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로 시작됐지만 ‘사랑이라 말해요’

머니투데이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03.0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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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본 사람 있어도 한회만 본 사람 없단 '마성의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사랑이라 말해요',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드라마 제목에서 봄 내음을 느끼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간 기대와는 다른 분위기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제목만 보곤 익숙하고 흔한 로맨스 드라마를 짐작하겠지만, 복수를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디즈니플러스의 새 오리지널 시리즈 ‘사랑을 말해요’ 다.

‘사랑을 말해요’(극본 김가은, 연출 이광영)는 복수에 호기롭게 뛰어든 여자 우주(이성경)와 복수의 대상이 된 남자 동진(김영광), 만나지 말았어야 할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을 그리는 감성 로맨스물이다. 복수로맨스절절한 사랑까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단어들의 나열이건만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력과 몰입도 높은 스토리로 호평받고 있다. 4회까지 공개된 가운데 초반 이야기는 로맨스가 절대 피어날 것 같지 않은 우주와 동진의 관계에 집중한다.



오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던 우주는 불현듯 내기를 제안한다. “내일 비가 온다, 안 온다? 난 온다에 걸어 보려고.” 다음날 강수 확률은 10%. 이를 확인한 준(성준)이 무슨 일이냐 묻는다. 90%의 확률을 제치고 비가 내리면 하늘이 미친 거기에 제가 덩달아 미쳐도 티가 안 나겠다 싶어서 깽판을 제대로 치려 한다는 우주다.

다음 날, 10%의 확률로 비가 내린다. 이에 우주는 몸에 딱 달라붙는 짧은 호피 무늬 원피스에 빨간 구두, 선글라스까지 쓰고 어딘가로 향한다. 13년 전 엄마의 여고 동창과 바람나 돈 되는 것들을 모조리 챙겨 들고 집을 나갔던 아버지의 장례식장이다. 불륜 상대가 상복을 입고 저를 맞이하자 우주는 온갖 말들로 모멸감을 선사하지만, 복수의 맛은 텁텁하기만 하다. 불륜 상대인 희자가 우주 삼 남매의 집을 처분했다는 소식이 기다리던 탓이다. 긴 시간 별렀던 복수를 안겼건만 결국 너덜너덜해진 쪽은 우주였다. 집을 처분한 돈으로 아들의 사업에 보탰다는 소식을 들은 우주는 또 다른 복수를 계획한다. 희자의 아들 동진에게 접근해 더도 말고 딱 제가 당한 만큼만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각오다.



'사랑이라 말해요',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사랑이라 말해요',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로부터 두 달 뒤, 우주는 동진이 운영하는 회사의 계약직 사무보조로 입사한다. 한 회사의 대표요, 그 동네에서 가장 좋은 오피스텔에 사는 동진을 보며 “너는 잘 먹고, 잘 사는구나”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제 복수는 장기전이기에 우주는 그 화를 눌러 담는다. 하지만 가까이서 겪을수록 동진의 삶도 녹록지 않아 보이는 건 왜일까. 외로워 보이는 삶, 끼니는 언제나 혼자 때우기 일쑤고 그마저도 편의점에서 먹는 컵라면이다. 전 직장 상사에서 경쟁업체 대표가 된 이는 동진의 회사 업무를 끊임없이 훼방 놓고, 믿었던 직원은 그 대표와 손잡고 동진의 뒤통수를 친다. 이미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긴 회사는 다시 한번 커다란 풍랑 앞에 놓인다. 웬만한 바람도 쉽게 걷어내지 못할 듯한 두꺼운 먹구름이 따라다니는 동진의 삶은 우주를 망설이게 한다.

그런 우주에게 다시금 복수의 불을 지피는 인물은 역시 희자다. 희자는 아들의 회사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기 위해 동진의 회사를 찾는다. 우주는 그런 희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한껏 긴장한다. 제 어떤 목표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동진에게 제 정체가 탄로 날까 하는 긴장 때문이다. 하지만 희자는 우주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우주는 재확인을 위해 희자를 따라나섰다가 희자와 새 애인의 행복한 모습을 목격하곤 동진의 회사를 무너뜨릴 한 마디를 흘린다.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 ‘낭만닥터 김사부’ ‘별똥별’ 등에서 통통 튀는 캐릭터를 총천연색으로 소화한 배우 이성경은 하고 싶은 말은 다 표현하는 인간 사이다 우주를 연기한다. 데뷔 이래 가장 웃음기 없고 정적인 캐릭터를 만난 이성경은 지나치게 솔직하지만 의외로 소심하고, 알면 알수록 정의로운 우주를 작은 표정 변화와 호흡 등으로 표현한다. 다양한 작품을 오가며 매력을 보여준 김영광은 잘난 외모와 회사 대표라는 타이틀 탓에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에 쓸쓸함을 품고 있는 남자 동진을 소화한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건강함과 멋짐을 잠시 내려놓고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한, 외롭고 쓸쓸한 인물의 회색빛 삶을 섬세한 표정 연기로 보여준다.

'사랑이라 말해요',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사랑이라 말해요',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누군가의 외로움을 헤아리는 것, 저는 이게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싶어요.”

드라마는 부모의 외도로 인해 무너진 가정에서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을 그린다. 부모의 악연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복수를 목적으로 이어져 결국 사랑으로 바뀔 전망이다. 이들의 관계 변화에 대한 복선은 드라마의 사작과 함께 나온 라디오 DJ의 멘트에 모두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진의 모습에서 쓸쓸함을 읽고 제 결심을 망설이는 우주, 우주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가장 힘들었던 날 저도 모르게 소리 내서 웃고 말았다는 동진이니 말이다.

온 세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으니 완연한 봄이다. 봄이라는 계절은 어쩐지 설렘을 선사한다. 잎이 떨어진 나무에 눈이 내린 흑백의 세상에서 싹이 돋고 꽃이 필 준비를 하며 색을 찾아간다. 4화까지 펼쳐진 ‘사랑이라 말해요’ 속 우주와 동진의 삶은 여전히 퍽퍽한 모노톤의 세상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들의 삶에도 점차 색이 물들지 않을까. 어쩌면 봄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이유는 여기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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