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때 아시아 최대 레미콘공장, 이젠 벌판…서울숲 옆 '핫플'된다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3.03.08 06:10
글자크기
7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 레미콘을 싣는 믹스트럭들이 바퀴를 씻던 세륜장이다. 트럭 양 옆에서 물이 나와 바퀴에 묻었던 흙이 떨어지면 바닥에 빈틈 사이로 흘러 내려갔다. 바퀴를 씻은 물은 세륜장에서 다시 쓰이거나 정화돼 레미콘 제조에 쓰였다./사진=김성진 기자.7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 레미콘을 싣는 믹스트럭들이 바퀴를 씻던 세륜장이다. 트럭 양 옆에서 물이 나와 바퀴에 묻었던 흙이 떨어지면 바닥에 빈틈 사이로 흘러 내려갔다. 바퀴를 씻은 물은 세륜장에서 다시 쓰이거나 정화돼 레미콘 제조에 쓰였다./사진=김성진 기자.


수인분당선 서울숲역을 나와 중랑천쪽으로 20분쯤 걸으면 높이 2m 남짓 공사장 펜스가 나온다. 10분쯤 펜스를 따라 더 걸으면 10m 너비 입구가 있다. 입구 너머 부지의 너비가 축구장 4개와 맞먹어 보였다. 허허벌판이었다. 갈대 한줄기 없었다. 하지만 한때 건물이 빼곡했는지 바닥이 전부 콘크리트였다. 곳곳에 검붉은 철근이 엉켜 있었다.

이 부지에 지난해 8월까지 삼표레미콘 공장이 있었다. 단일 공장으로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였다. 24평 아파트 7000세대를 지을 레미콘을 하루에 만들었다. 강원도 원주의 공장 100여곳을 전부 합친 것보다 레미콘을 더 만들었다. 직원 200여명이 일했다. 레미콘 싣는 믹스트럭이 수백대 오갔다.



공장 자리로 한때는 한강이 흘렀다. 1972년까지 공장 부지에서 약 1km 떨어진, 중랑천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길목에 35만평 규모 섬이 있었다. 닥나무가 많아서 이름은 저자도(楮子島)였고 누군가는 행정구역을 따라 옥수동 86번지라 불렀다. 섬은 중랑천 물길을 막았고 매년 두번쯤은 지금의 성동구 한양대 자리까지 물에 잠겼다고 한다. 1969년 정부 주문을 받아 현대건설과 강원산업그룹(삼표그룹의 전신)이 저자도를 파내 지금의 압구정, 서울숲 자리를 매립했다.
1970년대 삼표레미콘 성수공장 모습./사진제공=삼표그룹.1970년대 삼표레미콘 성수공장 모습./사진제공=삼표그룹.
매립지 규모는 약 4만평이었다. 이중 1만8000평은 서울시에 기부채납했다. 2만2000평은 모래, 자갈 등 골재 채취 기지로 쓰다가 1만5000평은 서울숲이 조성될 때 수용됐다. 남은 7000여평에 1977년 레미콘 성수공장이 지어져 가동됐다.

레미콘은 영어로 'Ready-Mixed Concrete'의 준말이다. 공사장에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준비한 콘크리트라는 뜻이다. 시멘트에 골재와 물 등을 섞어서 만든다. 금방 굳기 때문에 계속 휘저어 줄 믹스트럭만 실을 수 있고 싣더라도 2시간 안에 부어야 한다. 성수공장은 서울시 내 유일한 레미콘 공장이었다. 1970년대 이후 서울의 굵직한 건축 현장을 뒷받침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각종 사회기반시설(SOC) 사업, 청계천 복원공사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강북 뉴타운 공사, 여의도 63빌딩, 롯데월드타워, 김포공항 활주로 등 공사에 성수공장 레미콘이 쓰였다.
서울 성동구 삼표레미콘 공장이 해체되기 전 모습(왼쪽)과 후의 모습(오른쪽)./사진제공=삼표그룹.서울 성동구 삼표레미콘 공장이 해체되기 전 모습(왼쪽)과 후의 모습(오른쪽)./사진제공=삼표그룹.
2005년 서울숲 공원이 조성됐고 이후 성수동 일대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섰다. 2015년 성수동 주민들은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이전 서명운동을 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레미콘 공장 자체는 보통의 공장과 다르게 소음이 크게 나지 않는다. 절단, 용접, 압착처럼 시끄러운 공정이 없고 시멘트와 물 등을 섞는 게 주된 공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믹서트럭 수백대가 오가는 소음과 비산먼지 걱정이 있었다. 삼표산업과 부지 소유주 현대제철은 서울시, 성동구와 2017년 공장 이전 협약을 맺었다. 지난해 3월 공장 해체 공사가 시작됐고 5개월 뒤 해체가 완료됐다.

해체 공사가 시작될 당시 일부 직원들은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부지에는 여전히 50여년 가동된 공장 흔적이 남아있다. 입구에서 30 m 남짓 떨어진 곳에 믹서트럭들이 바퀴를 씻던 세륜장이 있다. 주변에 주거 지역이 생기자 믹서트럭이 발생시킬 먼지를 줄이려고 만든 것이라 한다. 세륜장 바닥은 경사가 졌고 지면에서 약 20cm 떠 있다. 트럭 양옆에서 호스가 물을 뿜으면 바퀴에 묻은 흙이 경사를 따라 쓸려 내려간다. 바퀴를 씻은 물은 공장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세륜장에서 재활용하거나 정화해 레미콘을 만드는 데 재활용했다.

그 밖에 레미콘을 섞는 배치플랜트 5대가 있던 자리, 믹서트럭들이 배치플랜트에서 레미콘을 받던 자리 흔적이 남았다. 직원들 식당과 식당 바닥에 배수구도 남아있다.
7일 찾은 성동구 삼표레미콘 성수부지에는 해체되기 전 공장 모습들이 남아있다. 직원 식당 바닥의 배수구 모습./사진=김성진 기자.7일 찾은 성동구 삼표레미콘 성수부지에는 해체되기 전 공장 모습들이 남아있다. 직원 식당 바닥의 배수구 모습./사진=김성진 기자.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해당 부지를 도시계획 변경 사전협상 대상지로 선정했다. 사전협상 제도는 면적 5000㎡ 이상 개발 부지에 사업 인허가권이 있는 공공과 민간 사업자가 개발 계획을 함께 세우는 방식이다. 공공은 용도지역을 상향해 사업성을 높여주고 개발이익의 일부를 공공기여로 확보할 수 있다.


현재로서 공장 부지의 용도는 1종 일반주거지역이다. 4층 이하 단독주택과 공동주택밖에 짓지 못한다. 서울시는 고층 복합개발을 할 수 있도록 부지 용도를 상업지역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를 통한 공공기여 규모는 약 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서울시는 부지에 고층 업무·상업·문화시설 복합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로서 공장 부지는 동부간선도로와 왕복 8차선 고차산로와 뚝섬로 등으로 둘러싸여 사실상 고립돼 있다. 서울시는 사무실과 식당가 등이 들어선 고층 복합 시설을 짓고 동쪽에 서울숲공원을 아우르는 업무와 문화 거점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지를 전세계 관광객이 찾는 서울 대표 명소로 재탄생시키겠다"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