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매니지먼트 숲
'일타 스캔들'이 방송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도연과 로맨틱 코미디는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전도연의 로맨틱 코미디는 2005년 방송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마지막이었다. 15세 이상 시청가인 '일타 스캔들' 시청자 중에는 전도연의 '로코'를 처음 보는 시청자도 있는 셈이다.
지천명의 나이에도 전도연이 연기한 남행선은 사랑스러웠다. 또한 거슬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어찌보면 억척스러운 남행선을 밉지 않게 표현했다.
/사진=매니지먼트 숲
전도연의 필모그래피 역시 로맨틱 코미디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에 기여했다. 2007년 영화 '밀양'을 기점으로 '너는 내 운명' '하녀' '집으로 가는 길' '굿와이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 깊은 연기력을 요구하는 작품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는 31일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길복순' 역시 '일타 스캔들'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그동안 작품을 선택할 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에서 답답함과 갈증을 느끼긴 했어요. 그게 꼭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더라도 밝은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어떤 배우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제 생각보다 무겁고 진지한 작품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것 같아요. 제가 제작을 하거나 감독, 작가는 아니라 오랜 시간 기다렸어요. 물론 제 커리어에는 만족해요. 제 의도대로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일타 스캔들'이 방송되기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전도연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했다"고 말했다. 작품이 끝난 후 이 말에 대한 의미를 묻자 다시금 영화 '밀양'이 등장했다.
"저는 '밀양'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아요. '밀양' 전에는 외부적으로 감독님과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 감정을 위해 연기를 했어요. 감독님은 답을 가지고 있고 감독님이 오케이라 하시면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밀양' 촬영 때 이창동 감독님이 '네가 느끼는 만큼만 연기하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 순간 깨닫지는 못했지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제가 느끼는 만큼이라면 온전히 제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면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 감정이 그 인물이 느끼는 건지 제가 느끼는 건지 말이죠. 또 내 감정이 이런데 시청자들에게는 느껴질까 두려움과 느껴질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사진=매니지먼트 숲
"(저의 원동력은) 저예요. 제가 있어야 가족도 챙기고 연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긴 한데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하고 어려워요. 그냥 저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고 싶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솔직히 창피하고 싶지는 않아요"
많은 사람들은 '일타 스캔들' 이후 '전도연의 재발견이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전도연은 이러한 평가를 부정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배우 전도연의 새로운 영역이나 활동 영역을 넓혔다기보다는 오랬동안 잊힌 것에 대해 환기하게 만든 것 같아요. 나이든 성별이든 작품이든, 주변의 시선이 저를 가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제 성격상 그런 것을 깨거나 증명하겠다고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건 두려워하고 익숙한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앞으로 사람들이 저에게 어떤 기대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그런 것에 부딪힐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전도연인데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와 작품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매니지먼트 숲
"저는 수동적인 배우였던 것 같아요. 사적인 자리에서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러다 바뀌고 싶고 달라지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감독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들에게 저는 어려운 선배라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다가올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양한 작품을 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그들에게 매력적인 배우일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젊은 감독만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너무나도 그런 에너지에 영향을 받고 싶어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에게도 '당신 능력만큼 나를 소모시켜라. 나는 소모될 각오가 되어있다'고 말했어요. 사실 '길복순'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는 작품인데 무리해서라도 극복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는 재발견, 스스로에게는 환기로 다가온 전도연의 연기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러한 기대가 부담으로 돌아올 법도 하지만 오히려 전도연은 이러한 기대감을 즐겼다.
"기대감이 없는 것보다 기대감이 있는 게 좋은 거죠. 물론 그만큼 부담이 되지만 스스로 저를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요. 내가 불편한 게 뭐가 있나 생각하고 불편하지 않게끔 해요. 그래야 뭐를 하더라도 해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있지만 더 많이 기대해 주셔도 되고 그런 기대도 감당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오히려 기대감이 없으면 좌절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