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은행업의 정부 철학'이 먼저다

머니투데이 이종우 경제평론가 2023.03.0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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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 경제 평론가이종우 경제 평론가


우리나라 산업자본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 금산분리법에 산업자본이 은행지분의 4%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됐기 때문이다.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통해 10%까지 지분을 소유할 수 있지만 그러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 법이 생긴 것은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한 후 계열사에 돈을 마음대로 빌려주다 같이 부실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오래전부터 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기업 환경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이유다. 법이 만들어진 경제개발 시기에는 기업들이 돈을 구하는데 혈안이 돼 있었고 국가도 돈이 없어 정부가 은행을 통해 필요한 돈을 적절히 분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기업의 은행 소유를 막고 정부가 돈의 배분권을 행사했다. 지금은 기업들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상장기업 전체로 1000조원 가까운 내부 유보금이 쌓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금융지주 자산총액의 1.7배에 해당하는 돈이다.

기업이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일반 기업이 전체 지분의 34%를 소유할 수 있는데 이 정도 지분이면 해당 은행을 지배하는데 문제가 없다. 은행이 정부의 간섭을 많이 받는 산업이란 점도 기업이 은행 소유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금산분리법 완화 얘기가 또 나왔다. 대통령이 우리 은행들이 과점체제에 안주해 손쉽게 이자장사를 하면서 많은 성과급을 받아간다고 얘기한 게 시발점이다. 이 얘기가 나오자 곧바로 새로운 은행설립이 거론됐고 이후 금산분리 완화방안이 등장했다. 금융산업의 큰 틀을 좌우할 제도변경 방안이 며칠 사이에 쏟아져나온 것이다.

은행 경쟁강화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제시된 방안은 챌린저뱅크와 인가 세분화(스몰라이선스) 도입이었다. 챌린저뱅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과점체제를 막기 위해 영국이 도입한 제도로 IT기술을 활용해 특화된 소매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가 세분화는 단일인가 형태인 은행업의 인가단위를 보다 세분화해 소상공인 전문은행 등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은행들을 만드는 방식이다.

문제는 두 방안으로 만들어진 은행이 기존 은행과 어깨를 견주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험, 증권 등에서 상위에 있는 회사가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냈는데 그를 위해서는 금산분리법 완화가 필요하다.


금산분리법 완화를 얘기하기 전에 은행업을 어떤 구조로 만들지에 대한 정부의 철학부터 확립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철학은 메가뱅크(Megabank)였다.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은행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외환위기 직전 29개던 은행을 12개로 줄였다. 이제 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다시 은행 수를 늘려도 된다는 건지 정부의 생각을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철학적 기반이 없으면 최근 본 것처럼 논의가 중구난방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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