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가장 급격한 긴축에도…美 경제는 왜 침체되지 않나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23.03.0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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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만에 가장 급격한 긴축에도…美 경제는 왜 침체되지 않나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 경제가 올 상반기에 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투자 전략가들은 미국 증시가 올해 상반기에는 하락하고 하반기에 반등하는 '상저하고'의 양상을 보일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이 예상은 모두 틀렸다. 지난 1월 미국 경제는 고용과 소비 모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세를 나타냈다.



이 결과 미국의 경제 성장세가 서서히 둔화되며 연착륙(소프트랜딩)할 것이라는 전망을 넘어 아예 착륙하지 않고 비행을 계속하는 무착륙(노랜딩) 경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인플레이션은 하락하는데 경제는 경착륙(하드랜딩)을 피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제기되며 미국 증시는 지난 1월에 큰 폭으로 랠리하며 '상저하고'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역사상 가장 기다리는 침체
문제는 연준(연방준비제도)이 40년 남짓 만에 가장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음에도 경제가 착륙할 조짐을 보이지 않으니 금리를 언제까지,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6일(현지시간) '왜 침체는 언제나 6개월 뒤로 미뤄지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 경기 하강은 현대 미국 역사상 가장 기다리던 침체가 될 것"이라며 "침체가 계속 연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서 크레딧 스위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레이 패리스는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인용해 "이는 '고도' 침체"라고 말했다.

또 이코노미스트들이 6개월마다 6개월 후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며 "올해 중반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6개월 후에는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리스는 지난해 가을 미국 경제가 올해 가까스로 하강은 피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몇 안 되는 이코노미스트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연준의 긴축을 끝내고 더 나아가 금리 인하까지도 불러올 수 있는, 기다리고 기다리는 침체는 왜 오지 않는 것일까. WSJ는 3가지로 분석했다.

침체 미뤄지는 이유 ①현금 부양
첫째는 2020년 3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정부의 대응 때문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금리가 제로(0) 수준인 상황에서 현금을 쏟아부었다.

이 결과 미국의 가계와 기업, 지방 정부는 재정적으로 이례적으로 건전하게 됐다.

연준에 따르면 미국 가계는 2021년 중반까지 코로나 팬데믹 이전 상태로 수입과 지출이 늘어났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1조7000억달러 더 많은 저축을 축적해 지난해 6월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WSJ는 이후 그 저축이 소비됐다고 해도 쓰여진 돈이 경제를 통해 흘러간 것이라며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BCA 리서치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인 피터 베르진은 "코로나 팬데믹 동안 정부의 이전 지출을 통해 쌓인 초기 저축이 경제를 통해 2차, 3차, 4차의 효과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가 신용을 통해 확장됐을 때는 금리가 올랐을 때 경제가 좀더 빨리 반응해 둔화되기 시작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때 경기 회복은 소득과 경기부양책이 주도했다.

기업들도 코로나 팬데믹 때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놓았기 때문에 현재의 금리 인상에 타격을 덜 받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에 발행된 정크본드 가운데 단지 8%만이 향후 2년 내에 만기가 돌아온다.

②원자재·노동력 부족
둘째는 원자재와 노동력의 부족이 금리에 민감한 부동산과 자동차산업을 금리 인상에 상당히 탄력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자금 여력이 있는 건설업체들은 신축 주택을 분양할 때 처음 1~2년 동안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하해주는 방식으로 고객들이 현재의 고금리 타격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또 현재 주택 보유자들은 집을 팔면 기존에 받았던 사상 최저 수준의 주택담보대출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집을 팔기를 꺼리고 있다. 이 결과 현재 주택 매물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주택과 자동차 수요가 줄어 주택 건설과 자동차 생산이 감소하고 인력 감축이 나타나지만 지금은 건설업체와 자동차업체가 수요를 따라잡기에 바쁘다.

건설업체들이 금리 인상 전에 착공한 주택들을 여전히 짓고 있어 건설현장에서 근로자 해고 사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공급망 붕괴로 주택을 완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동차업체들도 코로나 팬데믹 때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재고가 극히 낮게 유지됐던 탓에 고효율 자동차를 중심으로 오히려 수요 증가를 경험했다.

2007년부터 2021년까지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냈던 에릭 로젠그렌은 이 때문에 금리 인상으로 인한 주택시장과 자동차산업의 둔화가 매우 더디게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요와 공급이 다시 균형을 이루려면 금리가 더 올라가야 하거나 고금리가 더 오래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③서비스 수요 급증
셋째, 미국 소비자들이 코로나 팬데믹 때 이용하지 못했던 외식과 여행 등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외식과 여행 등의 서비스는 일자리가 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이는 항목이다. 하지만 일자리가 아직 많으니 서비스 소비가 줄지 않고 있다.

휘발유 가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하고 전년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금액이 결정되는 사회보장연금이 지난 1월부터 지급된 것도 최근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이 늘어난 원인으로 지목된다.

모간스탠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난해 봄 급등했던 휘발유 가격이 하반기부터 하락하면서 소비자들이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비용 증가를 상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5일 보고서에서 소비자 지출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연준이 금리를 6% 바로 밑까지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금리를 0.25%포인트씩 오는 9월까지 계속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최대 난제는 고용시장이다. 고용시장 강세가 소비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침체, 기다리지 않을 때 닥칠 것
WSJ는 경제가 언제, 얼마나 둔화될지 불확실성이 높은 이유는 대부분 연준이 금리를 너무 급격하게 올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전에는 금리 인상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졌다. 인플레이션이 높지 않아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수년에 걸쳐 긴축을 진행할 여유가 있었다.

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을 지낸 뒤 MIT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크리스틴 포브스는 "초기에 금리를 대폭 올리면 금리 인상의 효과를 보기 위해 더 기다려야 하는지, 경제가 탄력적이라 잘 둔화되지 않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은 지난해 10월 이후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렸다. 연준이 밝혀온 것보다 더 빨리 금리 인상이 끝날 것이란 예상이 반영되면서 장기물 중심으로 국채수익률이 하락한 것이다.

30년물 국채수익률은 지난해 가을 7%에서 최근 6%로 하락했다. 단기 국채수익률은 연준이 통제하지만 장기 국채수익률은 더 전반적인 시장의 영향을 받는다.

역설적인 것은 장기 국채수익률은 경제가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하락하는데 장기 국채수익률이 내려가면 경기가 둔화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1월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최근 장기 국채수익률이 반등하긴 했지만 문제는 연준이 원하는 만큼 경제를 약화시킬 정도로 올라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 때문에 BCA 리서치의 베르진은 "연준은 장기 국채수익률을 경제를 둔화시킬 정도로 충분히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경기 침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까지 경기 침체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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