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이 남자가 만든 토종 위스키 뭐길래…"투자자도 줄섰다"

머니투데이 김포(경기)=지영호 기자 2023.03.1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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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시동걸린 양주독립⑤ - 한국인이 처음 만든 위스키, 김창수 대표 인터뷰

편집자주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고급 위스키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였다. 시대가 바뀌면서 흥청망청 마시는 위스키 문화는 자취를 감췄다. 위스키 수입도 2007년을 정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하이볼'과 함께 위스키가 살아났다. 새 위스키가 출시되면 오픈런이 벌어지고 시내 곳곳에 위스키바가 등장했다. 위스키 열풍은 위스키의 국산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들까지 뛰어들었다. 양주가 더이상 양주가 아닌 시대, 양주독립이 시작됐다.

김창수위스키증류소의 김창수 대표가 6일 김포 증류소에서 브랜드 문양이 새겨진 캐스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지영호 기자김창수위스키증류소의 김창수 대표가 6일 김포 증류소에서 브랜드 문양이 새겨진 캐스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지영호 기자


지난달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25 DX랩점 앞에는 한국산 위스키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생겼다. 38병 한정판매 공지에 1등 구매자는 이틀밤을 새웠다. '위런'(위스키+오픈런)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같은 위스키를 추첨 형태인 럭키 드로 방식으로 판매했던 CU는 당첨자를 발표했다가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당첨자 중 직원 한명이 포함되면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CU는 직원 당첨을 취소하고 재추첨을 진행해야 했다. 편의점에서 20만원대에 팔린 이 위스키의 리셀가격은 200만원에 달한다.

위런을 일으킨 그 한국산 위스키를 만든 이가 김창수(37세) 김창수위스키증류소(이하 김창수위스키) 대표다.



한국산 위스키는 태동기다. 아직 국내에 대형화된 위스키 제조기업은 없지만 김창수위스키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증류소가 하나둘씩 도전을 시작하는 단계다.

1986년생인 김창수 대표는 위스키 제조 불모지인 한국에서 선구자로 손꼽힌다. 국내에서 위스키를 직접 제조·판매한 첫번째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방영된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방울만 떨어트린 10여종의 위스키를 후각만으로 정확하게 알아맞춰 달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가 위스키 제조에 입문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출시된 술을 모두 마셨을만큼 술을 좋아했던 김 대표는 자신과 동명이인인 금산인삼주 김창수 명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20살 때부터 술을 직접 만들었다. 막걸리, 청주, 전통주를 거쳐 국내에 제조방식이 알려지지 않은 위스키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맛과 향의 매력에 빠졌다"며 "일본과 대만도 만드는 위스키를 한국만 못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도전욕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스키 제조방법을 배우기 위해 여러 증류소에 견학 제안을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는 열달간 중소기업에서 일한 월급을 모은 1000만원을 들고 위스키의 고장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한국에서 중고로 산 15만원짜리 자전거에 텐트 등 60kg 짐을 싣고 4개월 반동안 102개 증류소를 찾아 다녔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찾아갔지만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마지막 증류소에서도 거절당한 후 위로차 들른 글래스고의 한 바에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는다. 바에서 만난 동양인 남성이 우연히 그가 첫 입사지원서를 낸 일본 치치부 증류소 직원이었다. 일본의 벤처 증류소로 이름난 곳이었다. 이를 인연으로 2년 뒤 방문의 기회를 얻었고, 이 때 위스키 제조 기술을 배우게 됐다.


'술꾼' 이 남자가 만든 토종 위스키 뭐길래…"투자자도 줄섰다"
일본 NHK에서 그의 스토리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등 이름값이 생겼지만 경험 없는 그에게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유명세로 글로벌 위스키 브랜드 디아지오코리아에 입사해 2년간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여의도에 바를 차리고 무역회사에서 투잡을 뛰면서 기회를 엿봤다. 그래도 투자가 붙지 않자 결국 10억원에 가까운 대출을 받아 직접 증류소를 차리기로 했다.

10억원은 증류소 짓기에 큰 돈은 아니었다. 위스키의 맛을 결정하는 캐스크(오크통)의 개당 가격은 100만원까지 붙는다. 김창수 증류소에는 이런 캐스크가 200개 정도 있다. 가건물로 지어진 증류소는 누군가 창고로 쓰던 곳을 그대로 사용한다. 제조 설비는 대부분 자신이 직접 만들어 조립했다. 위스키 제조 면허를 받기 위해 숱하게 발품도 팔았다. 특히 위스키 제조면허는 사례가 없다보니 행정절차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김 대표는 "2021년 1월 제조면허를 받았을 때 가장 기뻤다"면서 "돈을 들이면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몸으로 때우다보니 어느하나 쉬운게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김 대표의 일정표는 빽빽하다. 한국산 위스키의 출현에 대중이 반응하자 자본의 관심도 커져서다. 지난달에만 약 50여곳에서 투자 제의가 왔다. 하루 4번 투자자 미팅을 한 날도 있을 정도다. 지난해 11월 안동시와 200억원 규모의 투자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안동에 위스키 제2공장과 프리미엄 소주, 전통주 생산시설 설치에 대한 협약을 진행 중이다.

김창수위스키는 3호 캐스크까지 완판됐다. 하나의 캐스크에는 700ml 기준 300병의 위스키가 나온다. 수년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낄법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털어놓는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산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안동 외에도 여러 곳의 지자체에서 문의가 와 있지만 아직까지 투자나 공장 증설에 대해 확정하지 않았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신제품에 대해선"숙성 3년이 지나는 내년부터 위스키다운 위스키를 선보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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