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교수
최근 미국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 98세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제39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그는 가장 성공적으로 퇴임 이후 시간을 보낸 대통령으로 평가되며 애초부터 전직 대통령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퇴임 뒤 세운 카터센터를 통해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 인권증진과 분쟁해결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그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일상이던 미국 남부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친절하고 인정 많으면서도 인종차별만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이를 입증하는 성경구절을 줄줄 외우곤 하는 백인 어른들을 보면서 자랐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평등문제나 흑인들의 처지에 대해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던 그는 함께 놀던 흑인 친구들이 목초지 문을 먼저 통과하라고 자신에게 양보하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한국을 향해서도 긴급조치9호 폐지와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했고 동시에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웠다. 그는 자서전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2가지 실마리를 제시했다. 우선 그는 한국이 충분히 부유하고 기술적으로 스스로 방어 가능한 능력이 있다고 봤다. 더 구조적으로 그는 군축을 통해 소련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 군사적 봉쇄와 미국 중심의 반공국가 동맹이라는 기존 이분법적 외교원칙에서 벗어나 자유와 인권에 기초한 세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군사적 대결에 의한 힘의 균형보다 사회·경제적 영향력에 의한 상호의존적 세계질서가 등장할 것이라고 믿고 이를 위해 인권신장과 미국의 지원을 연계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 한 그의 정책은 따라서 선구적인 탈냉전적 접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12·12 군사쿠데타에는 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1979년 11월 이란에서 발생한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의 충격으로 우방국가에서 유사한 혼란의 발생을 우려한 점, 그리고 안보이해를 우선하는 전통적 냉전세력이 재등장해 인권외교를 견제하는 상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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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민주주의는 카터 외교정책의 중요한 자산이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식 신념이 모든 현실에서 반드시 긍정적으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을 지원하는 탈레반을 제거하러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이는 애초부터 실패 가능성이 높았던 친미정부 수립을 통한 국가 건설과정 개입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 3000여명에 가까운 미군 사망자를 내며 자신들이 믿는 민주주의 확산에 국력을 소모하는 사이 중국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면서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경쟁세력으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