 기자, 박미주 기자, 차현아 기자 2023.03.09 07:00
글자크기

[MT리포트] '의료 블랙홀'된 간호법(上)

편집자주 간호법이 블랙홀처럼 모든 의료개혁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 법의 본회의 통과에 반대하는 의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응급구조사 등 400만명 규모의 보건의료단체들과 '무조건 통과'를 외치는 50만명 간호사들 사이의 갈등은 봉합이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의사단체는 의사면허취소법까지 간호법과 연동해 반대 수위를 올린다. 이 때문에 의료계의 중지를 모아 추진돼야 할 필수의료 강화 등 의료개혁에 제동이 걸렸다. 결국 피해는 의료 수요자인 국민에게 돌아온다. 간호법은 어떻게 유례없는 의료 갈등의 뇌관이 됐을까. 의사단체와 간호사단체 수장의 입장을 들어보고 해법을 모색해본다.

중재없이 2년 허송세월…500만 '의료 내전' 터졌다
"간호법, 결론 어떻든 의료 마비사태"…최종 충돌 눈앞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이 폐기될 때까지 총력 투쟁을 전개할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 소속 회원들이 여의도공원 앞에 모여 간호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연 지난 달 26일은 우리나라 의료 분쟁 역사상 가장 많은 직역이 참여한 날로 기록됐다.

2000년 의약분업, 2007년 의료법 개정, 2020년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등 수만명을 거리로 나서게 한 갈등이 있었지만, 갈등의 폭과 깊이는 이날에 미치지 못했다. 간호법의 무조건 통과를 주장하는 간호사단체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 1300여개 단체까지 합하면 간호법 갈등과 연관된 인원은 500만명에 육박한다. 사실상 의료계 전체가 둘로 쪼개져 마주달린 이번 갈등은 이제 최종 충돌이 눈앞이다.



8일 의료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달 9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 간호법은 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오는 23일, 혹은 30일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은 본회의 부의 요구를 받은 지난 달 9일부터 30일 안에 여야 대표 합의로 부의 여부를 정해야 한다. 현재로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낮다는게 중론이다. 이렇게 되면 간호법 제정안은 이후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지는데, 여야는 3월 국회 본회의 일정을 오는 23일과 30일로 합의한 상태다. 이르면 23일, 늦어도 30일엔 간호법 제정안이 무기명투표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투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강대 강으로 달려온 갈등의 파국은 불가피하다. 400만명이 소속된 보건복지의료연대의 한 축인 의사단체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태세다.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경우, 간호법 통과가 46년 숙원사업이던 50만명 소속 간호사단체의 거센 반발을 각오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의료체계 전반의 마비 사태가 불거질 수 있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연결된다.


간호법이 여·야 소속 의원 대표로 각기 3건 발의된 2021년만 해도 상황은 이렇지 않았다. 의사단체와 간호사단체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간 정도였다. 해가 바뀌어 3개의 법안이 통합되고 보건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의사단체와 간호조무사단체 소속 7000여명이 거리에 나섰고 간호사단체도 집회 규모를 키우며 맞불을 놨다. 다시 해가 바뀌어 지난 달 9일 이 법안이 본회의 안건으로 직행하자 이제 13개 보건의료단체와 간호사단체 간 명확한 전선이 생겼다.

2년에 걸쳐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진 셈이다. 의료계에서는 애초에 간호법 찬반 양측이 자체적으로 이견의 폭을 줄일 여지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양측 모두 이 법의 통과 여부를 각 직역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간호법 제정안에서 간호사 업무 범위로 '지역 사회'가 추가된 부분이다. 의사를 비롯, 임상병리사 등은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간호사의 독자적 의료활동을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간호조무사와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등도 지금도 일부 벌어지는 간호사의 업무영역 침해가 간호법이 통과되면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반대로 간호사단체는 지역 사회에서도 의사 지시서가 없으면 단독 행위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70년 된 낡은 의료법에 갇혀있는 간호사들의 역할과 업무범위, 인력수급, 처우개선을 시대 변화에 맞춰 현실성 있게 간호법으로 체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뉴스1)  =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 의료연대 구성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강행처리 규탄 총력투쟁 선포식을 열고 간호법을 규탄하고 있다.(서울=뉴스1) =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 의료연대 구성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강행처리 규탄 총력투쟁 선포식을 열고 간호법을 규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이익단체가 스스로 타협점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도 2년 동안이나 정치권이 중재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일단 입법 자체가 각 단체들의 이해관계를 세밀히 조정하지 않은 채 강행됐다는 것.

강성홍 인제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건의료 관련 입법은 전문가의 심도있는 검토를 거쳐 관련 직종의 합의를 도출해 제정돼야 하지만 의사 손보기 차원에서 졸속으로 진행됐다"며 "행정부에서는 신중검토를 주장했지만 무리하게 입법이 추진됐고 그 피해는 결국 간호사 보다 더 힘이 약한 의료기사 및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들이 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재없이 최고조로 치닫는 양측 갈등은 이제 시급히 추진돼야 할 의료개혁 작업에도 제동을 건다.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직접 회부된 것에 반발한 의사단체의 불참으로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의 의료 정책 논의 창구인 의료현안협의체가 중단되면서 필수의료 개선, 의대 정원 증원, 비대면 진료 제도화 등 의료개혁과 관련된 전반적 협의가 표류중이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차원에서 각 직역 간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 참여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이제 이 법이 통과되면 직역 간 갈등은 최악이 될 것"이라며 "보건복지부와 전문가 및 관련 단체가 참여하는 별도 협의체를 구성하고 국회와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아과 붕괴' 막으려면 간호법 봉합부터?…현실화된 '의료 블랙홀'
"간호법, 결론 어떻든 의료 마비사태"…최종 충돌 눈앞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의료 인력 확대 등을 의사단체와 논의해 정하기로 했지만 이 협상이 20일 넘게 중단됐다. 간호법 제정과 일명 '중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이라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로 직행하게 되자 이에 반발한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 협상 자체를 거부한 때문이다. 정부는 의협의 의정협의체 복귀만 기다리고 있다.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일각에선 현안이 시급한 만큼 새 논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8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16일 지역 의사 부족, 필수 분야 의사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의협과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했다. 하지만 지난달 16일로 예정됐던 의료현안협의체 논의는 결국 진행되지 않았다. 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 등 법안 7건이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직접 회부된 데 반발하면서 의협이 불참을 통보한 탓이다. 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의협에 협의체 복귀를 공식 요청했지만 의협은 재차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의협 관계자는 "현안 협의의 중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간호법이랑 의료인면허취소확대법으로 새 비대위원장이 선출되고 이에 대해 총력 대응을 주문한 상황이라 당장 현안협의체에 응하기 어렵다"면서 "언제 협의체에 참석하게 될지 기간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맞은편에서 각각 간호법 제정 촉구-제정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사진= 뉴스1대한간호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맞은편에서 각각 간호법 제정 촉구-제정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사진= 뉴스1
이에 따라 필수 의료 대책에 꼭 필요한 의료 정원 확대 논의도 중단되고 관련 대책 마련도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정부는 의협의 참석만 기다리는 모양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협과 의대 정원 관련 협의를 하려는 것인데 현재 의료 인력 확대 정책 관련 정해진 일정은 없고 의협과의 대화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정부는 간호법 관련 갈등으로 의료 대책 논의가 중단된 만큼 간호법 갈등부터 풀어야 한다고 본다. 복지부는 국회의 간호법 제정안 본회의 직회부 결정에 "코로나19(COVID-19) 대응을 위해 의료 현장의 직역 간 협업이 중요한 상황에서 간호법의 본회의 부의 요구는 보건의료직역 간 협업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며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의협이 의대 정원 확대 논의 자체를 기피하기 위해 간호법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민단체에선 정부가 새 논의체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대한민국이 의사 수가 부족해 무너져가는데 의협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리기 싫어 온갖 핑계를 대면서 논의를 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현재 의사단체만 참여하는 의정 협의로 부족한 의사 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논의가 막혀있다"며 "사회적 논의체를 구성하고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법, 결론 어떻든 의료 마비사태"…최종 충돌 눈앞
한편 최근 문제가 대두된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전공의 확보율이 2020년 68.2%에서 2022년 27.5%로 크게 줄어 대학병원 등에서 전문의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1명당 소아중환자 수는 일본이 1.7명인 반면 한국은 6.5명으로 의사 수도 부족하다.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소아청소년과는 3308개에서 3247개로 61개 감소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병원 운영이 어렵다며 오는 29일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을 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소아청소년과에서 일반의 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의사 부족 현상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에 따르면 2025년 성·연령을 감안한 활동 의사 공급이 수요 대비 5516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2030년엔 이보다 더 늘어난 1만4334명, 2035년엔 2만7232명의 공급이 각각 모자랄 것으로 예측된다.

본회의 직행한 간호법…"尹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만 남아"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춘숙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3.2.2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허경 기자 =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춘숙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3.2.2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 당은 법안에 반대한 적 없다. 단지 직역 간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했다."(강기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

"여야가 서로 내용 합의는 마쳤다. 직역끼리 내용을 합의해오라고 하든 (어떤 방식이든) 국회가 결정을 내려줘야 한다. 그것이 국회가 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다. 그러지 않으니 자꾸 장외 갈등이 이어지는 것이다. "(김성주 당시 야당 간사)

지난해 5월17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 회의장. 간호계 40년 숙원 사업인 간호법 제정안(간호법)이 처음으로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기 직전 상황이 담긴 속기록 일부다. 통과 직전까지 여야는 직역 간 갈등을 두고 언쟁을 벌였다. 좀 더 논의 시간을 갖자는 여당 주장에 야당은 국회가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짓자며 의결을 촉구했다. 결국 간호법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간호사 출신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도 함께였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의료연대 등 의료인 조합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간호법-의료인면허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구호를 와치고 있다. 2023.02.26.[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의료연대 등 의료인 조합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간호법-의료인면허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구호를 와치고 있다. 2023.02.26.
한 복지위 관계자는 "발의 과정에만 1년 넘게 걸릴 만큼 이해당사자 의견을 충분히 들었고 발의 때도 여야 모두 이견이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논의가 무르익었으니 21대 국회의 상반기 상임위원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반기에 의원들이 새로 배정되면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에서의 간호법 논의는 2005년(17대 국회), 2019년(20대 국회)에 이어 2021년이 벌써 세 번째다. 간호계는 1980년대부터 법 제정에 공들여왔다. 관련 단체 등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던 앞선 논의 때와 2021년은 달랐다. 코로나19(COVID-19)를 계기로 간호사들의 헌신에 대한 여론이 형성됐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정치권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은 간호법을 대선 전 국회에서 조속히 만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해 4월27일 법안소위 속기록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날 오전 10시15분에 시작한 회의는 오후 8시가 다 돼서야 끝났고 정회만 세 차례됐다. 오후 4시30분 쯤 일부 의원들이 "(간호법 논의는) 오늘 진짜 많이 했다. 머리가 아파서 더 못 하겠다", "의총에 가야한다", "다른 날에 회의를 빠르게 잡아달라"고 하자 김성주 소위원장은 "오늘 했던 내용은 최소한 (오늘) 정리하고 추가 논의 여부에 대해 판단하자"며 이어갔다.

정작 간호법을 둘러싼 공방은 법안소위를 통과한 뒤 본격화됐다. 같은 해 5월9일 법안소위에서 최연숙 의원을 제외한 강기윤 간사 등 국민의힘 의원 모두 불참한 상태로 전체회의에 안건을 상정하기로 의결했기 때문이다. 불참한 다수 의원들은 당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애 의원은 "공천 때문에 부산에 있었다"며 "그날 오후 2시12분에 문자를 보내 4시에 회의를 열자고 하면 예측이 되나"라고 했다. 이에 김성주 의원은 "이미 4월27일에 장시간에 걸쳐 여야가 내용에 합의했다. 일정 협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논의를) 더 이상은 늦출 수 없었다"고 했다.

간호법은 이후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다시 복지위로 돌아온 뒤 본회의 직회부만 앞둔 상태다. 오는 9일까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간호법은 이후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진다. 복지위 관계자는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지만 남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