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감사제' 3년…팽팽한 대립에 유지도 폐지도 못한다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정혜윤 기자 2023.03.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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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재계 vs 회계, 지정감사제 갈등(上)

편집자주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단행한 회계개혁의 핵심 제도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기로에 섰다. 재계와 회계업계가 지정감사제를 두고 극심한 갈등을 벌이고 있어서다. 재계는 제도 폐지를, 회계업계는 현행 유지를 주장한다. 금융당국이 개선책 논의에 나섰으나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정감사제 존속을 둘러싼 찬반 주장과 핵심 쟁점을 살펴봤다.

길어지는 '지정감사제' 갈등… 금융당국, '고심' 깊어진다
'지정감사제' 3년…팽팽한 대립에 유지도 폐지도 못한다


2019년부터 시행된 기업 회계개혁의 핵심 제도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이하 지정감사제)를 두고 재계와 회계업계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안긴다는 이유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지정감사제 도입에 따른 회계투명성 개선 효과를 강조하는 회계업계는 현행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금융당국은 지정감사제를 포함한 회계 제도 개선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재계와 회계업계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 재계 "품질 떨어지고 부담만 커져" vs 회계업계 "투명성 개선 효과 사라질 것"

지정감사제를 둘러싼 재계와 회계업계의 갈등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금융위원회에 폐지를 요청하는 경제계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재점화했다. 대한상의는 지난달 9일 의견서 제출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여론전에 나섰다. 대한상의는 "지정감사제 도입이 감사인·피감기업 간 유착관계 방지 등 독립성 강화에 치중돼 감사 품질이 떨어지고 기업 부담만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주장했다.



지정감사제는 기업이 6개 사업연도의 감사인을 자유선임하면 이후 3개 사업연도의 감사인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제도(6+3)다. 기업과 회계법인 간 유착 가능성을 낮춰 분식회계 등 사고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지정감사제는 표준감사시간제,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의무화와 함께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2017년 단행한 회계 개혁의 결과물이다.

한국회계학회는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회계개혁제도 평가 및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정혜윤 기자.한국회계학회는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회계개혁제도 평가 및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정혜윤 기자.
회계업계는 지정감사제를 완화할 경우 회계투명성 개선이라는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제도 시행 4년차에 불과해 평가를 위한 객관적 근거 자체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노동조합의 회계투명성 확보를 주창하는 것과 배치되는 행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회계법인 임원은 "중간에 조금 힘드니까 바꾸자고 하면 '결국 후퇴하는 구나'라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며 "노조와 관련한 회계개혁에 나선 현 정권의 행보와도 반대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회계학회가 내놓은 '회계개혁 제도 평가 및 개선 방안'을 두고서도 재계와 회계업계는 엇갈린 해석을 내놨다. 재계는 회계학회가 △자유선임 기간 확대(6년→9년) △지정기간 단축(3년→2년) △직권지정 사유 축소를 대안으로 제시한 점을 근거로 "규제 완화 필요성이 증명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회계업계에서는 '현 시점에선 분석의 한계로 정책적 판단이 요구되며, 제도가 충분히 시행된 시점(3~5년)에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반드시 재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회계학회의 입장을 부각한다.


■ 금융위, 추진단 꾸렸지만 6개월째 논의만… "의견 청취 중"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금융위원회. /사진=김창현 기자 chmt@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금융위원회.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금융위는 지난해 9월 '회계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을 꾸리고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상장사협회, 코스닥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공인회계사회, 회계법인, 학계 인사 등으로 추진단을 구성했다. 추진단은 첫 회의에서 △표준감사시간제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의무화 △주기적 지정감사제 등 지정제 확대를 주요 논의 과제로 정했다.

첫 회의 이후 진행 과정은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다. 추진단이 논의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제도 개선에 대한 재계와 회계업계 간 입장이 명확하게 엇갈리면서 타협점 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말 한 언론이 '정부가 지정감사제 대폭 완화를 결정했다'고 보도했으나, 금융위는 구체적 개선 방안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놨다. 지난달 초 비슷한 보도가 나오자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지난 3일 나온 현행 유지 보도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의 고심이 길어지면서 재계와 회계업계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추진단뿐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며 "아직 어떤 방안도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 올해로 시행 4년차… 지정비율 '50% 돌파'

지정감사제의 법적 근거를 담은 개정 외부감사법(신외감법)은 2017년 10월 공포됐다. 실제 시행은 2020사업연도부터 이뤄졌다. 올해로 시행 4년차다. 모든 상장사와 대규모 비상장사가 적용 대상이다. 감사인 지정주체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다. 3년 연속 영업손실, 투자주의환기종목 지정, 3년간 최대주주 2회 이상 변경 등 직권지정 사유에 해당하면 자유선임 기간이라도 감사인 지정이 가능하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감사인 지정 상장사는 1256곳으로 전체 상장사의 54%에 해당한다. 현행 방식을 도입하기 전인 2017년(177곳)과 비교하면 상장사 지정비율이 8%에서 54%로 46%포인트(p) 높아졌다.

금융위는 지난해 7월 지정 대상 확대에 따른 감사품질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 보완을 단행했다.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기업의 지정감사는 감사품질관리 수준이 가장 높은 회계법인에 맡기고, 회계법인의 감사인 지정점수에 품질관리 지표를 반영하는 내용이다.

또 중견 회계법인으로 지정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회계부정 위험이 큰 기업의 경우 하향 재지정을 제한했다. 하향 재지정은 기업이 속한 군(자산총액 기준 분류)보다 상위 군에 속한 회계법인 지정을 받은 경우 하위 군 회계법인으로 재지정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기업과 회계법인을 각각 4개 군으로 분류하 지정군 방식에 기반한다.

'지정감사제' 설계자 최운열 "완화 논할 때 아니다"
최운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창현 기자 chmt@최운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지정감사제'를 시행한 지 불과 3년 됐다. 지금 완화한다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이다."

20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약한 최운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은 2017년 기업회계 선진화 입법을 이끈 주인공이다. 특히 회계개혁의 핵심 제도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이하 지정감사제)는 최 전 의원이 제안한 '6+3' 형태로 도입됐다. 기업이 6개 사업연도의 감사인을 자유선임하면 이후 3개 사업연도의 감사인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방식이다. 당시 회계 업계에서는 국회를 통과한 외부감사법 개정안(신외감법)을 '최운열법'으로 부르기도 했다.

최 전 의원은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최근 재계의 지정감사제 폐지 주장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최 전 의원은 "재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를 기회로 이용해서 지정감사제를 무력화시키려고 한다"며 "정부가 재계 주장에 휘둘리지 말고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 주주 등 이해당사자) 입장에서 어떤 정책이 유리한지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목소리가 큰 대주주 입장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감사 부담을 앞세운 재계의 폐지 논리에는 "친기업이 아니라 오너 등 대주주와 기업인을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최 전 의원은 "기업은 때려잡아선 안 되고 친기업 정책은 좋은 것"이라며 "하지만 기업과 기업인은 구분해야 한다. 대주주를 기업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최운열 전 의원. /사진=김창현 기자 chmt@최운열 전 의원.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최 전 의원은 회계투명성 개선에 대한 대주주들의 부담감이 지정감사제 폐지 요구로 분출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회계투명성이 개선되면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며 "정작 대주주는 주가 상승을 반기지 않는다.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때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과세표준 30억원이 넘는 상속·증여 재산에 최고세율 50%를 적용한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최대주주 할증까지 이뤄지면 60%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최 전 의원은 "상속·증여세가 징벌적 세금처럼 돼 있는데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며 "세율을 20%대로 떨어뜨리면 대주주들이 회계투명성 개선에 저항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외부감사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한 '감사인 지정 기간 1년 단축'(6+2)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는다. 지정감사제 폐지와 자유선임 기간 연장의 경우 외부감사법 개정이 필요한데,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국회 의석구조를 고려하면 법 개정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 전 의원은 "기업과 회계법인이 3년 단위를 감사 계약을 체결하는 상황에서 2년 단위로 끊긴다면 상당한 혼선이 올 것"이라며 "금융위원회가 대통령실 눈치만 볼 게 아니라 빠르게 합리적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회계투명성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개선된 이후에 지정감사제 존속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최 전 의원은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이 세계 10위권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지정감사제로 계속 갈 필요는 없다"며 "시장경쟁 원리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항구적으로 가야 하는 제도는 아니다. 국제 평가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자율계약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회계투명성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2022년 53위, 2021년 37위, 2020년 46위, 2019년 61위, 2018년 62위, 2017년 63위를 기록했다. 2017년 63개국 중 63위로 꼴찌였다가 2021년까지 순위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오스템임플란트, 우리은행 등에서 대규모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순위가 16계단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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